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외롭거나 허허로울때, 혹은 우울할 때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여행지가 화려한 관광지여도 좋고, 고즈넉한 산사여도 좋고, 아니면 가까운 뒷동산조차도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훌륭한 여행지가 될수 있다
중요한건 마음먹기 나름이라는거.
어제는 참 놀라운 여행지를 다녀왔다. 일반인들에게 사실상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 그러나 가 본 사람들에게는 서산의 제주도라 불리우는 곳.
▲ 길에서 바라본 검은여
▲ 서녘 해 맞은편에서 본 검은여
▲ 풀숲과 바위돌 사에에서 본 검은여
▲ 검은여의 유래
‘검은여’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당나라로 공부를 하러 갔다가 귀국할 때 이를 사모한 여인이 있었는데 의상대사가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버렸다. 그녀의 넋을 위로하기 의해 서산에 부석사가 지어졌고 그 유래와 관련해서 생긴 자그마한 바위섬, 검은여.
우연히 검은여라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곳 태안에서 서산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훌쩍 떠나 가 보았는데...
세상에나, 가까운 곳이 이런데가 있었다니. 우린 정말 너무 모르고 살았다.
▲ 검은 여 주변의 자연석들
▲ 검은여 뒤에서 바라본 천수만 평야 일대
▲ 제주도 주상절리를 연상케 하는 검은여 바위
▲ 고대 화석과 지층을 보여주는 바윗돌
안면도와 20분떨어진 서산 부석면에 천수만에 돌섬.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이곳은 1982년 10월 서산 천수만 물막이 공사 이전만 하더라도 항상 ‘물 위에 떠 있는 바위’로 보여져 일명 부석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 당시 이 바위는 바닷물에 잠겼다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를 반복해 주민들로부터 영적인 곳으로 신성시 됐고 이때부터 ‘돌섬’이란 명칭 대신 ‘검은여’로 불려졌다.
▲ 수천만년 된 바윗돌과 거은여와 평야의 조화
▲ 가까이세서 본 검은여
▲ 이번엔 역광을 피해 처음 출발했던 마을쪽을 바라보며
▲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잡초의 질긴 생명력
▲ 당나라 여인의 넋을 위로하듯 피어난 꽃
전설에 따르면 당시 의상대사가 선묘 낭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사찰을 지으려 했으나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서 어려움을 겪던 중 검은색의 큰 바위가 공중에 나타나 ‘방해하면 큰 재앙을 내리겠다’고 주민들을 설득했다고 전한다.
그 일이 있은 후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절은 바위 이름을 따 부석사(667)라 명명됐고 바위는 이 사찰에서 굽어보이는 서산 천수만 적돌강 부근에 떨어져 검은여(돌섬)가 되었다고 한다.
바위는 크고 작은 것들이 질서 있게 혹은 어지럽게 놓여져 있는 자연석 그대로이지만 그 자연속의 질서가 은근히 조화롭고 매력적이다.
▲ 바위틈 위로 바라본 부석정
▲ 검은여 주변의 몇그루 안되는 소나무와 검은여의 부석정
▲ 부석정 천정의 현판
서산의 작은 제주도라 불려도 무방한 바위들의 조화와 아름다움이다. 이곳을 가 보고 난 느낌은 지금같은 여름보다는 가을과 겨울에 훨씬 더 운치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보이는 정자는 부석정아다. 부석정을 배경으로 사방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역광 때문에 여의치 못해 한쪽에서만 촬영을 했다. 그래도 너무 운치있고 멋지다.
▲ 검은여를 가기 위한 비포장 도로의 험난한 여정
▲ 양쪽엔 길가 잡초가 무성하지만 저기 검은여가 보이고 있음
▲ 검은여를 가는 도로 한쪽엔 큰 하천이 있고 낚시꾼들도 있음
이곳을 찾아 가는 길도 만만치는 않다. 내비게이션에 검은여가 나오는 차량이면 좋겠지만 사방이 논이고 멀리는 바다여서 주소도 여의치 못하다.
서산시 부석면 갈마리까지 간 뒤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가다 보니 검은여라는 표지가 보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여기서부터 비포장 도로를 따라 가야 한다. 주위는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생긴 논이고 옆에는 하천이 흐른다. 강무롸 바다가 만나는 곳 같다.
원래부터 이곳 부석면의 명칭과 유래가 담겨 있는 검은여는 부석면의 상징이었는데 1980년부터 현대건설에서 천수만 대단위 간척사업으로 그 옛 모습을 잃어가게 되자 마을사람들의 합심으로 이렇게 보존하고 있다고 전한다.
돌아오는 가을, 그리고 눈 내린 겨울에 다시 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