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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우리가 사는 법

칼럼 - 김재영 /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2013.03.15(금) 13:39:16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기에
본디 더디고 지난한 과정


우리가사는법 1학교에서 신문방송사 주간을 맡다 보니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지난 겨울 신문사 학생들이 ‘제2의 창간’을 하자는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한때 잘 나가던 대학언론의 위세가 수그러든 지 오래다. 최근에는 등록금 동결 등의 여파로 예산이 삭감돼 연명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며칠 전에는 연세대 신문인 <연세춘추>가 학교 쪽의 일방적인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뜻으로 1면을 백지로 만든 ‘호외’를 발행해 세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우리 학생들은 신문 판형을 바꾸는 데서 도약의 전기를 찾으려 했다. <충대신문> 창간 이후 60여 년 동안 고수해온 대판형(375㎜×595㎜)을 베를리너 판형(323㎜×470㎜)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익숙한 판형에서 탈피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간 축적된 편집기법과 관행을 버리고 ‘맨땅에 헤딩’해야 한다. 베를리너 판을 인쇄할 수 있는 업체도 서울에 있어 제작과정이 번거로워진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의지는 무쇠처럼 단단했고 명분은 가을 밤하늘의 달처럼 또렷했다. 무엇보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다디단 겨울방학을 희생하고 ‘신문 살리기’에 몰두한 학생들의 마음씀씀이가 대견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스펙 쌓기에만 매달리는 게 요즘 대학가 풍경 아니던가.

별 탈 없이 추진되던 판형 변경 계획은 예기치 않은 암초를 만났다. 그동안 인쇄를 대행한 회사에서 재고를 요청한 것이다. 이 회사는 우리 지역의 유력 일간지로 말이 ‘재고’지 사실상 ‘압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특히 우리 대학병원의 세종시 진입 등 중대 현안을 앞둔 시점에서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지역신문의 입김을 무시하기 힘든 형편이다.

당사자들과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곧 서로의 입장에 공감했다. 업체는 우리가 판형을 바꾸기로 한 저간의 사정과 그에 따라 인쇄업체 변경이 불가피함을 이해했다. 학생들은, 연유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인쇄비가 우리 지역의 기업이 아닌 서울의 큰 업체에 돌아간다는 사실에 찜찜해 했다. 마치 골목상권을 내치고 대형마트를 찾는 기분이랄까. 고심 끝에 학생들은 기존 판형을 유지하고 인쇄업체도 바꾸지 않기로 양보했다. 그간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이 수포로 돌아간 탓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비록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으나 학생들은, 어쩌면 더 값진 교훈을 얻었다. 세상엔 시시비비를 따져야 할 사안도 있지만 대개는 옳고 그름보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비롯한 갈등이라는 사실 말이다.

재작년 3월 충남도에 파견되어 1년 동안 미디어센터장을 역임했다. 당시 일부 언론과 도의회 의원들이 ‘낙하산 인사’ 등의 표현을 쓰며 ‘트집’을 잡는 것처럼 느꼈다. 솔직히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수행해야 할 일보다 언론과 의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데 더 많이 신경 써야 했다.

약속한 임기가 끝나갈 무렵, 역시 낙하산 인사란 오명을 쓴 전력자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자연스레 화제는 낙인을 씌운 당사자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분 왈, “사실 어찌 보면 그런 게 민주주의 아니겠어요.” 사소한 꼬투리일지언정 권력집단인 지방정부를 감시하는 게 언론의 책무고, 도정을 견제하라고 도민들이 선출해 구성된 게 도의회란 의미다. 교과서에 나오는 당연한 사실을, 내 처지가 바뀌다보니 잊고 있었다.

사회는 서로 입장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공간이기에 왁자지껄하기 마련이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기에 본디 더디고 지난한 과정이다. 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만 옳다고 고집 부리면 일은 파국으로 치닫고 당사자들의 마음에 생채기만 날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속전속결이 아니라 느리지만 진정한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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