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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은 알고 있다

내포칼럼-편세환 서산문화원장

2023.02.26(일) 21:01:05도정신문(deun127@korea.kr)

가야산은 알고 있다 사진


본래 산은 명산(名山)과 영산(靈山)이 있다. 명산은 기암괴석과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산이 명산이고, 영산은 경관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산의 기운이 많은 생명을 보듬어 먹여 살리고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는 신령스러운 산이 영산이다. 

예로부터 우리의 조상님들은 영산에는 반드시 제단을 만들어 때때로 제를 지내 왔다. 과거 내포의 가야산에는 나라에서 제를 올렸으며, 현재까지 각 지역에서 여러 형태의 제를 지내고 있다. 평창올림픽이 개최되었던 가리왕산은 명산이지만 영산이라 볼 수 없기에 올림픽 고유제를 태백산에서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가야산의 가야(伽耶)라는 이름은 불교에서 말하는 붓다 가야에서 기인 된 이름으로 우리나라에는 여러 지역에 가야산이 있다. 특히 내포의 가야산에는 원효봉이 있고 원효암도 있으며 백여 개의 사찰과 암자가 있었던 불교의 성지다.

내포의 영산 가야산은 어디에서부터 뻗어 왔는가?

금북정맥의 한 줄기가 충청도 내포(內浦)지역을 향하여 힘찬 기세로 달려왔다. 속리산에서 출발하여 광덕산, 성주산, 오서산, 백월산, 덕숭산을 거쳐 가야산에 이른다. 가야산의 최고봉인 가야봉(678m)에서 북쪽으로 석문봉을 거쳐 한 줄기는 상왕산, 동암산, 간대산에 이르고, 다시 한 줄기는 석문봉에서 북동쪽으로 옥양봉, 수정봉에 이른다. 흔히 가야산을 상왕산이라 호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히 상왕산은 전체 가야산의 일부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의 어릴 적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가야산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고 참나무 등 큰 잡목은 그리 많지 않았다. 능선 따라 나무 밑에는 나뭇잎들이 융단처럼 깔려있고 불쑥불쑥 솟아오른 곳을 헤집으면 틀림없이 노란 싸리버섯이 낙엽 속에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었다.

보릿고개라 했던 봄철에는 아침 일찍 동네 아낙네들이 짚으로 엮은 구럭을 메고 삼삼오오 가야산으로 향했다. 여인들은 온종일 산속을 누비며 각종 산나물과 버섯을 채취하여 머리에 이고 저녁때에야 집으로 향했다. 산나물을 넣고 밥을 하거나 죽을 쑤어 끼니를 때우는 서글픈 풍경이 봄철마다 벌어지고 있었다. 이렇듯 가야산은 백성들의 생명을 지켜주고 인재를 길러내는 영산이다.

2차대전 말기 일제는 전쟁물자인 기름 보급을 위하여 가야산의 노송에 큰 피해를 주었고, 1945년 8월 15일 느닷없는 광복과 더불어 입산 통제가 허술해진 틈을 타 인근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산으로 달려들어 수백 년 된 노송들을 남벌하여 땔감으로 시장에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한때는 군부에서 후생사업이란 명목으로 소나무를 벌목하여 귀중한 우리의 유산이 손실되는 아픔을 겪은 바 있다.

석문집(石門集 : 김기석 지음)에 의하면 가야산은 아름다운 절경의 계곡이 99개나 된다고 한다. 대표적인 계곡으로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마애삼존불상과 보원사지가 있는 강당계곡(講堂溪谷)과 고랑동 계곡이 있으며, 해미면 산수리의 수원동 계곡(水源洞 溪谷),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와 옥계리에 있는 가야동 계곡이 대표적이다. 현재 이곳은 여름철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한편 가야산의 아름다운 계곡을 시(詩)로 읊은 구곡(九曲)이 있다. 즉 병계 윤봉구와 석문 윤봉오 형제가 지은 가야구곡(伽耶九曲)은 관어대(觀魚臺), 옥병계(玉屛溪), 습운천(濕雲泉), 석문담(石門潭), 영화담(暎花潭), 탁석천(卓錫川), 와룡담(臥龍潭), 고운벽(孤雲壁), 옥량폭(玉梁瀑) 등이다. 또 직암 이철승이 운산 고랑동에서 지은 고랑구곡이 있는데 귀암(龜岩), 청풍대(淸風臺), 열천(冽泉), 탁영계(濯纓溪), 일감뢰(一鑑瀨), 견심대(見心臺), 벽옥담(璧玉潭), 용폭(龍瀑), 백암(白巖) 등이 있다. 약천 남구만의 영당이 있었던 수원동 계곡은 누군가가 이 일대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수석절승구곡(水石絶勝九曲)이 있다. 그 외에도 가야산에는 기암괴석의 절경이 많아 전국 각지에서 등산객과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다.

또 한 가야산이 품고 있는 국보 84호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은 백제의 미소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 가야산의 대표적 사찰은 개심사, 문수사, 일락사, 보덕사 등 여러 사찰이 있는데 이 산에 백 개의 암자를 지으면 모두 망한다는 어느 도인의 말을 무시하고 백번째 백암사를 지어 그 후 모든 암자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가야산은 슬픈 역사도 지니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하하자 경찰은 보도연맹을 통하여 공산 분자를 소탕하였고, 또한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퇴로가 막힌 인민군이 퇴각하면서 1950년 9월 27일과 28일 우익 인사에 대한 학살이 이루어졌다. 또 9월 30일에는 반대로 우익들이 좌익을 학살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즈음 가야산을 중심으로 서산, 당진, 예산, 홍성 등 4개 군에 남아있던 일부 인민군과 지역 공산당들이 가야산에 숨어들어 자기들끼리 자칭 해방구를 설치하고 장기간 은거하면서 밤이면 가축을 잡아가고 식량을 탈취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에 4개 군에서 경찰을 중심으로 민간토벌대를 조직하여 공비소탕 작전을 수차 실시하였다. 이때 사살되거나 붙잡힌 공비들은 대개 지역 공산주의자들로 이때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이렇듯 가야산은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가야산이 품고 있는 사찰과 암자 기타 문화유적과 유물들은 우리 충청남도의 귀중한 유산이며 우리 후손들이 영구히 보전 관리해야 할 자산이다.

가야산은 내포의 영산으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가야산을 정성으로 가꾸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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