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의 맑은 날, 저는 금산으로 향했습니다. 목적지는 이름부터 서정적인 ‘하늘물빛정원’. 새벽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이른 아침, 그곳은 세상의 모든 고요를 품은 채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요 속으로 첫걸음, 설렘을 안고
충장산저수지의 맑은 물을 거울삼아 자리한 하늘물빛정원.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텅 빈 주차장은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풀잎과 흙내음이 섞인 상쾌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며 도시의 먼지를 씻어내는 듯했습니다.



정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담한 호수가 가장 먼저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잔잔한 수면 위로 아침 햇살이 부서지며 보석처럼 반짝이는 풍경에 순간 숨을 멈췄습니다. 누구의 방해도 없는 야외 테라스에 잠시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상상해 봅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독차지한 기분, 이른 아침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겠지요. 정원 곳곳에 놓인 아기자기한 포토존들은 ‘어서 와서 추억을 담아 가세요’라고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삼각대를 세우고 혼자만의 유쾌한 기록을 남기며, 저는 그렇게 천천히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국화 향기 가득한 산책로, 가을의 절정을 걷다
혼자 걷기엔 조금 넓고, 둘이 걷기엔 살짝 좁을 듯한 아담한 산책로. 그 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결에 실려온 향긋한 내음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아, 국화였습니다. 길 옆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국화꽃의 향연! 샛노란 빛, 수줍은 분홍빛, 신비로운 짙은 보라빛의 국화들이 제각기 고운 자태를 뽐내며 가을 정원의 팔레트를 완성하고 있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바람이 스치며 꽃잎들이 파르르 떨리는 모습은 마치 수줍은 인사를 건네는 듯했습니다. 그 작은 소리마저도 조용한 교향곡처럼 귓가를 간질이며 굳어있던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주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햇살은 더욱 짙어지고, 그 따스한 온기가 호수 위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금빛으로 물든 물결은 춤을 추듯 일렁이며 눈부신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산책로 중간, 호수를 배경으로 멋진 무대가 마련되어 있고 그 맞은편으로는 계단식 벤치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도 그만이었습니다. 아마도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호수를 배경으로 낭만적인 공연이 펼쳐지겠지요.

겸손과 존중의 인사, '그리팅맨'을 마주하다
국화꽃길이 끝나는 지점, 탁 트인 광장에 이르자 하늘물빛정원의 상징과도 같은 조형물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유영호 작가의 ‘그리팅맨(Greetingman)’입니다. 6m에 달하는 거대한 푸른빛의 사람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15도 각도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15도의 인사. 온몸을 뒤덮은 푸른빛은 어떤 편견도 없음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겸손과 화해, 존경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이 거대한 조형물 앞에서 저는 잠시 숙연해졌습니다. ‘인사’라는 가장 기본적인 소통의 행위를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는 작품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며, 저 역시 가만히 고개를 숙여 답례를 건넸습니다.

자연과 하나 되는 시간, 온전한 쉼을 얻다
그리팅맨을 지나 다시 물가로 이어진 산책로에 섰습니다. 손끝에 닿는 공기는 제법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없이 포근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굽이치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온몸으로 느껴봅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어우러져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하늘물빛정원은 아름다운 경치만을 가진 곳이 아니었습니다. 전통 참숯가마 찜질방부터 허브 족욕카페, 향긋한 빵 냄새가 가득한 베이커리, 라이브 공연이 열리는 카페까지 다채로운 즐길 거리가 가득한 복합문화공간이었습니다. 가족, 연인, 친구 누구와 함께 와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이른 아침, 고요한 호숫가를 거닐며 시작한 저의 작은 여행은 가을 국화의 진한 향기와 ‘그리팅맨’의 깊은 울림, 그리고 자연이 주는 온전한 휴식으로 채워졌습니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지고, 지쳐있던 마음에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마음 한편에는 이미 다음 방문 계획이 그려지고 있었으니까요. 다음엔 봄에, 아니면 여름에 와볼까. 아니면 또 다른 가을날, 친구들과 함께 와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금산 하늘물빛정원. 이곳은 예쁜 사진을 남기는 곳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마음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곳이었습니다. 하늘을 담은 호수와 향기로운 국화꽃, 그리고 인사하는 푸른 사람이 또 다른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늘물빛정원
○ 장소: 충남 금산군 추부면 검한1길 156
○ 영업시간 : 월~금 11:00~21:00, 토~일 10:00~21:00 휴게시간 16:00~17:00
○ 관람료: 무료
○ 문의: 1588-2613
* 취재(방문)일 : 2025년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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