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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하신년(謹賀新年), 황도리 마법의 마음

붕기풍어놀이로 새해를 여는 사람들

2023.01.24(화) 23:19:13나드리(ouujuu@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계묘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 해 1월은 추워서 몸은 움츠려있고, 설 명절이 있다 보니 한 달이 짧기만 하다. 지난한 시간들이 이어지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 모두에게 신의 축복이 내려진다면 좋겠다. 이럴 때 일수록 신명나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 주변의 가까운 이웃들과 모여 앉아서 서로를 위로하고 배려하며 용기를 복돋아 주는 덕담을 나누면 어떨까.

달 모양을 형상화한 황도 선착장

▲ 달 모양을 형상화한 황도 선착장 조형물

 
태안지역은 귀성(歸省) 인구가 많은 편이다. 주민들의 효심과 가족애가 명절 때마다 아들과 딸들의 마음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의 생활이 평안"함을 뜻하는 국태민안(國泰民安)에서 태안(泰安)이란 지명이 만들어진 것도 그 이유이다. 나라가 태평한 것은 "충"이고, 백성들의 생활이 평안한 것은 "효"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충효(忠孝)사상은 유교의 도덕규범 중 2가지 덕목에 해당한다. 태안지역 주민들의 충효사상은 태평성대를 꿈꾸는 사회적 신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신당 앞 느티나무 고목

▲ 신당 앞 느티나무 고목

 
하늘과 바다에 있는 신들에게 제를 올리면서, 액운을 쫓아내고 행운을 부르는 마법 같은 주술이 있다. 그 주술은 태평스럽고 편안함을 뜻하는 “태안(泰安)” 지역 토속신앙(土俗信仰)의 굿판에서 발현된다. 태안은 항구가 위치한 바닷가 마을을 중심으로 당제와 용왕제 같은 제사의식이 발전했고, 새해에는 각 마을마다 주민들이 성황당이나 신당에서 굿판을 벌였다.

황도마을을 안내하는 표지판

▲ 황도마을을 안내하는 표지판

 
황도는 안면도 입구의 동쪽에 위치하고, 백사장은 서쪽에 위치한 바닷가 마을이다. 황도는 신성한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며 경건한 하루를 시작하는 마을이다. 타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며 불타는 황금빛 바다를 가르면서 삶을 개척하는 황도 주민들은 아름답다. 관광객들이 황도에서 장엄한 일출을 맞으며 찻잔을 앞에 놓고 아침을 즐기거나, 백사장 항구의 횟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석양의 노을을 바라보는 광경과는 다르다. 황도의 행정지명은 ‘안면읍 황도리’이며, 백사장은 ‘안면읍 창기리’에 속한다.

신당 옆에 세워진 붕기풍어제의 유래비

▲ 신당 옆에 세워진 붕기풍어제의 유래비

 
바람이 가르는 바닷물 속으로 시간은 속절없이 빨려 들어간다. 시간은 바닷물 사이로 아름다운 황도다리를 만들어 놓고 신기가 넘치는 무당의 주술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기원전에도 황도라는 섬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 후 수천 년이 흐른 서기(西紀) 2023년에도 사람들은 황도에서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풍어(豊漁)를 기원하며 제사의식을 치르고 있다. 제사의식은 황도마을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황도의 붕기풍어제는 나라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고, 그 마음을 신에게 전하는 무당의 마법 같은 주술에서 지극정성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붕기풍어제 3번째 순서로 마을회관에서 세경굿 하는 모습

▲ 붕기풍어제 3번째 순서로 마을회관에서 세경굿 하는 모습

 
매년 정월 초이틀에서 초사흘에는 황도에 사람들이 모인다.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2호로 지정된 “황도붕기풍어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황도붕기풍어제”의 시작은 인간 내면의 잔인한 악(惡)을 위로하듯이 소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이 마을은 진대라는 뱀을 마을신으로 모시고 있어서 뱀의 상극인 돼지를 잡지 않고 소를 잡는다, 소의 목을 고목의 가지에 걸치고 고정시켜 죽이는데, 피가 주변의 흙과 나무에 흥건한 것을 보니 그 참상을 되새기고 싶지 않다. 소는 뿔이 반듯하고 수소만 선택된다. 무당은 소의 뒷다리를 제외한 12부위의 살을 가지고 고사를 지내면서 “붕기풍어제”는 시작되는 것이다.

지태잡기가 이루어진 당집 앞 나무와 바닥

▲ 지태잡기가 이루어진 당집 앞 나무와 바닥

 
정월 초이틀 오전 06시에 시작하는 제사의식은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이어진다. 29시간의 기나긴 “황도붕기풍어제”는 9가지 순서로 진행된다. 첫날은 소를 잡고, 잡은 소를 12부위로 나뉘어 피고사를 지낸다. 그 다음은 마을회관에서 세경굿을 하는데, 이때 지역 유지들이나 뜻이 있는 사람들이 찬조금을 낸다.

세경굿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세경을 바치는 의식이다

▲ 세경굿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세경을 바치는 의식이다


당오르기 준비를 위해서 깃발을 잡고 서있는 모습

▲ 당오르기 준비를 위해서 깃발을 잡고 서있는 모습


마을회관에서 당집까지 걸어가는 행사를 ‘당오르기’라고 부른다. 이때는 황도리 마을을 한 바퀴 돌아서 당집으로 가는데 오색깃발을 들고, 항아리를 이고, 지게를 지고 가면서 풍물놀이를 하듯이 북과 장구 꽹과리 징을 치면서 걸어간다. 집집마다 액운을 쫓고 행운을 부르는 행사라고 한다.

당오르기 시작의 모습

▲ 당오르기 시작의 모습


마을로 들어서면서 풍악소리가 더욱 커진다

▲ 마을로 들어서면서 풍악소리가 더욱 커진다

   
당집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얼큰한 동태탕과 어묵을 맛 볼 수 있도록 음식도 준비되어 있다. 첫 날 11시 30분부터 14시까지는 점심시간인데 마을회관으로 가면 떡국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당집으로 사람들이 모두 도착하면 신명나게 사물놀이를 하듯이 풍악을 울리면서 놀아난다. 당집에서는 원당과 산신당이 있는데 무당과 무녀들이 굿판을 벌이는 곳이다. 오후 4시부터 “본굿”과 “지숙경쟁”을 하면서 다음 날 아침 05시에 황도선착장에서 뱃고사가 열릴 때까지 계속된다.

동네 한 바퀴 돌고 당집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 동네 한 바퀴 돌고 당집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황도의 위치를 보면 북쪽으로는 당암포구, 동쪽 맞은편으로는 간월도의 간월암, 남쪽은 정당리의 안면암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계묘년(癸卯年)은 육십간지 중 40번째 해로, '검은 토끼의 해'이다. 황도의 바다는 해변에 검은 돌을 만들어 놓고 동쪽을 향해 앉아있는 토끼의 엉덩이처럼 검은 모양으로 널려있다. 토끼는 부지런한 동물이다. 그리고 종족번식의 의무에 충실한 동물이어서 인간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도 인간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인 것이다. 29시간을 이어가는 황도의 붕기풍어제를 보면서 주민들의 부지런함과 협동심이 토끼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토끼의 엉덩이 처럼 검은 자갈들이 펼쳐져 있는 황도 해변의 모습

▲ 검은 토끼의 엉덩이 처럼 검은 자갈들이 펼쳐져 있는 황도 해변의 모습

 
겨울 찬바람이 황도의 나지막한 언덕을 휩쓸고 있었지만, 신당이 자리한 나지막한 언덕은 활력이 넘쳐있다. 아이들과 어른들은 찬바람을 빌려 연을 날리고 있었고, 제사의식을 치루는 사람들은 장작불을 지피면서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해도 파란색, 하얀색, 빨간색, 노란색, 녹색의 오색깃발이 펄럭이는 하늘 아래에서는 모두가 하나가 된 듯 들뜬 표정이었다. 조그만 어촌의 마을은 커다란 하늘에 꿈을 싣고 연처럼 날리면서, 천수만의 바다에 색감을 풀어놓고 오색깃발이 펄럭이듯이 풍어를 노래하고 있었다.

당집으로 향하는 관광객 위로 연이 날리고 있다

▲ 당집으로 향하는 관광객 위로 연이 날리고 있다.
 

황도마을의 전경

▲ 황도마을의 전경


마을의 풍경은 아담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팬션들로 대비가 뚜렷하다. 도시인들의 지친 삶을 위로하기 위한 팬션들은 황도의 구옥(舊屋)들을 낯선 이방인처럼 바라보고 있다. 아담한 구옥처럼 황도 주민들의 주름진 얼굴에는 온화함이 가득하다. 고향으로 찾아온 자식과 손주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붕기풍어제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응원한다. 아빠의 목마를 타고 할아버지의 신명난 사물놀이를 보는 손주의 모습은 나부끼는 깃발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까치집처럼 정겹기만 하다. 과거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은 지금보다 더 묵직한 정겨움이 가득했으리라.

아빠의 목마를 타고 풍어제를 구경하는 모습

▲ 아빠의 목마를 타고 풍어제를 구경하는 모습

 
마을의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 잡은 당집은 아득한 옛날에도 있었다. 지금은 가늠할 수 없는 당집의 모양으로 황도 사람들을 위한 생명의 불꽃이었다. 천수만에서 고기잡이 하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아들과 아버지를 위해서 불을 지피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추위를 쫓기 위해서 장작불을 지피고 있지만, 옛날에는 한밤중에 고기잡이를 하다가 길을 잃어서 황도로 돌아오지 못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이곳 당집에서 불을 지펴서 지금의 등대 역할을 했다. 천수만의 거센 물결을 타고 힘겹게 노를 저어서 황도로 돌아올 수 있었던 유일한 소통의 불꽃이 이곳 당집에서 발현되었던 것이다. 그 소통의 불꽃은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심지삼아서 지금까지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불빛이 아니라 무당이 펼치는 마법의 주술을 따라 황도로 돌아오는 가족들이다. 그리고 설 명절에 할머니 품에서 두런거리는 손자의 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당집의 바깥 모습

▲ 당집의 바깥 모습


당집의 안쪽 모습

▲ 당집의 안쪽 모습

   
황도다리에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드나든다. 안면도라는 섬에서 파생된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아니라 황도의 꿈과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이기도 하다. 황도에서 바라보는 다리 저 편의 풍경은 숲이 아니라 보고 싶은 가족들의 꿈이 그려지는 하얀 종이와 같다.
 

황도교의 모습

▲ 황도교의 모습


그런데 황도를 떠나면서 반대편 다리 끝에서 황도를 바라보는 풍경은 아득하기만 하다. 천수만의 물결이 황도에 모여들면, “황도교”는 피노키오의 코처럼 느껴진다. 황도의 순수함은 고급스러운 팬션들이 들어서면서 점차 이기적인 섬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엑스트라도즈드(Extradosed)의 교량기법을 사용한 황도교는 길이가 300m로 196억원을 들여 2011년 12월 30일에 완공되었다.

오색깃발 사이로 아련하게 보이는 까치집

▲ 오색깃발 사이로 아련하게 보이는 까치집


신의 기운이 가득한 당집 주변에 오색 깃발이 휘날리면서 무당의 주술은 바람에 펄럭이고 그 깃발의 펄럭임으로 천지의 신이 강림할 듯 하다. 관광객들에게 따뜻함을 잃어가는 주민들의 마음에 마법 같은 주술로 불씨를 되살릴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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