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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만리장벌에서 피어나는 희망

절망에서 희망을 일구는 땅의 이야기

2023.02.21(화) 20:43:06나드리(ouujuu@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마음에서 느껴지는 온정 때문이다. 온정(溫情)은 “따뜻한 사랑이나 정”을 의미하는 사전적인 언어가 아니라,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마음의 언어인 것이다. 정이 가득한 미소와 웃음은 생명이 가득한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정이 깊은 우리 민족에게 온정의 의미는 공동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석양을 담을 수 있는 만리포 조형물

▲ 석양을 담을 수 있는 만리포 조형물


풍경만큼 아름다운 사람들의 온정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알알이 박혀있는 곳이 있다. 사랑을 꿈꾸고 사랑을 노래하는 곳, ‘만리포해수욕장’이다. 입춘에서 우수로 그리고 경칩으로 향하는 24절기의 변곡점에서 봄은 아직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총총거리며 밀려드는 해변의 파도에도, 밀려드는 파도를 감싸주는 해변에도 봄은 아직 요원(遙遠)하다.

추위가 가득한 2월의 만리포 전경

▲ 추위가 가득한 2월의 만리포 전경

  
만리포의 온정 가득한 사랑은 조선시대에도 있었고, 그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조선 세종 때, 명나라 사신들은 주로 안흥항으로 와서 조선과 교류를 했다. 안흥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워 당나라 때부터 사신들이 이용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명나라 사신일행이 서해의 뱃길을 통하여 조선에 오게 되었는데 풍랑을 만나서 막동(현재 천리포)으로 밀려 정박하게 되었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만리포 전경

▲ 전망대에서 바라 본 만리포 전경

  
그런데 명나라 사신 일행이 돌아갈 때도 굳이 상륙했던 막동항에서 승선을 고집했다고 한다. 이유는, 주변 주민들의 따뜻한 온정과 후한 인심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태안 관아와 조정대신들은 명나라 사신들을 배웅하는 전별식을 막동 주변 모래장벌에서 거행했다. 당시 전별식은 “수중만리 무사항해(水中萬里 無事航海)”를 기원하는 의식이었는데, ‘수중만리’의 ‘만리’를 인용하여 ‘만리장벌’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 만리장벌이 지금의 만리포가 된 것이다.

만리포의 멋진 모래장벌

▲ 만리포의 멋진 모래장벌

  
5백 년 전, ‘만리장벌’은 만리(萬里)까지 펼쳐진 모래사장을 보고 지어진 이름이다. 은빛 모래사장이 만리까지 펼쳐진 광경처럼, 이곳 주민들의 삶은 아름답기만 하다. 1955년 해수욕장으로 개장되면서 당시 소원면장 박노익이 만리장벌을 ‘만리포’로 부르면서 지금의 ‘만리포해수욕장’이 되었다. 그 후 1958년 가수 박경원의 ‘만리포 사랑’이 히트를 치면서 만리포는 명실상부(名實相符)한 해수욕장이 된 것이다.

만리포 사랑 노래비와 석양문

▲ 만리포 사랑 노래비와 석양문


만리포 사랑 노래비’에 새겨져 있는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이란 가사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가슴 설레이는 만리포해수욕장

▲ 가슴 설레이는 만리포해수욕장

  
2023년 만리포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되었다. 희망의 가치는 절망의 참상을 기억하는 사람들만이 말할 수 있다.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 6분,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 예인선단과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한 만리포 앞바다에서 충돌했다. 이 사고로 유조선에 실려 있던 원유 1만 2547㎘가 유출돼 국내에서 손꼽히는 청정해역인 태안 앞바다를 순식간에 검게 물들였다. 죽음의 검은색 원유는 천리포와 만리포해수욕장으로 모여들면서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지옥으로 변했다.

희망공연장에 세워져 있는 만리포연가 석조물과 비석

▲ 희망공연장에 세워져 있는 만리포연가 석조물과 비석

  
유난히 춥고 긴 2007년의 겨울을 따뜻하게 해준 것은 사람들의 온정이었다. 마음과 마음이 더해지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따뜻한 온정은 열기로 바뀌었고, 죽음의 원유는 희망의 불씨가 되었다. 123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기름을 닦아내고, 나르고, 위로하면서 태안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500년 전, 명나라 사신들이 느꼈을 온정의 느낌과는 다르다. 시커먼 악마와 맞서 싸우는 전사들의 다큐멘터리(documentary)는 절규하고 신음하는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사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유류피해극복기념관에 전시 된 당시의 참상과 기록물들

▲ 유류피해극복기념관에 전시 된 당시의 참상과 기록물들

  
태안 유류피해 극복 기념물은 기름유출 사고와 그 극복과정을 담은 22만 2129건의 기록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2022년 태안원유유출사고 15주년을 10여 일 앞둔 지난 11월 26일, 태안 유류피해 극복 기념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에 등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태안의 기적은 한강의 기적에 이은 대한민국의 문화적인 저력이다. 고사리 손에서 주름진 손까지 손에 손 잡고 기름을 닦아낸 123만 명의 다큐멘터리 주연 배우들의 영화는 아직도 상영 중이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희망 공연장

▲ 희망을 이야기하는 희망 공연장


희망 공연장 전망대에서 바라 본 서해

▲ 희망 공연장 전망대에서 바라 본 서해

  
아직도 만리포해수욕장의 주제는 희망이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조형물에도 희망은 조각되고, 바닷바람과 햇살에도 희망이 넘쳐난다. 희망공연장에서는 희망을 연극하고, 사람들이 모여 희망을 노래한다. 만리포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는 작품이며, 오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아름다운 음악소리와 같다. 절망이 시작된 16년 전 이곳에서 지금의 희망 가득한 풍경들을 상상할 수 없었다.

희망광장의 조형물

▲ 희망광장의 조형물

  
멋진 조형물이 위치한 희망광장에서는 희망을 이야기 한다. 주로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희망광장은 만리포 끝자락에서 천리포로 향하는 곳에 있다. 희망광장의 맞은편에 위치한 ‘유류피해극복기념관’에는 태안의 기적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다. 인류에게 재앙의 현장을 기록하고 알리는 것은 재발방지를 위해서 필요하다.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기록물들을 잘 보전해서 후손들에게 교육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의 모습

▲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의 모습
 

만리장벌에 그려진 발자국들

▲ 만리장벌에 그려진 발자국들

   
만리포해수욕장의 해변에 수많은 발자국들이 그려져 있다. 발자국에 그려져 있는 사연들은 밀려드는 파도에 하소연하다가 금방 바닷물에 녹아든다. 녹아드는 사연들이 아름다운 것은 절망을 녹여서 희망을 피워내는 만리포를 닮았기 때문이다. 만리포의 수많은 모래알만큼 사람들의 발자국들이 그려졌다가 지워지는 이곳은 시간의 연속성을 지켜내고 있다. 그 연속성의 법칙과 같이 태안 주민들은 젊은 꿈들이 사랑을 속삭일 수 있도록 만리포를 아끼고 잘 가꾸어가고 있다.

만리포 입구에 새롭게 세워진 전망대

▲ 만리포 입구에 새롭게 세워진 전망대

  
코로나19 때문에 절망의 나날에서 힘들어했던 우리 국민들에게 만리포는 희망을 상징하는 곳이다. 태안의 기적을 이루어낸 만리포의 온정은 지금도 살아있다. 만리포는 지금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 123만 명에게 손짓하고 있다. “어서 오세요, 오셔서 삶의 희망을 마음껏 충전하고 가세요.” 바람에 실려 보내는 만리포의 온정어린 손짓에 봄이 게으름을 털어낸다.

희망의 메세지를 보내는 만리포 희망광장

▲ 희망의 메세지를 보내는 만리포 희망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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