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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한국 불교사의 르네상스 연 경허스님의 숨결

서산 천장사

2013.10.21(월) 14:42:26 | 최순옥 (이메일주소:didrnlwk55@hanmail.net
               	didrnlwk5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서산에 천장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름만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명색이 백제시대 무왕 34년(633)에 담화선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입니다.

특히 대한민국 불교 역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고, 한국 근세불교사에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고도 칭송받는 경허스님이 수도했던 도량입니다.

천장사에 오르는 가파른 돌계단

▲ 천장사에 오르는 가파른 돌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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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 옆의 참선 계곡. 천장사 왼편 산등성이에 위치한 곳인데 경허선사의 제자인 혜월스님이 7일간의 참선 끝에 깨달음을 얻은 장소로, 지금도 여름이면 수좌들이 굴에 앉아 좌선삼매에 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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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이 바윗돌을 따라 줄줄 흘러 내리는 청량감마저.
 

가을 낙옆 한장이 바윗돌에.

▲ 천장사 오르는 길. 가을 낙옆 한장이 바윗돌에.
 

내포문화 숲길 안내판

▲ 내포문화 숲길 안내판


그런 절을 찾아가 스님의 흔적을 보고 온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었고 영광이었답니다.

서산시 연암산 남쪽에 자리 잡은 천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에 속해 있고, 인법당내에 관음보살을 봉안하고 있는 곳입니다.
 

천장사 인법당

▲ 천장사 인법당
 

요사채

▲ 요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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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장사
 

법당 안의 경허와 만공선사

▲ 법당 안의 경허와 만공선사
 

법당 안의 지장보살상

▲ 법당 안의 지장보살상


천장사는 선종을 중흥한 대 선사들이 수행했던 곳이라 지금도 많은 수도승들이 찾아온답니다.

자연석 주초석 위에 원주를 세워 정면 6칸, 측면 2칸이며 겹처마 팔짝지붕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편액에는 천장암이라 쓰여져 있지만 모두들 이 절을 천장사라고 소개하고 천장사라 부릅니다.
 

천장사 칠층탑

▲ 천장사 칠층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202호로 지정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202호로 지정


고려 전기 칠층석탑입니다.
이 칠층석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해 세운 것인데 옥개석과 옥신, 상륜부 등에서 약간 이질적인 부분이 있다고 하네요,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그래서 전문가들이 평하기는 이것은 무너진 탑의 탑재석들을 모아 다시 건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답니다.
탑신부의 옥신석에 모서리를 나타낸 점과 옥개석 밑에 2개의 층급 방침을 둔 것으로 보면 재건립 시기는 고려 중기로 추정된답니다!
현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202호로 지정되었답니다.
 
조선 말기 고종 순종 때 고승 경허선사(1849~1912)가 이 사찰에 기거하며 수도한 것으로 전해지는 명찰이기도 합니다.
그의 제자 송만공 선사가 득도하는 등 조산 말 승려들의 수도장으로 알려진 사찰이랍니다.

그정도면 사찰의 크기도 대단할걸로 짐작이 가지만 사실 직접 가서 보면 사찰의 크기만으로는 경허선사나 만겅이 수도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작고 조용한 절입니다.

물론 큰 스님들이 수도하고 득도했다 해서 절이 커야 하는건 절대 아닙니다. 그저 막연하게 생각해 보건대 우리 주변의 유명 고찰에 비해 소박하다는 것입니다.
 

경허스님 처소 안내문

▲ 경허스님 처소 안내문
 

경허스님 방문

▲ 경허스님 처소
 

경허스님 방 내부

▲ 경허스님 방 내부
 

경허스님

▲ 경허스님


경허스님이 어떤 분이셨길래요?

먼저 경허 선사 처소입니다.

동학사에서 천장사로 온 경허 선사는 지고 온 바랑에서 옷 한 벌을 내어 솜을 넣어 두툼한 누더기 한 벌을 손수 지어입고 곧바로 쪽방으로 들어가 이듬해 6월까지 꼬박 1년 동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보림에 들었다고 합니다.
1년이 넘도록 세수도 않고, 몸도 씻지 않고 솜으로 누빈 누더기 한 벌 만 입은 채 보냈으므로 온 몸에 이가 싸락눈이 내린 것처럼 들 끌었다고 하네요.
 
경허선사는 앞서 밝힌바 처럼 근세 한국불교의 중흥기를 열었던 분들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분이 바로 성우 경허(惺牛 鏡虛) 스님이십니다.
만일 경허 큰스님이 없었다면 우리 나라 근세불교는 그야말로 얼마나 적막강산이었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정도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경허 큰스님을 ‘한국의 달마대사’라 칭송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제2의 원효대사’로 추앙하기도 합니다.

경허스님의 제자들 역시 만공, 혜월, 수월 등 한국 불겨사에 있어서 실로 당대 최고의 거봉들을 길러 내신 분입니다.

만공스님 처소 안내문

▲ 만공스님 처소 안내문
 

만공스님 처소

▲ 만공스님 처소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방문고리와 닭고 닳은 손잡이 천.

▲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방문고리와 닭고 닳은 손잡이 천.
 

만공스님이 쓴 방석

▲ 만공스님이 쓴 담요


만공스님이 경허 스님으로부터 배울때 천장사에서의 일화입니다.

어느 여름날 밤, 제자 만공이 등불을 켜들고 큰방으로 들어가니 경허 스님께서 누워 계셨습니다. 그런데 불빛에 비춰보니 경허 스님의 배 위에 시커먼 독사가 또아리를 틀고 있길래 너무나 크게 놀라 “스님, 스님 배위에 독사가 앉아 있습니다, 스님!”이라고 소리쳤다지요.

그러나 경허 스님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으신 채 담담히 대답했습니다.
“실컷 놀다가 가게 그냥 내버려두어라.”

그러자 만공은 어쩔줄 몰라 절절 매고 있었는데 이윽고 독사가 스스로 또아리를 풀고 슬슬 배위에서 내려와 뒷문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나중에 경허 스님께서 만공에게 “큰 일을 당했을때 절대 마음에 조금도 동요됨이 없어야 공부가 되느니라.”라고 가르쳤다 합니다.

경허 탑

▲ 경허 탑
 

염주

▲ 염주
 

산짐승들에게도 이 한알의 열매가 식량이 되는 자비를

▲ 산짐승들에게도 이 한알의 열매가 식량이 되는 자비를


불교에 관심 있는 분, 우리나라 불교역사에 큰 획을 긋고 떠나신 경허선사의 도량과 흔적과 숨결을 느껴보고 싶은 분은 서산 천장사에 가 보세요.
 
천장사 : 충남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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