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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역사의 뒤안길(병인양요)에서 보는 갈매못 성지

2013.07.24(수) 13:00:24 | 내사랑 충청도 (이메일주소:dbghksrnjs6874@hanmail.net
               	dbghksrnjs6874@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아이러니 한 점도 많고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아쉬움 속에는 너무 억울하거나 속상한 점이 끼어 있습니다.

 1866년에 흥선대원군이 천주교 박해를 강하게 밀어 붙이며 많은 천주교 신자들의 목숨을 뺏었습니다. 그중에 프랑스인 총 9명이 처형됐습니다.

 프랑스가 가만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프랑스는 이에 대한 보복을 결행하게 됩니다.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중국에 주둔중이던 프랑스함대 로즈 제독에게 조선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때 일어난 사건이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병인양요입니다.

 당시 강력한 함대에서 불을 뿜는 함포에 대응하기 위해 조선 수군이 활용한 병기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솜으로 누빈 겹옷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구한말 우리의 실정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우리에게 참 많은 아쉬운을 줍니다.

 하여튼 이 일로 프랑스 해군은 강화도를 점령한 뒤 얼마후 철수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고서 수백권을 약탈해 갔는데 그 안에 조선왕실의궤 등이 포함돼 있었던 것입니다.
 일부는 환수를 했지만 프랑스에 뺏긴 그 중요한 고서를 생각하면 참 아쉽고 두고두고 속상한 역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바다가 보이는 달매못 성지

▲ 보령 갈매못 성지
성지의 순교비

▲ 바다가 보이는 성지와 순교비
 

성지의 기념관 전경

▲ 성지의 기념관 전경
 

성지의 예수님상

▲ 성지의 예수님상


 프랑스 신부들이 처형 당한 예에서 보듯 천주교는 우리나라에서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구한말인데 당시 불운하게도 천주교 박해때 많은 국내 천주교 신부와 신자들, 그리고 외국인 신부와 천주교 관계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중에는 프랑스인 신부 다블뤼 주교라는 분이 있었는데 현재 당진군 합덕읍에는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며 천주교를 전파했던 신리 성지가 있습니다.
 서해안의 대표적인 천주교 순교지인 보령의 갈매못 천주교 순교지는 이분 다블뤼 주교가 효수형을 당했던 곳입니다. 

이 순교지는 금년초였던 2월12일자로 충청남도 기념물 183호로 지정됐습니다.

성지에 세워져 있는 순교자비

▲ 성지에 세워져 있는 순교자비
 

순교자 동상

▲ 순교자 동상
 

고난의 길을 걸으며...

▲ 고난의 길을 걸으며...
 

순교자 동판 부조

▲ 순교자 동판 부조
 

기념관 담장 위의 순교와 고난을 상징하는 동판 조각

▲ 기념관 담장 위의 순교와 고난을 상징하는 동판 조각


 보령 갈매못 성지를 탐방하기 전에 다블뤼 주교에 대해 좀 알아보겠습니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에 중국 상하이를 거쳐 한국 교회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와 함께 한국에 왔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주로 한국 천주교의 순교사와 교회사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명한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備忘記)를 썼고, 이것이 프랑스로 보내져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사(史)의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남은거라 하더군요.

 그러나 다블뤼 주교는 1866년에 신리에서 붙잡혀 옥고를 치르다가 이곳 보령의 수영성(갈매못 해변)으로 압송돼 3월30일에 참수형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그 후 그는 1984년에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여의도에서 시성되어 성인품에 올랐다고 하네요.

 이후 그가 순교한 보령 갈매못 천주교 순교지는 천주교 병인박해의 대표적 성지가 되었고   현재 이곳에 순교자 기념비, 기념관, 사제관, 수녀원 등이 건립돼 있습니다.

기념관 내 다블뤼 주교의 집필모습

▲ 기념관 내 다블뤼 주교의 집필모습
 

체포되어 순교지인 이곳으로 압송되는 모습

▲ 체포되어 순교지인 이곳으로 압송되는 모습
 

?다블뤼 주교 일행이 한양을 떠나 형장(刑場}으로 가던중 지금의 충남 아산시 응봉면 동천리사거리에 있는 오성(五聖) 바위에서 잠시 쉬었다고 합니다.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던 사형수들은 호송포졸들의 호의로 잠시나마 이 오성 바위에서 ?은 휴식을 즐겼다고 하네요. 그 바위돌중 하나인 오성바위입니다.

▲ ?다블뤼 주교 일행이 한양을 떠나 형장으로 가던중 지금의 충남 아산시 응봉면 동천리사거리에 있는 오성 바위에서 잠시 쉬었다고 합니다.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던 사형수들은 호송포졸들의 호의로 잠시나마 이 오성 바위에서 짧은 휴식을 즐겼다고 하네요. 그 바위돌중 하나인 오성바위입니다.
 

효수형에 처해진 뒤...

▲ 효수형에 처해진 뒤...
 

성당 내부

▲ 성당 내부


 이곳에는 다블뤼 주교의 유품과 유물이 소장되어 있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 그때를 전후해 수많은 신자들이 붙잡혀 와 순교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현재 순교터에는 5명의 순교 기념비와 제단이 있고 순교기념관, 대성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천주교 성지 중 유일하게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는 특징이 있어서 주변 경관도 좋아 해마다 5만명 안팎의 관광객들과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성지 주변에는 가까이에 많은 관광지가 있습니다.
 유명한 충청수영성을 비롯해서 도미부인 사당, 성주사, 개화예술공원, 레일바이크 등에 여러 항포구들이 있어서 가족단위 여행하기에도 참 좋은 곳입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구한말 우리나라 근대사를 배울수 있는 역사의 장소인 이곳 갈매못 성지 여행을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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