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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봉수산순교성지 대흥형옥원

2020.10.03(토) 20:07:11충남알림이(wjdals9928@naver.com)

대흥봉수산순교성지 대흥형옥원
▲대흥봉수산순교성지
 
대흥봉수산순교성지 대흥형옥원은 2019년에 새롭게 조성되어, ‘의좋은 순교자’로 불리는 김정득 베드로와 사촌 김광옥 안드레아를 기억하고 헌양하는 순교성지라고 합니다.
 
대흥봉수산순교성지
▲대흥봉수산순교성지
 
형옥원은 죄인들을 가두는 옥, 고신과 형벌을 가하는 환토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조선시대에 대흥군 중심인 동서리에 행정시설, 상중리에 병사·옥사·제사시설, 교촌리에는 교육시설이 있습니다.
 
교우들에게 배교를 강요했던 대흥옥은 현재 대흥농협 창고터였고, 조선시대 대흥 참수터는 예당호에 수몰된 내천변이었습니다.
 

 
원래 대흥군의 옥은 상중리 296번지 일원 옥담거리에, 처형장은 예당호 내천변에, 저잣거리는 동서리 173번지 일원입니다. ‘대흥봉수산순교성지’는 이러한 순교자들의 수형생활과 처형까지 순교성지의 고유한 특성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사형에 대한 설명과 모형들을 보면서 사형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사형은 사약을 받는 사사형, 백지사형, 교수형, 머리를 자르는 참형, 살을 저미고 몸을 자르는 능지처사형 등이 있었습니다. 참형은 추분을 기다렸다가 이듬해 춘분까지 형조와 포도청, 그리고 의금부가 집행하는 대시참형과 때를 가리지 않고 군기관이 집행하는 부대시참형이 있었습니다.
 

 
의좋은 순교자 김정득과 김광옥은 1801년 5월25일 부대시참형으로 공개 처형되어 잘린 머리를 장대에 며칠간 매다는 효수경중을 당했습니다.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
 
대흥봉수산순교성지는 이들 순교자의 수형생활과 처형을 재현한 성지로, 그 중 ‘형옥원’은 옥사와 처형장, 순교자들을 조리돌림하던 저잣거리를 성지 내에 상징적으로 조성하고 ‘대흥형옥원’이라고 명명한 곳입니다. ‘대흥형옥원’은 옥사와 참수대가 있는 한옥 3칸 감옥입니다. 
 
대흥옥
▲대흥옥
 
순교자의 당시 모형을 재현해 놓은 내부에는 '대흥 고을을 다 준다 해도 천주를 배반할 수 없소'라는 문구에 숙연해집니다. 순교자 124위 복자화를 보는 순간 예산 일원이 천주교 초시 신앙의 많은 신도들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2014년 8월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 당시에 시복된 124명 순교자 중 49명 대부분이 내포지역에 살았으며, 그 중 29명이 예산 출신이라고 합니다.
 

 
신유박해 때 김정득 베드로와 김광옥 안드레아는 공주 무성산에서 잡혀 각각 대흥과 예산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처형되기 위해 귀향하던 중 예산과 대흥의 갈림길에서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라는 짧은 작별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튿날 1801년 8월25일(음력 7월17일) 한날 한시에 각기 읍내 물가에서 처형되어 ‘의좋은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을 심문하였던 대흥동헌과 옥사터 등이 있어서 ‘의좋은 형제공원’과 함께 대흥봉수산순교성지’도 둘러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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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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