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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랜 기록에 담긴 공주의 효자 향덕

효자 고을 공주시의 효심공원에서 만난 효자들

2023.11.15(수) 11:19:54계룡도령춘월(mhdc@tistory.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주시에는 기록상 가장 오래된 효자 향덕이 있고, 고려시대 효자 이복이 살았던 곳입니다.
그래서 도심에는 효심공원이 있는데요.
오늘 그 효심공원과 효자들을 소개하렵니다.^^

공주시 효심공원 안내문
▲ 공주시 효심공원 안내문

공주의 효심공원은 2015년 12월 착공해 2016년 11월 15일 완공된 중동 281-5번지 일원에 조성된 공원으로 부지 1615㎡에 총 13억 4천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효행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우고 간직해 후세에 전하고자 세워졌는데요.
삼국사기 문헌에 최초로 기록된 효자 향덕과 국고개 전설의 주인공 효자 이복의 효행비와 비각을 옮겨 세우고 효행관련 상징 조형물인 효열문, 효원탑, 효행상, 행복가족상과 건립기념비를 제작해 설치했습니다.

공주시 효심공원
▲ 공주시 효심공원 입구 효열

효심공원은 옛 공주 도심인 충남역사박물관 입구에 있어 중동성당, 기독교 선교유적, 제민천, 풀꽃문학관, 우금티동학유적, 산성시장을 잇는 관광 인프라의 시작점으로 공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우리 삶의 근간인 효를 돌아 보게 하는 교육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공주시 효심공원 효원탑
▲ 공주시 효심공원 효원탑

특이한 형태의 탑, 탑의 이름이 효원탑(孝元塔)인데 한자를 그대로 풀어 보면 효가 가장 으뜸이라는 말입니다. 탑의 형태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공주시 효심공원 효자 이복 상황상
▲ 공주시 효심공원 효자 이복 상황상

이 상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공주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옛날 마을 어귀에 비석이 줄지어 늘어선 ‘비선거리’가 공주 옥룡동에 있었습니다.

고려 때, 이 비선거리 마을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릴 때부터 남의 집 일을 하고 음식을 얻어 눈이 먼 어머니를 봉양하며 살아가던 이복이라는 소년이 있었답니다.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 여느 때처럼 밥과 국을 얻어 어머니께 드리려고 집으로 가던 중 그만 얼음을 밟고 미끄러져 어머니께 가져다 드릴 밥과 국을 땅에 쏟아 버렸답니다.
이복은 집에 계신 굶주린 어머님 생각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었고 이후 이복이 넘어진 그 자리를 ‘갱경(국 갱羹 기울 경傾)골’이라 부르게 되었고 후에 ‘국고개’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여 국그릇을 들고 우는 모습과, 효자 이복이 어느 해 겨울 어머니께서 병이 들자 백방으로 약을 구해 지극 정성으로 병 구완을 하였으나 차도가 없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답니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스님이 이복 어머님의 병에는 잉어피가 효험이 있다고 이야기 해 잉어를 구하러 금강으로 갔답니다.
하지만 엄동설한에 꽁꽁 얼어 있는 강에서 잉어를 구할 수 없어 몇 번을 헛걸음을 하다가 어느날은 천지신명(天地神明)께 잉어를 잡아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지성으로 기도하는데 갑자기 금강의 얼음이 깨어지더니 커다란 잉어 몇 마리가 물 밖의 얼음 위로 나와 이 잉어를 어머니께 드려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잉어까지 함께하는 모습의 상이 만들어 진 것이랍니다. ^^

공주시 효심공원 효자 이복 비각
▲ 공주시 효심공원 효자 이복 비각

소년 효자 이복(李福), 국고개의 전설 이복(李福)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공주목 인물조에 처음으로 나타나며 '고려 사람으로 아전이었고 효자였다'는 기록되어 있답니다.
이후 출간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 '호서읍지', '공산지'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공주시 효심공원 효자 이복 행적비
▲ 공주시 효심공원 효자 이복 행적비

정려 비각에 있는 효자이복행적비인데 1978년 새로이 조성한 것으로 비면에 효자 이복의 효행이 상세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효자 이복(孝子 李福)
고려 후기의 효자 이복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공주목(公州牧) 인물조에 고려시대에 아전을 지낸 효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호서읍지(湖西邑誌)', '조선환여승람(朝鮮?輿勝覽)' 등에도 기록되어 있답니다.

이복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아가던 중 어머니가 병이 들자 매일같이 읍내에서 밥과 국을 얻어다 따뜻하게 봉양하였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의 효성을 가상히 여겨 국을 끓이면 이복의 어머니 몫으로 한 그릇을 따로 떠 놓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이복이 어머니에게 드릴 국을 얻어 고개를 넘어가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국을 엎지르고는 굶주린 어머니를 생각하며 서럽게 울었다고 하는데, 고려 조정에서 그의 효성에 감동하여 포상하고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되도록 '효자이복지리(孝子李福之里)'라고 새긴 효자비를 세웠고, 세월이 흐르며 이 비석은 옥룡동의 비선거리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1978년 이복의 효를 알리기 위해 발기인 이치하와 옥룡동 노인회가 중심이 되어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산 7번지에 옮겨 세우면서 기존의 비석 외에 이복의 효행을 알리는 비석(신 행적비 54×173×23㎝)을 새로 건립하였고, 1979년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인 비각을 세웠는데 내부에는 높이 162㎝, 너비 27㎝의 구비(舊碑)와 높이 173㎝, 너비 53㎝, 두께 23㎝의 비각에 신비(新碑)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가 이곳 효심공원으로 다시 옮겨 세워졌습니다.

현존하는 정려가 대부분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인 데 비하여 이복의 효자비는 흔치 않은 고려시대의 효자 표창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을 끄는데 사람들이 이곳을 '국을 엎질렀다'는 뜻의 '갱경(羹-국, 傾-기울)골'이라 불렀고 이것이 지금의 '국고개'로 변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효자 이복비는 2009년 3월 16일 공주시의 향토문화유적 제34호로 지정되었으며 효심공원에는 원래의 비석이 보존 관리되고 있습니다.

공주시 효심공원 효자 이복 행적비
▲ 공주시 효심공원 효자 향덕 행적비

효자 이복의 비각 옆에는 나란히 효자 향덕비각이 있는데 그 속에 있는 비는 모사본입니다.

효자 향덕(孝子 向德)
신라효자향덕정려비(新羅孝子向德旌閭碑)
향덕(向德)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5대 경덕왕 때 자신의 살을 베어 모친을 봉양한 효자로 웅천주(熊川州) 판적향(板積鄕) 사람으로 아버지 이름은 선(善)이고 자(字)는 반길(潘吉)인데, 타고난 천성이 온후하고 선량하였고 향덕 역시 효성스럽고 순하여 향리에서 부자의 인성과 행실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경덕왕(景德王 신라의 제35대 왕 재위 742∼765) 14년[755년 을미(乙未)]에 크게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고 더구나 전염병까지 겹치게 되었는데 이때 향덕의 부모도 역시 굶주리고 병이 났으며, 어머니는 등에 종기가 나 거의 죽게 되었답니다.
이에 향덕이 밤낮으로 옷도 벗지 못한 채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였으나 먹을 것이 없어 부득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내 이를 끓여 드시게 하고, 어머니의 등창은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어 회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그는 어머니에게 드릴 물고기를 잡기 위해 마을 앞 개울에서 고기를 잡다가 깨진 얼음에 상처를 입어 흘린 피가 냇물이 붉게 물들이자 후세 사람들은 이를 혈흔천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 향사(鄕司 고을 관리)가 주(州)에 보고하고, 주에서 왕에게 보고하여 나라 전체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에 왕은 그 효행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 교서를 내려 조(租) 3백 곡(斛)과 집 한 채와 구분전(口分田) 약간을 내려 치하하고 지역 관청에 명하여 비석을 세우고 그 일을 기록해 높이 기리도록 하였기에 지금도 사람들이 그곳을 이름하여 효자 마을 ‘효가(孝家)’, 효포(孝浦)라고 불린답니다.

이러한 향덕의 효행은 고려시대에는 물론 조선 후기까지 전승되면서 효행을 따라 부모를 봉양하는 많은 효자 열부를 낳는 시초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에 세워져 있는 ‘신라효자향덕정려비(新羅孝子向德旌閭碑)’는 1741년(영조 17) 당시 충청도관찰사였던 조영국(趙榮國)이 글 새겨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공주시 효심공원 효자 이복 행적비
▲ 공주시 효심공원 행복가족상

3대의 가족이 어우러져 환하게 웃는 모습을 새긴 행복가족상입니다.
제목이 아니라도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죠?

공주시 효심공원 3대행복상
▲ 공주시 효심공원의 공주시 상징인 곰과 보살상

효심공원의 한 구석에는 이런 모습의 공주 상징 곰과 보살로 보이는 사람이 함께 있는 상이 세워져 있더군요.

무슨 의미일까요?

아무튼 효(孝)는 행(行))의 근본이요 만행(萬行)의 으뜸이라고 하죠?
보고 배운 것을 따르기 마련이니 내가 행하면 자녀들이 보고 배울 것이고 그 자녀의 효행이 그 자녀들로 대를 이어 전해지겠죠?
효는 행하는 것이지 책 속에 있거나 입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진심으로 효를 다해 보다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쏟아야 하겠습니다.^^


효심공원
충남 공주시 국고개길 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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