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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고향의 포근한 숨결, 그리고 안타까운 폐교

2012.06.04(월) 13:21:25 | 최순옥 (이메일주소:didrnlwk55@hanmail.net
               	didrnlwk5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아따~ 이 지지배야! 친정에 온겨?”

초등학교 동창 명순이가 내 손을 붙잡고 호들갑을 떱니다. 고향 마을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아기 낳고 이날까지 줄곧 고향땅을 지키며 사는 어릴적 내 친구.

친정 고향인 충청도 청양군 목면의 조그만 시골마을. 
 

나이를 먹으니 ‘뿌리’가 그리워 자꾸만 찾게 됩니다. 
 

고향의포근한숨결그리고안타까운폐교 1

 

고향 친구와 수다스런 인사를 끝내고 학교로 가보았습니다. 어릴적 꿈을 키우며 다녔던 고향 초등학교(그땐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죠).


한때는 전교생이 320명 정도로 활기 찼던 국민학교가 이제는 폐교가 되어 있더군요. 운동장에는 이름 모를 풀들만 무성하고, 주인을 잃어버린 그네, 돌림틀, 철봉만 녹 슬은 채로 덩그러니 그때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14살 국민학교 졸업식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못하는 친구들의 울음바다가 되었던 그 자리.  천안 방직공장에 취직해 돈을 벌어 중졸 검정고시, 고검, 대검을 거쳐 방송대학 졸업을 한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이 학교를 설립할 당시 주민들의 자부심이 아주 컸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다는 희망으로 논밭을 선뜻 내놓았고 지게를 지고 비지땀을 흘리며 터를 닦았습니다.
 

“우리가 쪼끔만 고생하믄 낸중에 아들놈하고 손주가 편하게 공부할거 아녀, 그라닝께 열심히 다듬고 가꾸세.”
 

그 해 봄, 한참 수업을 하고 있는데 조용한 학교에 경운기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운동장을 내다보니 모래를 실은 경운기들이 줄줄이 교문을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냇가에서 모래를 실어다 날라 운동장에 부었던 것입니다. 수업시간에도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와 경운기 소음이 묘한 화음으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가슴 뭉클했던 것은 다음 날이었죠. 아침부터 옆구리에 세숫대야를 낀 할머니들이 아이들처럼 학교에 등교하셨습니다. 할머니들은 머릿수건을 두르고 운동장에 쪼그려 앉아 운동장에 널린 자잘한 돌멩이들을 주워 담았습니다. 냇가에서 실어온 모래라서 잔돌이 많았는데 할머니들은 “손주덜이 운동장에서 다칠까봐 그러능겨”며 며칠 동안 앉은뱅이 걸음으로 일일이 잔돌을 골라 세숫대야에 담아 내셨습니다.
 

정말 가슴 찡한 일이었습니다.

창고문을 온 종일 열어 놓아도, 과학실 문을 잠그지 않아도 조그만 물건 하나 없어지지 않았던 학교. 시골이다 보니 근처에 문구점이 없었는데 교장실에 물감, 크레파스, 도화지, 그림 붓 같은 학용품을 비치해두었습니다. 아이들은 학용품을 미처 준비해오지 않았을 때에 필요한 것만 가져다 썼죠. 그러나 한 아이가 욕심을 내 마구 가져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학교가 폐교가 되었습니다. 텅 빈 운동장을 보니 한 여자 아이가 혼자 그네를 타고 있네요. 아마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이었습니다. 먼 훗날 저 아이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내가 다닌 모교는 영원하리라 생각 했는데, 그것이 아닌가 봅니다. 어린시절 추억을 안고   생활 했던 추억의 그림자는 온데간데 없고 무성한 잡초들만 있으니 마음이 무너질 일입니다.
 

저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소리를 지르고 밤 하늘 별을 바라다 보면서  헤아려  보는 마음이 이제는 우리들 마음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을 생각하면 지나간 시간들은 다시 되돌아올 수 없기에 안타깝습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되어도 아이들 소리가 들리지 않고 텅 비어 있을 운동장과 모두 가난하던 시절에 십시일반 모금하여 학교용지를 기증하였다던 노인들 모습. 아이들은 다 어디 갔을까요.
 

이제 학교는 없습니다. 텅 빈 운동장에서 그네를 타던 여자 아이의 해맑은 모습이 사라진 학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그때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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