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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2023.02.10(금) 01:16:09초록나무(buykks@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사적 제13호)


공주는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도시라 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백제의 역사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백제는 기원전 18년, 온조왕이 나라를 세운 이래 678년 동안 존속했던 고대국가이다.
백제의 역사는 한성도읍기(기원전18~기원후475), 웅진도읍기(475~538), 사비도읍기(538~660)로 구분할 수 있다.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한성백제가 무너지고 백제의 문주왕이 새롭게 도읍을 정한 곳이 웅진!
웅진은 지금의 충남 공주를 말한다.
웅진에서 다시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64년 동안 백제가 전성기를 누렸던 곳이다.
660년 백제가 멸망 후, 많은 사람들이 볼모로 잡혀가거나 부흥운동이 전개되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땅속 깊숙이 잠들어 있던 백제의 역사는 1971년 무령왕릉의 발견으로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 무령왕릉 가는 길


무령왕릉과 왕릉원 주차장에 도착해 매표소 쪽으로 이동했다.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공주시 금성동 일대, 송산 남쪽 경사면에 위치해 있다.
과거 명칭은 송산리 고분군으로 불리었으나 2021년 9월 17일 문화재청 고시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변경되었다. 왕릉원으로 가는 길에는 백제 무령왕의 업적과 생애를 살필 수 있도록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 무령왕릉과 왕릉원 모형 전시관


송산리 고분군에는 무령왕릉과 1~6호 분까지 모두 7개의 무덤이 모여 있다.
백제 웅진도읍기를 대표하는 왕실 무덤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7월,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고분군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모형전시관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무령왕릉 및 5호분, 6호분을 실물과 동일한 크기의 모형으로 재현한 곳이다.
무령왕릉 내부는 현재 들여다 볼 수 없는 상태로 고분 영구 보존을 위해 1997년에 내부 관람이 중지되었다.
모형 전시관은 송산리 고분군 발굴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웅진 백제 도읍지로 융성했던 백제 문화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 모형전시관에서 담은 무령왕릉 내부 모습
 

무령왕릉은 1971년, 장마철 배수로 작업을 하던 중에 우연히 발굴되었다.
송산리 고분군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에 조사가 되었고, 왕릉급 무덤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무엇보다 무령왕릉과 왕릉원이 웅진 시기 백제왕릉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1971년 무령왕릉 발견에 있다.
6호분 옆에서 벽돌무덤의 입구가 발견되었는데, 한 번도 도굴되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 1442년 만에 세상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 무덤은 백제의 제25대 왕인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묘로 삼국시대 가운데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고대의 왕릉으로 꼽히고 있다.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온전한 상태로 1,500년 전의 모습 그대로 발굴된 무령왕릉 !
무령왕릉을 제외한 나머지 무덤들은 도굴로 인하여 부장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무령왕릉에서는 금제관장식· 청동거울· 석수 등 총 4,600여 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 되었다.
그중 12종목 17점이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대부분의 유물은 학술적 가치가 높아 국립공주박물관에 보관·전시되어 있다.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출토된 왕과 왕비의 관은 일본에서 자생하는 금송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널길의 입구에서 발견된 지석은 무덤의 주인공과 무덤을 만든 연대를 말해주고 있다.
지석에 새겨져 있는 '백제 사마왕'은 무령왕을 말하는 것으로, 무령왕의 기록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령왕 부분과 일치한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무령왕은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이자, 24대 동성왕의 이복 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무령왕은(재위 501~523)은 웅진백제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왕권 강화와 민생 안정을 이루어 내며 백제 중흥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발견된 지석을 통해 무령왕은 523년 5월에 사망하여 525년 8월에 왕릉에 안치되었고, 왕비는 526년 11월에 사망하여 529년 2월에 안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모형 전시관 관람 후, 백제 고분군이 있는 쪽으로 걸었다. 
낮은 구릉지대에는 백제시대의 왕과 왕족을 모시고 있는 무덤군이 자리한 모습이다.
앞쪽 5호분 옆으로 6호분과 무령왕릉이 보이고, 뒤쪽으로는 1~4호 분이 정비되어 있다.
무령왕릉과 왕릉원의 백제 무덤은 만들어진 형태에 따라 돌무덤과 벽돌무덤으로 구분된다.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 무령왕릉 북벽-현실 

1~5호분은 굴 모양의 돌로 만든 무덤, 굴방식 석실묘 형식을 띈다. 
6호분과 무령왕릉은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벽돌무덤으로 터널 형의 무덤방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웅진시대 벽돌무덤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선진문물을 적극 수용하던 백제 사회의 국제성, 개방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송산리 제1~4호분

 

1400년 이상을 견딜 만큼 견고하게 축조되었던 무령왕릉!
무령왕릉 축조에 사용된 벽돌의 종류는 28종에 이른다고 한다.
주로 사용된 벽돌은 연꽃무늬가 있는 벽돌로 정확한 설계에 의해 생산, 과학적 축조의 묘미를 보여 주고 있다.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고분군 끝자락에 서면 공주 원도심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분군 산책로를 따라 소나무 군락이 펼쳐진 왕릉 숲길을 걸어 보자.
백제 왕실의 제사시설이 있는 정지산 유적까지 걸어도 좋고, 인근에 있는 국립공주박물관을 찾아도 좋다.
뚜벅뚜벅 걷기 좋은 역사탐방 여행지로 백제의 혼이 깃든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추천해 본다. 

 

역사 기행,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령왕릉 사진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 주소 : 충남 공주시 왕릉로 37
- 관람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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