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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공주 신원사에 배롱나무 꽃이 예쁘게 피었어요

2023.08.12(토) 14:06:52해송이송희(shreer@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위치한 백제 시대의 고찰 신원사(新元寺)에는 지금 녹음이 짙어 싱그러움이 넘치는 여름 풍경에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어, 천 년 고찰의 멋에 아름다운 맛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신원사는 동학사, 갑사와 함께 계룡산 3대 사찰로 유명한 곳인데요 여름철 신원사의 맛과 멋을 함께 즐겨볼까요?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신원사는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 화상이란 고승이 창건하고 그 뒤에 여러 번의 중창을 거쳐 1876년 보련 화상이 고쳐 짓고 1946년 만허 화상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신원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전해지며 원래의 건물지는 신원사와 중악단 남쪽에 전개된 넓은 밭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은 금당지를 중심으로 신원사의 원 건물지가 있을 것으로 믿어지나 조사의 결여로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이 금당지로 믿어지는 지역을 중심으로 오층 석탑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본래의 사역이었음을 쉽게 알게 한다. 이와 같은 원 금당지를 중심으로 석탑이 있는 이외의 현재의 신원사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대웅전의 우측에 독성각이, 좌측에는 영원전이 있는데, 이들은 최근에 신축 혹은 개수가 이루어졌다. 한편 대웅전에는 전내(殿內)에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하여 우측에 대세지보살을, 좌측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매표소(무료 입장이라 표는 팔지 않음)를 지나면 바로 보이는 일주문의 모습입니다.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배열되어 있는 데서 유래한 말로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가운데 첫 번째 문이랍니다.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일주문을 지나면 보라빛 맥문동 꽃이 활짝 피어 방문객을 맞아줍니다.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지난 해까지만 해도 맥문동이 많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많이 심었나 봅니다.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절 마당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대웅전 좌우로 붉은 꽃이 활짝 핀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데요 바로 배롱나무입니다.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대웅전(大雄殿)은 1978년 12월 30일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신원사(新元寺)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의 계룡산(鷄龍山) 자락에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대웅전에는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며 기단은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다. 정면 3칸은 같은 간격으로 나뉘어져 있고 옆면과 뒷면에는 문이 없다.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짧은 널을 가로로 하고 긴 널을 세로로 놓아 짠 마루)를 깔았으며 불상 위에는 닫집[唐家]을 달았다. 천장은 가운데에 우물 천장을 두었다. 현재의 대웅전은 1876년(고종 13)에 보연 화상(普延和尙)이 중건한 것이다.(출처 : 두산 백과)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우측 배롱나무의 모습인데요. 좌측의 배롱나무보다 수령이 어립니다.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좌측의 배롱나무는 수령을 알 수 없지만 나이가 제법 되어 보입니다.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지난 봄 이곳에 왔을 때, 이 나무는 고사한 것처럼 보여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살아 나서 꽃을 예쁘게 피웠네요.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옆으로 뻗은 가지를 대웅전과 함께 담아봅니다. 배롱나무는 꽃도 꽃이지만 꾸불꾸불한 가지가 마치 남성의 근육을 보는 것 같은데 이것이 배롱나무 특유의 멋이 아닐까 합니다.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나무 가지의 근육질의 멋에 반하여 이리 저리 살펴 보며 셔터를 눌려 댑니다. 목백일홍(나무백일홍)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배롱나무는 부처꽃과 배롱나무속의 낙엽 활엽 교목이며 꽃말은 부귀, 애교라고 한답니다.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가지의 형상이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사찰 지붕의 기와와 배롱나무 꽃이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개망초의 하얀 꽃과 배롱나무의 붉은 꽃도 멋지게 조화를 이루네요.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내웅전 안의 모습입니다.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이번에는 종무소 앞 담장에 곱게 핀 능소화에 눈길을 돌려 봅니다. 능소화는 자세히 보면 이름 만큼이나 예쁜 꽃이랍니다.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경내에는 천년 고찰 답게 고목 나무들이 많은데요 이끼가 몸통을 뒤덮고, 버섯이 틈새를 비집고 자라나는 모습에서 태고적 신비를 어렴풋이 나마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이번에는 조선 시대의 신앙 유적인 (中岳壇)으로 가봅니다. 중악단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중악단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중악단은 1394년(조선 태조 3년)에 창건한 신원사(新元寺)의 산신각이다. 산신은 원래 산하대지(山河大地)의 국토를 수호하는 신이며 산신제는 민족 정기의 고양과 모든 백성의 합일(合一) 및 번영을 기원하던 팔관회(八關會)를 후에 기우제, 산신제라 부르게 된 것이다. 제단의 명칭은 계룡산신 제단이라는 뜻에서 계룡단(鷄龍壇)이라고 하였으나 고종 때 모향산과 지리산 산신각을 각각 상악단(上嶽壇)과 하악단(下嶽壇)이라 하고 두 산의 사이에 있는 계룡산 산신각을 중악단(中嶽壇)이라 한 것이다. 1651년(효종 2년)에 철거되었다가 1879년(고종 16년)에 명성 황후가 다시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궁궐 양식을 그대로 축소하여 만든 건물의 안에는 산신도(山神圖)가 모셔져 있다. 산신제는 옛부터 내려온 산악 신앙인데, 현재 상악단과 하악단은 소실되었고 중악단만 유일하게 남아있다.(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백제 시대의 고찰 공주 신원사(新元寺)의 여름 사진

중악단 앞 등산로 옆에 석탑이 하나 우뚝 서 있는데요 충청남도 유형문화제 제 31호인 5층 석탑입니다. 이 탑은 원래 신원사의 중심에 자리했던 탑인데 두 개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4층 지붕까지만 남아 있습니다. 탑의 몸체가 기단에 비해 둔해 보이고 지붕 돌의 폭이 비슷해서 중후한 느낌을 줍니다. 탑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도드라지게 조각해서 나무로 만든 탑 처럼 보이게 하였습니다. 1975년 보수공사를 할 때 중국 당나라의 동전인 개원통보와 송나라의 동전인 함원통보 등이 발견되어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출처 : 현지 안내문)

천년고찰 신원사에서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 들으며 고즈넉한 사찰의 분위기에 더하여 붉은 배롱나무 꽃과 보라 빛 맥문동 꽃의 아름다움에 빠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신원사
충남 공주시 신원사동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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