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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가락을 잘라내는 것처럼 맘이 아픈데 당한 사람은 오죽할까?

부여 자연재해 농가에서 자원 봉사를 하며 농민의 소리를 듣다.

2023.07.23(일) 19:18:56충화댁(och0290@hanmail.net)


처음 이 시설에 들어갔을 때 멀쩡한 오이넝쿨을 왜 걷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흙탕물에 휩쓸렸던 오이는 전염병을 부르고 양액이 오염이 됐기 때문에 품질 좋은 오이 생산을 할 수 있는 기능을 잃었다고 했다.
'내 손가락을 잘라 잘라내는 것처럼 맘이 아픈데 주인은 오죽할까?'
자원봉사를 하러 온 사람들은 위로와 공감의 말들도 생략하고 농장주의 지시에 따라 조용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누군가 지난 주말에 뭐하고 지냈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이전 수해로 피해를 본 농가에서 자원봉사를 했다고 말하리. 수해는 방송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참담한 상처를 남겼다. 특히 엄청난 자본을 들여서 시설하우스를 지어서 기업형 영농을 추구했던 농가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1년 3회를 수확하는 이 오이 농가의 경우, 비의 양이 많아지면서 배수로에서 넘친 물이 꽃이 피고 오이가 막 달리기 시작한 오이 재배 시설로 역류하면서 양액 스티로폼을 뒤집어지게 했다. 부여 농가들의 대부분의 피해 원인으로 이처럼 배수로와 백마강으로 흐르는 지천들이 극한 호우의 양을 감당하지 못해서 논과 시설하우스로 넘친 경우이다. 


서산과 태안에서 달려 온 자원봉사자들이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걷어낸 오이넝쿨들을 치워주고 있다. 인건비를 들여 심은 자식같은 오이들을 자연재해로 한순간에 걷어버려야 하는 농장주들은 차마 쳐다볼 용기를 내지 못해 멀찍이 떨어져 있을 뿐이다.


자연재해 앞에서 한 없이 무력해지는 농민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농사는 하느님과 동업하지 않으면 안되야.'

농작물 재해 보험을 가입해도 보험사의 손해사정인들의 냉혹한 손해평가는 농민들의 의욕만 더 꺽어버린다. 수확의 과정을 세분화해서 생장을 멈춘 시기까지만 보상 정책으로, 촌각을 다투어 다른 농작물을 심어 복구하려는 농민들의 의지를 꺽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면 농장주들은 점심이나 간식 준비로도 부담이 된다. 봉사단체들은 그런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도시락을 준비해간다. 위기의 시간에 공동체 정신을 발휘해 자원 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길바닥에 앉아서 때우는 한끼에도 불평이 없다.
힘든 일을 서로 나누며 싹트는 공감력과 공동체 의식이 사람 사는 세상을 유지하는 잠재력이다.


다음 작업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농장주로부터 작업 지시를 듣고 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일손을 보태면 서툴러도 막대한 손해를 본 농장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70여명이 투입된 자원봉사 현장에 양동이에 얼음이 가득한 커피 배달이 왔다. 덥고 습한 작업 공간에 모인 봉사자들은 달고 시원한 커피 맛에 놀라고 엄청난 양의 커피에 두번 놀란다. 이 양동이 커피를 가지고 근처에서 수고하는 봉사자들을 찾아다니며 격려하는 분은 부여군 의회 송복섭 의원이다. 


양액 베드에 설치되었던 봉사자들이 오이넝쿨을 걷어내자 비닐을 걷어내는 기계가 등장해 순식간에 비닐을 감아냈다. 이 비닐은 재사용이 불가능해서 폐기하고 다시 구입해서 설치해야 한다. 그나마 이 농가는 자원봉사자들의 지원과 보상 정책과 함께 자력으로 다시 일어설 여건이 되어서 다행이었다.

당장 대출금 상환을 앞둔 어떤 농가에서 당한 수해는 농장주의 넋을 잃게 했다고 한다. 대부분 영세하고  노령화된 농가에 닥친 자연 재해는 감당할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 인력이 투입되는 도움도 필요하지만, 창졸간에 당한 피해에 노출된 피해 농민들의 정서적인 돌봄과 정신건강 안정관리도 필요할 것 같다.


이틀 동안 대규모 인력이 투입돼서 오이시설 하우스를 말끔히 치운 모습.

참담함에 오이 넝쿨 철거에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의 자발적인 인력 지원과 단체들의 소속감이 빛을 발했다. 일이란 하다 보면 힘이 들지만 중독성이 있고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 계속하게 된다. 그렇게 면면히 이어진 저력이 우리 농민에게는 있다. 

오이 농가 자원 봉사가 끝나고 바로 근처의 멜론 농가에 투입된 부여군 특전사 회원들.

물 먹은 배지를 옮기느라 기력이 달릴만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멜론 농가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 멜론 줄기 또한 침수되어 생장 조건을 놓쳐버려 걷어내고 다음 작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높고 습한 온도에 멜론들이 상해서 다른 오염을 불러오기 전에 시설을 철거해야 한다.

부여군에 닥친 수해 피해 현장에 투입된 자원 봉사의 현장을 둘러보았다. 자력으로는 일어설 수 없는 농가들에게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로 용기를 내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 
자연 재해에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현장을 가보니 그 답이 보인다.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현장에서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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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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