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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여보 미안해...담부턴 자주 오자"

2012.03.13(화) | 유병양 (이메일주소:dbquddid88@hanmail.net
               	dbquddid88@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3대 독자인 내게 아버지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빨리 장가 들어 손주를 낳으라는게 유일한 소망이셨다. “니가 얼른 손주를 나믄 내가 맨날 업어 줄껴....”
 
부모님의 레파토리가 무색하게도 나는 어찌어찌 하다가 결국 늦장가를 들게 됐다.  하지만 늦게 갔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후 부모님이 바라시던 떡두꺼비 같은 손주를 둘이나 턱하니 낳아 드렸다. 3대독자의 결혼이 늦어져 노심초사하신 아버님이셨지만 손주를 보신 아버님의 입이 귀에 걸리신건 물론 동네방네 손주 자랑이 장난 아니셨다.

 나는 아들로서 나름대로 효도는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효도만 하는 사이 장인어른 장모님한테는 효도를 못한게 결국 일이 됐다.

  얼마전....평소에는 씩씩하고 웃기도 잘하는 그녀가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갑자기 저녁 노을을 봤더니 가슴에 축구공 만한 공기주머니가 들어간것 같애”라고 말했다.  결혼생활에 푹 빠져있다가 문득 친정에 혼자 계실 엄마를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진다며 울먹였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참 많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밭에서 김을 매다가도 산딸기를 한주먹 따가지고는 호박잎에 소중하게 가져다가 학교에서 돌아온 나에게 쥐어주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분이였다.  그 까슬까슬한 호박잎보다 더 거칠게 굳어진 어머님의 손바닥을 보며 자랐지만 그때는 어머니의 사랑을 잘 몰랐다.

 하지만 나이 들면서 그때 생각을 하면 어머님의 그 사랑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 이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아내가 내게 그만큼 소중했던 어머니같은 자기의 어머니가 보고 싶어 가슴에 멍울이 질 정도라니....

 아내의 말이 이해가 됐다. 나도 군대에 가 있을때 어머니가 그토록 보고 싶었는데 맘대로 오갈수 없는 곳이라는걸 아는 군대에서조차 그랬으니, 맘만 먹으면 당장 달려갈수 있는 지금 아내가 어머니를 보고싶어하는거야 너무나 당연한거 아닌가.

 참 남자인 제가 볼때도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멀어도! 친정에는 가는게 맞을거라 보는데 왜 나는 여태껏 무관심 했을까.

 멀어서 못간다, 바빠서 못간다, 돈이 없어서 못간다.. 이거는 생각할수록 핑계 같다. 물론 사람 살다보면 100% 가지는 못하겠지만 무엇이든 맘 먹기 나름 아닌가.

 밥을 3끼 먹는것도 버릇이고, 내가 처갓집에 자주 가 주는 것도 습관 들이기 나름인것을,.... 사람들은 저마다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습관은 들이기 나름 아닌가. 

 그런데도 아내는 지금까지 내색한번 안했다. 어쩌다가 한두번 죄인처럼 풀 죽은 목소리도 아닌 또, 심각한 목소리도 아닌 아주 평범한 상황에서 평범한 목소리로 "여보 나 추석에 엄마 아빠 보러갔으면 좋겠어!”정도... 

 그래서 내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정말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어려워 하면 슬픈 표정은 짓지 않고 오히려 해맑은 표정으로 "아무래도 어렵겠지.." 라고 답해주었던 아내.

 이젠 정말 내가 철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주말에 승용차를 몰았다. 그리고 아내의 고향이자 친정인 충남 금산의 시골마을로  달렸다. 산골짜기 다람쥐 나오는 첩첩산중 처갓집. 설때도 못 가본 처갓집에 딸과 함께 나타난 사위를 보신 장모님은 감동을 받고 맨발로 뛰어 나오셨다. 내겐, 그런 장모님이 더 감동적이었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면 시계부터 보기 바쁘고, 출근하기에 정신이 없고,  회사에선 잠시 자신을 뒤돌아볼 겨를도 없는 업무의 연속이고...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전화를 자주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펑펑 우는 아내.  문득 지금까지의 우리 모두를 뒤돌아보게 만드는 감동적인 재회의 한 장면이었다. 

 그걸 보니 그동안 내 친부모님께만 효도했지, 처갓집의 부모님께는 너무나 무관심 했던것 같아 하염없이 죄송하기만 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이젠 더 이상 아내의 가슴에 축구공만한 구멍을 만들지 않기로...
 ‘여보 미안해... 담부턴 자주 오자, 자기 친정에’ 라는 미안함을 가슴속에 잔뜩 간직한채 시골 하늘을 바라봤더니.... 

하이코야!! 달에 물이 찼나 보다. 나도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고이는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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