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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에서 만끽한 가을 정취

2019.11.18(월) 15:31:49희망굴뚝 ‘友樂’(coke4856@hanmail.net)

가을이 깊어갈수록 가까운 동네 뒷산이나 공원에만 가도 곱게 물든 단풍으로 눈이 호강을 합니다. 문득 사계절 어떤 계절에 가도 멋스러운 공주공산성의 가을이 궁금하여 간단히 여장을 꾸리고 떠나 보았습니다.

공주공산성은 1985년 사적지 제12호로 지정되었으며 성·건물·누각·사찰 등이 무수히 많습니다. 공주공산성은 시대에 따라 행정·군사적 위상이 변하면서 '웅진성', '웅천성', '공주산성', '공산석성', '공주산성' 등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공산성은 산의 형태가 한자 '공(公)'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1452년 『고려사절요』에 처음 등장한다고 합니다. 길이가 총 3km이고, 총연장 거리가 2,660m라고 합니다.
 

 
공주공산성을 둘러보는 데는 약 2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4곳의 성문 중 1993년에 복원된 서쪽 누각 '금서루'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봄에는 철쭉 핀 풍경으로 미의 절정을 보여주는 곳이죠. 가을 또한 단풍과 가을꽃으로 치장을 하고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공주공산성 성벽은 2.5km가 넘는 규모로 토성과 석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쌓은 석성이 대부분이지만, 그 아래에는 백제시대에 쌓았던 성벽의 흔적이 일부 발견되어 토성을 쌓았다가 이후 석성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서쪽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길은 공산성 석성 벽의 곡선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절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성벽 끝으로 걸어가면 하늘과 잇닿아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공주공산성의 서북쪽 산마루에 위치한 아름다운 전망대는 1960년대 이후에 '관망대'라고 불리다가 2009년 공모를 통해 '공산정'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멀리 금강철교와 청벽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어 어른이든 꼬마든 공산정에 오르는 관광객의 첫 마디는 "아! 멋있다."로 똑같습니다.
  

 

 
공산정에서 바라보니 일명 '망북루'라고 불리는 공북루가 보입니다. 금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강북과 강남을 왕래하는 남북통로의 관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입통제로 성벽을 따라 이동할 수 없어 문루를 통과하게 되었는데요, 누벽에는 고인들의 시서가 다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가파르지만 단풍으로 물든 나무터널을 기분 좋게 지나오니 마음을 가라앉히는 불경 소리가 들려옵니다. 고려시대에 창건한 사찰 '영은사'에 도착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합숙소로 사용되기도 한 영은사는 금당인 원통전과 강당인 관일루, 숙종 41년에 주조된 동종도 유명하지만, 오래된 은행나무 역시 영은사의 자랑거리입니다. 노랗게 익은 은행잎이 떨어질 철이라 절의 관리인은 저물어가는 석양을 등지고 부지런히 비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공주공산성 동쪽 가장 높은 곳에 있는 2층 누각 '광복루'에 올랐습니다. 원래 공북루 옆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웅심각(雄心閣)으로 불렀으나, 1946년 4월에 김구 선생과 이시영 선생이 나라를 다시 찾았음을 기리고자 광복이란 이름을 붙여 누각 명칭이 '광복루'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임류각'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500년(동성왕 22년)에 연못을 파고 기이한 금수를 길렀다'고 하고, 흐르는 금강물을 내려 본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인 건물입니다. 1993년 고고학 자료에 근거하여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하단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바로 뒤편에는 '명국삼장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정유재란 때 공주에 머물렀던 군대를 지휘하던 명나라 장수 이공, 임제, 남방위 3명에 대한 송덕비라고 합니다.
 

 
공주공산성 4개의 성문 가운데 서쪽의 '금서루'와 함께 동쪽 '영동루'는 터만 남아 있었는데, 발굴조사 자료와 '공산지'를 통해 2층 문루로 1993년 복원되었으며 2009년 공모를 통해 현재의 성문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어두컴컴해져서 공주공산성 남문인 '진남루'에 당도했습니다. 내외 출입을 위해 축조한 누각으로 1903년 홍승헌이 개축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고, 세월과 풍우에 사적이 사라진 것을 1949년 재건하고, 1971년 해체 복원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합니다.
  

 
연지, 만하루, 쌍수정 등지를 돌아보지 못했는데 날이 저물어 아쉽게 공주공산성을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공주공산성의 가을 비경 속에서 석양을 바라보고 있자니 조석으로 공주공산성을 산책 삼아 오르내린다는 인근 공주시민들이 무척이나 부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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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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