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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시나, 문장을 짓는 법과 유교의 경전, 역사를 가르치고 성현들의 제사를 지내기도.

2023.03.16(목) 00:09:30김기숙(tosuk48@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덕산 향교 전경. 나무들이 가려져 있어 향교 건물이 잘 안 보인다.

덕산 향교는 유학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다. 향교는 시나 문장을 짓는 법과 유교의 경전과 역사를 가르치는 곳이자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갑오개혁 이후 교육기능은 사라졌으나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초하루와 보름에 향을 피워 지금도 옛 성현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덕산향교가 처음 세워진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조선 초 각 지방 군현에 향교를 세웠던 1413년 (태종 13)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덕산향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격으며 건물이 화재로 불에 타 인조 때 (1623~1649)수리한 적도 있다.

대성전은 1682년(숙종 8)에 대들보를 올렸으며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보수를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덕산향교에는 중국의 유학자 18현 (신라~조선까지의 18명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과 교육공간인 명륜당이 있으며 매년 봄에 춘향석전제와 가을에 추향석전제등 일 년에 두 번 두 차례 큰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한 매년 가을 서진 지역을 답사하여 친목을 도모하고 전임 강사를 초빙하여 교양강좌를 여는 등 지역 사회 유림 활동에 힘쓰고 있다고 전한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 大小人原過此者계下馬 .  '대소인원과차자계하마' 란 벼슬을 하는 이나 아니 하는 이나 모두 말에서 내리라고 새겨져 있고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右 는  덕산 향교에 대하여 알리는 표지판이다. 
조선시대의 지방 교육관 시나, 문장을 짓는 법과 유교와 경전과 역사를 가르치는 곳이라 적혀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명륜당 뒤에는 기와를 올린 담이 둘러 쳐져 있고 몇 백 년 된 백일홍 나무가 세월의 두께를 이기지 못하고 옹이가 되어 홀로 서있다. 머지않아 잎 피고 꽃이 피면 나비가 오겠지.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향교 첫번째 들어가는 외삼문 태극무늬를 그린 외삼문이 궁금하다. 모든 대문은 두 쪽인데 향교는  왜, 외삼문일까?

덕산향교는 조금 높아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안에 명륜당이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홍살문 

향교 안에서 내려다 본 홍살문의 붉은 색은 귀신이 꺼리는 색이라 하여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로 홍살문을 세운다고 하며 집안의 안녕과 무병을 바라는 의미라 한다. 화살처럼 뾰족하게 생겼다고 하여 붉은 화살문이라 하기도 한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공자상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대성전

대성전은 문묘에서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데 문이 닫혀있어 위패는 구경을 못했지만 공자는 중국 춘추시대에 사상가 학자로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대성전 아랫채에 있는  명륜당의 건물 구조는 정면 7 칸 측면 1 칸 의 처마 맞배 지붕 건물로 3 칸은 마루이고 좌측에는 방과 창고를 두었으며 가구는 3량 집 구조다. 마루 바닥인 강당에서 조선시대 유생들이 글을 읽었을 것이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명륜당 다락에는 무엇에 쓰는지 네모난 대바구니가 올라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대성전  맞배 지붕 단청으로 그린 그림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기만 하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옛 건물인 명륜당과 대성전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는데 바람이 불어 춥기도 하고 대문은 덜커덩 거리고 마음이 으슥 하지만 끝까지 잘 구경하고 돌아왔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대성전에서 내려다 본 명륜당 과  덕산 시내.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향교 관리실 같기도 하고 유생들의 숙소일까 아리송 하지만 안내가 없으니까 궁금하지만 아쉬움에 발길을 돌렸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외삼문에서 본  속살이 들여다 뵈는 은행나무.

어느 향교 마다 주변에 몇 백 년 된 은행 나무들이 서있다. 은행나무 속 살 속으로 엿보이는 새파란 하늘이 정겹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관이었다. 사진

▲향교 들어가는 길 옆에  탑과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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