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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선비는 죽일수 있으되 욕보일 수는 없다, 이놈들아"

독립운동가 수당 이남규 선생 기념관과 고택 답사

2013.07.23(화) 13:13:15 | 김진순 (이메일주소:dhjsdk44@hanmail.net
               	dhjsdk44@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네 아놈들. 어디 감히 왜놈들 주제에 선비의 팔을 함부로 잡는단 말이냐. 놔라 이놈들아. ”

 하지만 총칼을 거머 쥔 일본군 헌병대의 힘과 무력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비의 목소리는 하늘을 찌르며 그 기가 산천을 뒤흔들 기세였습니다.

 “선비는 죽일수 있으되 욕보일 수는 없다, 이놈들아”

기념관에 걸려 있는 선생의 말 액자

▲ 수당 이남규 선생 기념관에 걸려 있는 선생의 말 액자


 이 말. 한자로는 사가살 불가욕(士加殺 不可辱)이 됩니다. 이 말을 던지며 그를 체포해 가려는 일제의 헌병에게 완강하게 저항했던 독립운동가, 그분은 누구일까요.
 예산의 수당 이남규 선생이십니다.

 “선비는 죽일 수 있되 욕보일 수는 없다"는 고귀한 정신, 특히 야만적인 일제에게는 더더욱 선비의 자존심을 굽힐수 없었던 당신은 결국 그 길로 일제에 붙잡혀 가시다가 아산의 한 냇가에서 일제의 총칼에 무참히 살해 되셨습니다.

 그 말 한마디는 제가 이남규 선생의 고택과 기념관 답사를 마친 후 돌아나온 뒤 한참 지나서까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달리 확대해서 해석하면 “일제가 강압으로 대한민국을 짓밟고 있어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족혼은 죽일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 의기와 자존심이 야만적인 일제의 기를 꺾어 놓았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다 후련했습니다.

 다음달 8월은 나라를 빼앗긴 후 많은 순국 선열이 국권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버리며 분연히 일어났던 것을 기리는 광복절이 있는 8월이자 수당 선생이 순국하신 달이기도 합니다.

 엊그제 토요일에 수당 이남규 선생의 고택과 기념관을 찾아 갔습니다.

기념관에 있는 이남규 선생 흉상

▲ 기념관에 있는 이남규 선생 흉상
 

기념관 전경

▲ 기념관 전경
 

의병활동을 모의하고 있는 선생과 동지들

▲ 의병활동을 모의하고 있는 선생과 동지들
 

애국 독립운동을 했던 가족도

▲ 애국 독립운동을 했던 가족도
 

선생의 기념관을 방문한 관람객

▲ 선생의 기념관을 방문한 관람객
 

선생께서 받으신 훈장

▲ 선생께서 받으신 훈장
 

유

▲ 고종칙유. 이남규 선생이 안동부관찰사로 갈 때 고종황제가 내린 혼유의 글.
 

기념관에 걸려있는 편액

▲ 기념관에 걸려있는 편액


  이남규(李南珪, 1855년 11월 3일 ~ 1907년 8월 19일)선생은 한국의 독립 운동가로,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격분해서 낙향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고종에게 '청토적서(請討賊書)'를 올리는 등 위정척사를 행동으로 옮겨 매국노 처단과 일제와의 결전을 주장했습니다.

 1906년에는 충청남도 홍주(현재의 홍성군)에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 민종식 선생을 은신시켰고 그 사건으로 인해 공주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한 달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후 다시 일본 헌병대에 연행중 온양(현재의 아산) 평촌 냇가에서 당신을 회유하려는 일제에게 맞서다가 함께 동행했던 당신의 아들 이충구와 함께 현장에서 피살되셨던 것입니다.

 그후 선생은 건국훈장을 받으셨습니다.

생가 안채 대문

▲ 고택 안채 대문
 

ㅁ자형 생가 안채 내부

▲ ㅁ자형 고택 안채 내부
 

사랑채인 평원정

▲ 사랑채인 평원정
 

평원정 현판

▲ 평원정 현판


 선생의 고택은 일자형의 사랑채와 튼 ‘ㅁ’자형의 안채로 되어 있습니다.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에 툇마루가 있고, 안채에는 건넌방, 마루방, 툇마루 등이 있습니다.

 수당기념관은 작년에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수당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에 관여한 분들의 애국 애족 호국활동을 소개하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선생의 고택은 유형문화재 제 68호로 지정돼 있고, 현재 예산군 대술면 상항리 334-2번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다시한번 선생이 일제의 가슴에 꽂아주신 “사가살 불가욕(士加殺 不可辱”을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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