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전체기사

전체기사

충남넷 미디어 > 소통 > 전체기사

복원중인 면천읍성 돌아보다.

미에로 같은 읍성이 궁금하다

2023.06.18(일) 17:49:26김기숙(tosuk48@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500여년 전에도 공사실명제가 있었다. 
면천 읍성에는 읍성의 축조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각자 성들이 남겨져 있다. 각자 성들은 면천 읍성 공사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책임 군현의 이름을 새긴 성돌이다. 공사실명제로 공사가 끝난 후 그 구간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해당 군현에서 보수를 책임진다는 표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 50여군의 장정들이 면천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어 면천읍성의 축성에 많은 군현이 동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확인된 각자 성들은 총 3개이다. 면천 성곽을 둘러보고 나니까 성곽도 각자 성격이 다른 것을 알 수가 있다.
해미읍성을 쌓을 때도 돌에 해당 군현이 있어 실명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복원중인 면천읍성  돌아보다. 사진
역사를 담은 면천테마여행 표지판

복원중인 면천읍성  돌아보다. 사진 
지금은 사라진 면천 초등학교는 1908년에 개교 했다고 한다.

복원중인 면천읍성  돌아보다. 사진
학교 소식을 알리던 게시판.

복원중인 면천읍성  돌아보다. 사진 
풍악루는 지금은 사라진 면천 관아의 문루였던 누각으로 정확한 기록이 없어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한다.원래는 반월루라 하였으나 1852년 당시 면천군수였던  이관영이 중수한  후 풍악루라 이름지어 현판을 걸었고 풍락루기를 남겼다고 한다.풍락루라 한 것은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으로 살기좋은 땅에서 백성과 더불어 평안하고 풍년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명명한 것이라고  그후 노후와 붕괴될 위험이 있어 1943년 철거하였다가 2007년 전의 사진 자료를 토대로 하여 2층 누각 형식의 팔작지붕 건물로 복원하여 다고 한다.  '안내판에서 퍼온 글'   

복원중인 면천읍성  돌아보다. 사진▲은행나무 두 구르

옛 면천 초등학교 부지 안에 있는 은행나무 두 그루는 암수이며 고려초기 심어진 노거수로 충청남도 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통일 할 때 공을 세운 복지겸 장군과그의 딸 영랑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면천에 살고 있던 복지겸 장군이 병으로 병으로 누워 있을 당시 백약이 무효해 그의 어린 딸 영랑이 아미산 올라 백일기도를 드렸고  백일 째 되던 날 신선이 나타나 두견주를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그 곳에 은행 나무를 심은 뒤 정성을 들이면 나을 수 있다고 해 그대로 따라서 했더니 병이 거짓 말처럼 치유됐다는 설화와 해마다 마을 주민이 은행나무에 목신제를 올린다고 한다. 

복원중인 면천읍성  돌아보다. 사진
▲학교 마당과 멀리 보이는 성 

복원중인 면천읍성  돌아보다. 사진

마당에  조종관을 짓는 중인가 보다.  

복원중인 면천읍성  돌아보다. 사진
▲ 읍성 조감도 

복원중인 면천읍성  돌아보다. 사진

군데 군데 무너진 성위로 잡풀이 무성하다.

복원중인 면천읍성  돌아보다. 사진
 
복원한 성 따라 계속 따라 가 보면 미에로의 성곽이 있고 '원기루' 쉬어가는 정자도 높이 있다. 

복원중인 면천읍성  돌아보다. 사진

성곽이 미에로 같이 생겨서 구불구불 돌고 돌아 안기루 정자에서 조금 쉬었다 왔다.

복원중인 면천읍성  돌아보다. 사진

성곽에서 밖을 내다보면 경치를 볼 수있다.

복원중인 면천읍성  돌아보다. 사진

원기루에서 본 초가집 도 성 안에 조성 중이다.  


면천읍성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821-6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