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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1919년 4월 1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불꽃의 삶 유관순과 아우내 독립 만세운동

2023.03.30(목) 13:33:54장군바라기(hao0219@hanmail.net)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장터

▲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독립만세 기념공원. 박민섭 작 '그날의 함성'


3·1운동은 일제 식민지배에 저항한 전 민족의 항일독립운동으로 일제강점기 최대 민족운동입니다. 191931일 서울과 평양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동시에 시작돼 한 달 만에 천안 아우내(병천면) 만세운동으로 확산합니다.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열사 생가지 인근의 도로변에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다.

▲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열사 생가지 인근의 도로변에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다.

  

천안 아우내 만세운동의 중심에는 유관순 열사가 있습니다. 서울 이화학당에 유학 중 있던 유 열사는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탑골공원과 남대문 역 등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합니다. 일제의 임시휴교령으로 학교가 문 닫자 유 열사는 독립선언서 등을 숨겨 313일 고향 천안으로 돌아와 지역 유림대표와 아버지 유중권 등에게 서울의 상황을 전하고 만세운동을 준비합니다.

 

천안시병천면 유관순열사 사적지의 영정.

▲ 천안시병천면 유관순열사 사적지의 영정.

  

당시 아우내 장날은 충남 천안과 공주, 충북의 청주와 진천, 경기의 안성 등 중부권 3개 도()를 연결하는 상업 중심으로 다양한 지역으로 독립 만세운동을 폭넓게 확산시킬 수 있었으며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만세운동을 준비했고 330일에는 유 열사 생가가 있는 매봉산에 만세운동의 각오를 높이는 봉화가 올려집니다.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발생지.

▲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발생지. 김영석 작.

 

마침내 191941. 아우내 장터에서는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날 오후 1시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군중은 대한독립의 대형깃발에 태극기를 걸고 1차 거리시위에 나섰고, 이를 진압하려는 일본 헌병들은 무차별 총격과 총검으로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이어 오후 42차로 숨진 희생자를 주재소로 옮겨 항의하는 시위대에 일본 헌병은 또다시 무차별 총격의 만행을 이어갔으며, 잠시 퇴각한 시위대는 3차로 대오를 갖춰 면사무소와 우편소 등 일제의 행정기관을 습격하고 전화선을 절단하는 등 무력시위로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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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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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시 병쳔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문병식 작 '그날의 함성'.


아우내 장터 독립 만세운동은 일제의 잔혹한 진압으로 현장사망자만 19명에 달했습니다. 더욱이 시위 주동자로 체포된 유관순 열사는 이날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본 헌병의 총검에 학살당합니다.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을,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 형을 선고받은 유 열사는 일제의 재판권을 거부하며 3·1운동 1주년 항의 시위 등 옥중투쟁을 전개했고 이에 지하 감옥에 감금돼 무자비한 고문과 영양실조 속에 192092818세의 어린 나이로 순국했습니다.
 

천안시 병쳔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 천안시 병쳔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죽음에 이르러 열사는 네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순국합니다열사의 시신조차 인도를 거부하던 일제는 국제여론에 밀려 순국 한 달여 만인 10월 14일 이태원 공동묘지에서 장례를 치르지만이곳이 군용기지로 사용되고 이장 과정에서 유골이 사라져 현재는 생가 뒷산인 매봉산에 초혼 묘만 봉안되어 있습니다.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사적지에서 초혼묘로 오르는 길.

▲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사적지에서 초혼묘로 향하는 길.

 

아우내 독립 만세운동은 104년이 지났지만, 오늘까지도 천안 시민과 우리 국민의 가슴에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그 날의 의미를 되새겨주고 있습니다.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은 당시 일제의 헌병 주재소가 있던 곳으로 시위 군중이 일본 헌병의 총검에 순국한 장소를 보존해 역사체험 현장으로 공개되고 있습니다.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현남주 작 '염원'

▲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현남주 작 '염원'

 

기념공원은 4430의 부지에 기념비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독립의 열망과 의지를 표현하고 19141일 유관순 열사를 중심으로 그날의 역동적인 역사를 형상화한 환조 및 부조 조형물 7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비. 박경렬 작 '희망'

▲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비. 박경렬 작 '희망'

 

인근 유관순 열사 사적지(사적 230)는 동상, 영정, 유관순열사기념관 등이 있습니다. 추모각에는 3.1운동 직전 태극기를 손에 쥐고 이화학당에 흰색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3.1만세운동 당시 함께 순국한 애국지사 추모관도 함께 있습니다.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열사 사적지 표준영정.

▲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열사 사적지 추모각에 모셔진 유관순열사 영정.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사적지. 영정을 모셨던 가마.

▲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사적지 추모각의 유관순열사 가마. 영정 모셨다.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유적지

▲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유적지 추모각.


열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03년 개관한 유관순열사기념관에는 아우내 독립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주요인물이 소개되고 열사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는 갖가지 사진과 문헌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열사의 수형 기록표와 호적등본, 재판기록문 등 관련 전시물과 함께 아우내 독립 만세운동을 재현한 디오라마, 재판과정 매직비젼, 애국지사들이 고문받았던 서대문형무소 벽관, 영상자료 등 멀티미디어 자료를 차례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열사 기념관 전경.

▲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열사 기념관 전경.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유적지에 세워진 유관순 열사 동상.

▲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유적지에 세워진 유관순 열사 동상.


생가는 유관순 열사 사적지를 돌아 병천면 매봉산 남쪽 자락에 있습니다. 초가집으로 사립문 정면의 건넌방에서는 열사와 사촌 언니, 남동생 둘이 태극기를 제작하는 장면을, 안방에서는 아우내 만세운동을 준비하는 상황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열사 생가.

▲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열사 생가.


당시 천안에서는 아우내 독립 만세운동에 앞서 3월 14일 목천보통학교 학생 120명의 천안에서 처음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20일과 28일 2차례 입장 장터에서 광명학교 학생들과 광산노동자 등 700여 명이, 29일에는 천안읍에서 3,000여 명이, 31일에는 성환읍에서 2,000여 군중이 참여한 만세시위가 열렸고 아우내 만세운동은 그 정점에서 충청권 전역으로 만세 운동을 확산시켰습니다.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열사 생가 인근의 매봉교회.

▲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열사 생가 인근의 매봉교회.

 

3.1운동은 31일 하루 서울에서만 열렸던 것이 아니라 유관순 열사와 같은 애국 청년 학생의 희생 속에 전국으로 퍼졌고 본격적인 무장독립운동과 상해임시정부를 탄생시켜 결국 1945년 우리는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불꽃의 삶 유관순 열사와 아우내 독립 만세운동의 유적지는 1365일 무료로 개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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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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