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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결핍 초래하는 지역 상징 조형물

내포칼럼 - 정연희 국립공주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

2022.11.07(월) 14:51:26도정신문(deun127@korea.kr)

문화적 결핍 초래하는 지역 상징 조형물 사진


공공장소에 설치된 조형물
지역 문화 정체성에 영향

사람들 제작 의도 인식 안해
각자의 방식으로 의미 탐색

문화적 결핍의 역효과 생겨
끊임없는 담론과 분석 필요

최선의 해결안 마련 위해
새로운 과정·방법 강구하길

화려한 단풍은 하늘이 푸를 때 더욱 붉고 노랗게 빛난다. 마음껏 가을의 향취를 느껴 보려면 맑고 깊은 호숫가를 찾아 물빛과 하늘빛과 단풍 빛이 어우러진 신비로운 풍경을 보라 권하고 싶다. 칠갑산 자락의 청양 천장호는 출렁다리의 재미와 지역 설화까지 더해져 이러한 가을이 정취를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정취에 찬물을 끼얹는 장애물이 하나 있다. 다리 입구에 세계에서 제일 큰 고추라 자랑하는 글귀와 함께 설치되어 있는 빨강색의 고추 모양을 한 거대한 조형물이 그것이다. 이와 마주했을 때 그 직설과 즉물적 표현이 필자의 머리와 심장을 오므라들게 했던 참담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직유법으로 표현하자면 마치 바바리맨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당혹스러움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 이름만으로도 맑고 청명한 공기와 깊은 산이 주는 휴식을 떠올리며 그 자연을 닮았을 것만 같은 지역의 멋과 맛에 설레이고 상상을 펼치게 되는 곳인데 ‘청양은 고추’라는 단순 비유 속에 보는 이의 자연에 대한 감흥과 예술적 상상력이 닫혀 버리고 만다. 이와 같은 해당지역의 특산물을 형상화하여 세운 즉물적인 형상의 조형물은 마치 경쟁이라도 한 것처럼 도농어촌 지역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어 비단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로 여겨진다.

이러한 조형물들은 지역의 대표 농산물을 홍보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도로 세웠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제작 주체의 의도만을 인식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감각으로 대상을 보고 느끼며 상상력을 동원해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각적 형상이 은유하는 바를 읽어 내고 의미를 탐색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을 돌아 보기도 하며 신의 시각과 생각이 열리고 확장되는 경험을 갖는다. 공공의 열린 장소의 조형물은 이처럼 개인은 물론 더 나아가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자명하므로 이를 감안하여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대개 지역 상징 조형물들은 예술로서 창작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필요에 따라 지역의 상징성을 가미하여 디자인하고 제작한 입간판의 성격이 오히려 강한 설치물로 보여진다. 그러나 문제는 예술의 이름을 빌려 디자인의 합리적 프로세스를 무시하는 한편, 디자인의 이름을 걸고 예술의 은유 방식과 창조성의 결핍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합리화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상 디자이너는 만족할만한 해결안을 마련하기 위해 발산적이고 직관적이며 총체적인 사고를 포함한 종합적 접근 방식을 취하며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역민의 관점도 존중하여 그 요구를 적극적으로 디자인을 위한 의사 결정에 수용해 디자이너의 관점을 초월하는 해결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이 때 고객과 사용자를 포함한 이해 관계자들과 팀워크를 이루어 아이디어 단계뿐만 아니라 작업의 전 과정에 협력을 계속 이어 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통과된 설계안에 따라 엔지니어가 기계적으로 작업하는 방식과 같은 현재의 프로세스는 지양되어야 한다.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끊임없는 담론과 분석이 병행되는 디자이너의 작업 방식을 준수하여 관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역의 상징 조형물들이 의도와 달리 우리 사회 전체의 상상력과 창조성 결핍을 강화하고 나아가 문화적 결핍이라는 역효과를 낳고 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문화적 테러 수준의 무차별하게 복제된 제작 행태는 비단 지역 상징물 제작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역마다 유사하게 따라 지어진 공허하고 박제된 문화시설들에서도 발견된다. 지역민 개개인에게 예술처럼 의미와 행복 추구의 대상이 되어 줄뿐만 아니라 지역 활성화에도 기여하는 공공 조형물과 문화시설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지역민의 삶과 문화와 괴리된 경로 의존적 문화 행정을 지양하고 합리적이고도 진실한 새로운 과정과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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