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헌서원 입구 홍살문
▲ 문헌서원 전경
▲ 역대 이색선생의 후학과 문헌서원을 지켜낸 분들을 기리는 비석입니다.홍살문 왼쪽에 세워져 있습니다.
▲ 목은 이색 선생이십니다.
▲ 진수문입니다. 안에는 석석채, 존양재, 전사청 등이 있습니다.
▲ 진수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 제일먼저 만나는 진수당입니다.
▲ 서재인 석석채입니다. 동재와 함께 서원의 원생들과 손님들이 거처한 서재로서 주역의 건건석척에서 유래한 말을 따서 석석채라 불렀다 합니다. 이 말의 뜻은 "군자가 종일 조심하고 조심하여 저녁에 두려운듯 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은 없다"라는 뜻이라 합니다. 과연 선비다운 글귀입니다.(문헌서원 안내문 원문 발췌)
▲ 동재인 존양재입니다. 맹자의 존양경찰에서 유래한 말로서 원생들이 마음의 본성을 지켜 착한 성품을 기른다는 뜻에서 지은 이른이라 합니다.(문헌서원 안내문 원문 발췌)
▲ 강륜당입니다. 이곳을 찾은 손님들과 흉허물 없이 학문을 논하던 곳입니다.
▲ 교육관입니다. 원생과 후학을 기르던 곳입니다.
▲ 교육관 내부 모습입니다.
▲ 전사청입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재기들을 보관한 곳입니다.
문헌서원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강당과 진수당, 서재가 배치된 강학 공간입니다.
서원 안에는 3칸의 사우(祠宇)와, 이색선생 문집 목판각 등이 보존된 창고, 2층 누각으로 된 6칸의 강당, 3칸의 목은 영당, 목은선생 신도비, 이종덕 효행비각 등이 있습니다.
이색 선생은 조선왕조가 열린 후 직위를 박탈당하고 서인이 되어 섬으로 유폐되는 비운을 맞습니다. 그 후에 학문적 업적을 인정하여 장흥에서 석방된 다음 이곳 서천의 한산으로 와서 다시 3년간 지낸 후 1394년(태조3년) 오대산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서울로 돌아왔는데 1396년 여주 신륵사에 가는 도중에 69세의 일기로 삶을 정리하셨습니다.
목은 영당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 가면 이색 선생의 묘가 나옵니다.
이곳은 문헌서원의 좌측 기린산 중턱에 해당하는 자리인데, 이 묏자리는 무학대사가 잡은 곳이라고 합니다.
강학 공간 뒤 한단 높은 대지에 사당을 배치한 묘당 공간인 이색 영당은 방문객들이 1순위로 찾는 대표적인 명소라고 할수 있습니다.
사당 뒤에는 배롱나무 꽃이 피어나는데 이 꽃이 활짝 피어오르는 8월이면 배롱꽃이 가지를 따라 피어올라 장관을 이룬다 합니다.
지붕위로 학 날개처럼 활짝 펼쳐진 배롱꽃이 영당을 물들이면 그 광경이 너무 아름다워 보는 이로 하여금 넋을 잃게 한다는군요. 저도 8월에 이곳에 배롱꽃을 보러 다시 가야겠습니다.
참고로 서천에는 문헌서원 뿐만 아니라 동백나무 숲, 한산모시관, 월하성 포구, 이상재선생 생가, 영화 JSA 촬영지인 신성리 갈대밭 등 가볼만한 곳이 참 많습니다.
바닷가를 끼고 있으니 풍부하고 싱싱한 해산물은 식도락가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문헌서원에 들러 선조들의 학문적 업적과 숨결을 느낌은 물론, 서천지역 곳곳의 여행을 한번 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