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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벼슬도 버리고 초야에서 후학을 가르친 간재 선생

2013.05.02(목) 21:39:51 | 최순옥 (이메일주소:didrnlwk55@hanmail.net
               	didrnlwk5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금 나이 40대 이후의 중년층 이상이라면 학창시절에 보물찾기라는 게임을 했었던 기억  누구나 다 있을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이야 스마트폰에 파묻혀 땀 뻘뻘 흘리며 보물찾기 끝에 공책 한권 얻는 그런 기쁨 같은거 모를테지만...

 느닷없이 보물찾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태안의 안양사를 찾았던 며칠전 때문입니다.

 나는 보물찾기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현재는 향토유적 제2호로 1991년 4월 23일 지정되었는데 내가 처음 안양사라는 명칭을 듣고는“오래 된 고찰이겠거니”했습니다. 사전에 충분한 공부를 게을리 한 것을 결국 후회 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안양사 본채 안으로 들어가기 전의 정문 앞

▲ 안양사 본채 안으로 들어가기 전의 정문 앞


  안양사에 도착해 푯말을 보니 안양사는 오래된 사찰이 아닌 선인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었습니다.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관리인을 만나 도민리포터로써 이곳을 좀 보고 싶고 촬영도 하고 충남넷에 글을 써서 올리고 싶다며 사정 이야기를 하자 기꺼이 열어 주셔서 안으로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정면에서 본 안양사

▲ 정면에서 본 안양사



 사진을 찍고 그 곳에 위치한 안내문을 보면서 내가 보물을 찾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양사 내부 본채

▲ 안양사 내부 본채


 선각자로써 초야에 묻혀 오로지 후학을 가르치신 분.  안양사는 구한말의 유학자인 간제 전우 선생을 제행하는 곳이었습니다.  간제선생은 24세때 경연에서 보양관으로 추천되었으나 간신들의 모략으로 취임하지 못하자 당시 유학자였던 노백 최명희 선생의 주선으로 이곳에 들어와 후학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사당 내부 본채의 현판

▲ 사당 내부 본채의 현판


 그후 간제 선생의 학식을 높이 평가해 뒤늦게 나라에서 벼슬을 주려 하였으나 끝내 거부하고 후학을 가르치는 일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일 그의 제자들이 간제와 노백 선생의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이곳 태안의 근홍면 안기리에 사당을 세워 영정을 모시며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안채를 넓게 보고 찍은 장면

▲ 안채를 넓게 보고 찍은 장면



 해마다 음력 3월3일과 9월9일에 제향을 올리는데 금년에는 음력 3월3일이었던 지난 4월12일에 제향이 열렸다고 합니다.


벼슬도버리고초야에서후학을가르친간재선생 1

▲ 진달래가 핀 안양사



외곽 담장을끼고 본 안양사

▲ 외곽 담장을끼고 본 안양사


 우리 고장에는 이렇게 자신의 부귀영화를 버린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나라의 동량이 될 인재를 키우며 가르친 선각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민리포터로써 이런 숨은 보물들을 앞으로도 많이 도민들께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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