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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엊그제 9월28일(1920년)은 유관순 열사 순국 93주기

천안시 병천의 유관순 열사 추모각에서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2013.09.30(월) 14:59:42 | 내사랑 충청도 (이메일주소:dbghksrnjs6874@hanmail.net
               	dbghksrnjs6874@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중에 유관순 열사를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있어서는 안되겠지요.

하지만 엊그제 9월28일이 어떤 날인지 아시는 분은 많지 않을듯 합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아서 다들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이 어떤 날이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해도 우리 충남 도민들과 충남넷 독자님들은 꼭 아셨으면 합니다.

우리민족의 횃불이자 독립운동의 꽃이었던 유관순 열사가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일제의 모진 고문 끝에 꽃다운 어린 나이에 순국하신 날, 1920년 바로 9월28일입니다.

이번 2013년은 열사의 순국 93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추모제가 열리고 있는 추모각. 맨 중앙이

▲ 추모제가 열리고 있는 추모각. 맨 중앙에 계신분이 성무용 천안시장님, 오른쪽 계신분이 유관순열사 기념사업회의 류근창 회장님, 왼쪽에 계신분이 이명현 대전지방보훈청장님.(이 사진은 추모사업회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성무용 천안시장님이 제향을 하고 있습니다

▲ 성무용 천안시장님이 제향을 하고 있습니다


28일 오전에는 천안의 유관순 열사 추모각에서 각계 인사들이 참석하신 가운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펼치다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93주기 추모제가 엄숙히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당신의 나라사랑에 대한 숭고한 얼을 기리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뜻을 담아 한없는 존경과 숭모의 마음을 전해 올립니다.

이날 추모제에는 유관순열사 기념사업회 류근창 회장님을 비롯해 천안시 성무용 시장님, 이명현 대전지방 보훈청장님 등 내외 귀빈과 주민 분들 모두 500여 명이 참석하셨습니다.

저는 이날 추모제가 열리는 현장으로 부랴부랴 달려갔지만 때를 놓쳐 추모제 현장의 사진을 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열사의 추모사업회에 부탁해서 이날 행사장의 사진을 받아서 올립니다.

그리고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매봉교회, 기념관, 초혼묘를 한바퀴 돌아보며 열사의 숨결을 느껴보았습니다.

돌아 보는 내내 마음이 숙연해 지면서, 또 한편으로는 요즘 막 나가는 일본 아베정권의 망언과 망동이 괘씸해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종요한 것 한가지.

저들을 이기려면 정신의 무장은 물론, 더 열심히 일해서 국력으로 우리가 그들을 누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까불지 못하도록요.
 
생가부터 돌아보겠습니다.
 

생가지 안내문

▲ 생가지 안내문
 

생가지 기념비

▲ 생가지 기념비
 

'ㄱ'자형 열사의 생가

▲ 'ㄱ'자형 열사의 생가
 

열사

▲ 유관순 열사와 오빠 유우석 열사(생가 내부. 유리막으로 보호되어 있음)
 

생가 내부

▲ 열사와 오빠가 만세운동에 쓸 태극기를 만들고 있음(생가 내부. 유리막으로 보호되어 있음)
 

열사께서 생전에 다니신 생가 바로 옆의 매봉교회

▲ 열사께서 생전에 다니신 생가 바로 옆의 매봉교회
 

매봉교회 벽면 기념조각

▲ 매봉교회 벽면 기념조각


생가는 작고 아담한 초가집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전형적인 당시의 농촌 초가집입니다.
안채에는 열사와 오빠, 그리고 열사의 부친께서 만세운동을 할 계획을 논의하며 태극기를 만드는 장면이 있는데 유리막으로 내부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가 바로 옆에는 열사께서 다니셨던 매봉교회가 있습니다.
1919년 4월, 유관순 열사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천안의 병천면 만세운동은 당시에 호서지방에서 일으킨 최대 만세운동이었습니다.

장날을 이용해 병천과 수신등에서 3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고, 유관순 열사는 부친 유중권 선생, 교사 김구응 선생, 독립운동가 조인원 선생등과 함께 직접 제작한 태극기를 주민들에게 나눠 주며 만세를 독려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군경은 이 평화적인 독립운동에다가 무자비한 총칼질을 들이댔고 이자리에서 유관순 열사의 부모를 비롯해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시고야 말았습니다. 부상자도 셀수없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아우내 독립만세를 주도한 이들은 모두 체포돼 법원에서 형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옥고를 치렀고 유관순 열사는 1920년 9월 28일 끝내 옥중에서 순국하신 것입니다.
 

매봉산의 봉화탑

▲ 매봉산의 봉화탑
 

봉화탑에서 바라본 병천면 시내

▲ 봉화탑에서 바라본 평화로운 병천면 시내


열사의 생가와 매봉교회를 거쳐 산으로 올라가면 봉화탑이 나옵니다. 이날 만세 독립운동 당시 이 매봉산으로 올라가 봉화에 불을 지피고 만세운동 사실을 알렸다 합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 매봉산 정상 봉화탑에서 바라본 천안시 병천면 일대의 마을이 평화스럽게 바라다 보입니다. 다 누구 덕분일까요.
 
 

매봉산 중턱의 유관순 열사 초혼묘

▲ 매봉산 중턱의 유관순 열사 초혼묘
 

초혼묘의 유관순 열사 얼굴 부조

▲ 초혼묘의 유관순 열사 얼굴 부조
 

초혼묘의 무궁화꽃 화병

▲ 초혼묘의 무궁화꽃 화병


봉화탑에서 약 300m 정도 내려오면 이번엔 유관순 열사의 초혼묘가 나옵니다.

안타깝게도 열사가 순국하신 뒤 악랄한 일제가 열사의 시신을 내어주지 않고, 매장한 흔적도 없애버려 열사의 묘소는 현재 이 초혼묘가 전부입니다. 유해를 찾지 못해 대신 열사의 유품을 묻고 초혼묘로 애도의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 기념관

▲ 유관순 열사 기념관 초입의 기념비
 

엊그제9월28일1920년은유관순열사순국93주기 1

▲ 만세운동을 펼치는 열사의 기념동상
 

기념관 건물

▲ 기념관 건물
 

장면

▲ 만세운동을 펼치는 장면
 

만세운동과 일제의 탄압

▲ 만세운동과 일제의 탄압
 

서댜문 형무소 재현

▲ 서댜문 형무소 재현


초혼묘를 지나 내려오면 유관순 열사 기념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세를 부르는 열사의 동상, 기념관이 있고 기념관 안에는 만세운동 당시를 재현한 기념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미니어처, 만세운동 금속 부조, 열사의 훈장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열 아홉의 짧은 생을 바쳐 민족독립의 등불을 밝혔던 유관순 열사의 영전에 한 없는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유관순 열사 순국 93주기 추념식에서 류근창 회장이 읽은 추념사 한대목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가신 열사의 고귀한 희생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조국의 자유독립을 위해 피맺힌 외침과 뜨거운 애국정신을 발한 당신. 그래서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역사에 길이 빛날 고귀한 희생정신.
 
우리 자식들에게도 제대로 가르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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