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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3층석탑의 ‘비밀’

상층 기단 갑석에 새긴 8행 55자 명문은

2023.06.14(수) 16:34:23장군바라기(hao0219@hanmail.net)

석탑에 55자의 명문을 새긴 아산 오봉사 3층석탑 전경.
▲ 석탑에 55자의 명문을 새긴 아산 오봉사 3층 석탑 전경.

탑(塔)은 부처의 사리나 불교 경전을 안치한 불교 신앙의 대상물입니다. 불교가 전래한 삼국시대에는 거대한 목탑이 중심을 이뤘지만, 차츰 석탑으로 바뀌는데 55자 명문을 새겨 천년세월을 지내온 충남 아산시 오봉사(五峰寺) 3층 석탑을 찾았습니다.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대웅전 전경.
▲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대웅전 전경.

충남 아산시 장존동 설화산 중턱의 오봉사 3층 석탑은 오랜 세월 기단부 지대석과 상륜부 일부가 사라졌습니다. 옥개석은 눈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훼손이 심하고 기단부 상층 기단석은 윗부분의 너비가 아래보다 넓습니다.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3층석탑. 전면 오른쪽부터 반시계방향 촬영.
▲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3층석탑. 전면 오른쪽부터 반시계방향 촬영.
 
이처럼 훼손이 심한 오봉사 3층 석탑이 세인의 주목받는 것은 석탑에 새겨진 명문 때문입니다. 석탑을 조성하면서 자체에 명문을 새긴 경우가 흔치 않은데, 높은 상층 기단 갑석 윗면에 이를 새겨놓은 사례는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3층석탑 탐신.
▲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3층석탑 탑신부.
   
오봉사의 3층 석탑은 화강석을 쌓은 것으로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단부는 지대석이 없는 이중기단이며 하층 기단은 저석, 면석, 갑석을 한 돌로 조성했습니다. 면석의 각 면에는 코끼리 눈을 의미하는 안상을 2구씩 표현했고, 갑석 윗면에는 상층 기단 받침을 매우 낮게 돌출시켜 고려 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3층석탑 상륜부.
▲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3층석탑 상륜부.
 
상층 기단은 기단석과 갑석을 돌 1개로 조성했는데, 기단석에는 우주(귀기둥)와 탱주(버팀기둥)가 새겨져 있습니다. 상층 기단 갑석 윗면은 모두 5단으로 탑신 받침을 돌출시켰는데 아래로부터 낮고 둥글게, 각지게, 둥글게, 둥글게, 아주 낮고 각지게 섬세하게 만들고 그 부분 안쪽에 글씨가 새겨 명문을 위한 테두리가 됩니다.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대웅전 전경2.

▲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대웅전 전경2.


8행 55자로 음각된 명문은 옹희사년정해이월일(雍凞四秊丁亥二月日) 보살계제자탕정군(菩薩戒第子湯井郡) 제이호장정홍렴의(第二戶長鄭弘廉矣) 가구신명대낭구명지(家口信名大娘救命之) 쌍경조보탑(敬造寶塔) 대백사덕달(大伯士德達) 도량행자귀달(道粮行者貴達) 집필승법숭(執筆僧法崇)입니다.
이를 해석하면 “옹희 4년 2월에 보살계 제자 탕정군 제2호장 정홍렴의 집안에서 청신자인 큰누이가 구명을 기원하며 공경하는 마음으로 탑을 조성하는데 탑을 깎은 장인 대백사는 덕달이고, 석탑 조성 불사의 실무 책임자인 도량행자는 귀달, 명문을 짓고 새긴 집필승은 법숭”이라는 내용입니다.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대웅전 전경 3.

▲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대웅전 전경 3.

  
옹희 4년은 고려 성종 6년으로 서기 987년에 해당하니 오봉사 삼층석탑은 고려 초기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홍렴은 나말여초 탕정성 축조로 공을 세워 지역 호족이 된 ‘온양정씨’입니다. 이때 쌓은 탕정성은 지금의 배방산성으로 추정됩니다. 탕정군은 통일신라까지의 행정지명으로 고려 시대 온수군을 거쳐 조선 시대 온양군, 지금은 아산시 온양1~6동·탕정면·배방읍·송악면 일대에 해당합니다. 고려 초 호장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탕정군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며 모든 행정업무를 담당했던 호족이었으니, 제2호장은 당시 탕정군 서열 2위의 실세였다고 합니다.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대웅전 단청과 풍경.

▲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대웅전 단청과 풍경.

   
오랜 세월 없어진 부재도 있고 옥개석도 많이 파손됐지만, 명문을 통해 석탑의 건립 시기와 후원자, 발원자, 제작자가 확인되는데 석탑 양식 변천뿐 아니라 고려 초기 충남 아산지역 주요 세력과 당시 사회상을 이해하는데 역사적·문화적·지역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약수.

 
다만 현재 3층 석탑은 조성 당시의 위치는 아닙니다. 북쪽 40여m 지점에 무너진 상태로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60여 년 전에 현재 위치로 옮겨 세웠다고 합니다. 탑의 상륜부 자연석을 제외하고 모두 원래의 석탑 부재로 판단되지만, 무너지는 과정에서 옥개석 훼손이 심한 편입니다. 석탑 외에 사찰 또는 암자도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와 관련된 아쉽게 기록이 없습니다.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대웅전과 3층석탑 전경.

▲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대웅전과 3층석탑 전경.

   
오봉사는 통칭 (구) 온양 남쪽 설화산(448m) 북쪽 중턱으로 대웅전에는 조선 후기 제작된 아미타불좌상과 관음보살좌상, 1906년의 제작 연대가 있는 현왕도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현왕도에는 ‘금어 금호’라 기록되어 20세기 초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금호당 약효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대웅전 내부 전경.

▲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대웅전 내부 전경.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대웅전 좌불.

▲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대웅전 내부 전경.


대웅전 뒤편으로는 형체를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지만, 미륵불을 모신 기도 도량이 있는데 고3 수험생을 둔 부모님들의 간절함이 이어지는 곳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답답할 때 설화산의 오봉사를 권해드립니다.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미륵불 기도도량.

▲ 천년고찰 아산 오봉사 미륵불 기도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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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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