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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하고 고요한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에서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배우다!

서천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

2020.12.07(월) 10:57:29여행작가 봄비(springlll8@naver.com)


 

 
월남 이상재 선생은 내게 생소한 분이다. '독립운동가'라는 정보 외엔 아는 것 없이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로 향한다. 생가에 도착해 가장 먼저 입구에 자리한 템플릿을 펼친다. '영원한 청년-월남 이상재 선생'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이상재 선생은 어려서부터 신앙운동을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했고, 일본과 미국을 다녀온 후로는 민중계몽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
-위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단길 71
-입장료·주차비: 무료
-관람 안내: 09:00~18:00(3월~10월), 09:00~17:00(11월~2월)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 나라사랑 체험관'은 두 곳으로 나뉜다. 왼편에는 실제로 그가 살았던 생가를 복원한 초가집이 자리하고 있고, 정면에는 서적 132점 임명장 6장 등 244점의 유품이 보관되어 있는 유물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월남 이상재 선생의 일대기를 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들어간다. 말끔한 1층 건물로 이루어진 전시관은 세 개의 테마로 구성돼 있다.
 

 
입구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배움관이 나온다. 이상재 선생의 탄생과 더불어 박정양을 만나 주미 서기관으로 미국과 선진문물을 접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배움관을 지나면 동행관이 나온다. 독립협회·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개화의 일익을 담당하고 YMCA를 중심으로 청년들의 계몽운동에 힘을 쏟은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마지막인 등불관은 이상재 선생이 남긴 언어의 유산을 되돌아보는 전시관이다.
 

 


이제 생가로 가보자.
  
이제 전시관에서 나와 생가로 향한다.
이상재 선생의 생가는 1925년에 지어졌는데, 1955년 훼손돼 유실되었다.
따라서 1972년과 1980년 서천군에서 복원하였다고 전해진다.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마당과 함께 안채와 사랑채가 나온다.
단순한 구조다.
 

 

 
가난한 선비의 맏아들로 태어나 독립운동가로 큰 공을 세운 이상재 선생은 안타깝게도 독립을 맞이하지 못하고 1927년 타계하셨다. 그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사회장을 치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장이란 사회 각계 대표가 자발적으로 모여 진행하는 장례식인데, 사회장을 치를 만큼 살아생전 다양한 단체에서 지도자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독립협회와 YMCA, 신간회 등을 꼽을 수 있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을 후다닥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도 좋고,
계절이 잘 드러나는 곳에 가서 계절을 만끽해도 좋다.
 
하지만 여행지에 가면 그곳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장이나 박물관도 반갑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이제는 더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의 자유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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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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