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정책/칼럼

정책/칼럼

충남넷 미디어 > 도민의 눈 > 정책/칼럼

김구, 윤봉길 결심에 감복하다

대한의 청년, 윤봉길윤봉길의사 상하이 의거 90주년10) 상해의거를 자원하다

2022.09.08(목) 12:23:16도정신문(deun127@korea.kr)

김구, 윤봉길 결심에 감복하다 사진


일제는 1932년 1월 28일 상해사변을 일으켰다. 윤봉길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상해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목격하였다. 상해에서 벌어지는 중국군과 일본군의 대포와 기관총 소리는 중국과 일본의 힘이 서로 마주치는 소리로 들렸다. 

이때 중국 상해공병창 군기처 주임으로 있던 김홍일이 김구와 협의하여 일본군 비행장 격납고와 무기창고 폭파 계획을 세웠는데, 윤봉길이 여기에 참여하였다. 그런데 이곳에는 일체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윤봉길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일본인으로 위장하고 탄약 창고의 일자리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노동자들이 창고에 들어갈 때 철저하게 몸수색을 했다. 그런데  도시락과 물통만은 조사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도시락과 물통형 폭탄이었다. 김홍일은 중국인 왕백수에게 도시락과 수통에 넣을 폭탄을 고안하도록 했는데 시계장치가 미비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다름 아닌 4월 29일의 천장절 행사 소식이었다. 도시락과 수통형 폭탄 계획은 이렇게 유효적절하게 살릴 수 있게 되었다.


윤봉길은 4월 20일 김구를 찾아갔다. 이날 윤봉길은 김구에게 “제가 채소 바구니를 등 뒤에 메고 날마다 홍구 시장을 다니는 것은 큰 뜻을 품고 천신만고 끝에 상해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입니다”라면서 이봉창의사의 동경의거와 같은 죽을 자리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구는 윤봉길의 결심을 듣고 감복하였다. 그가 윤봉길을 종품공장에서 보았는데, 진실한 청년 노동자였다. 그리고 학식은 있으나 생활을 위해 노동을 하거니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해보니 몸을 바쳐 큰 뜻을 이룰 의로운 대장부였던 것이다. 김구는 윤봉길과 함께 4월 29일 있을 일본군의 천장절 행사에 특공작전을 감행하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이 자리에는 상해 주둔 일본군사령부의 총사령관 이하 군정 수뇌부들이 모두 참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특공 작전이 성공만 한다면 중국군이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도 해내지 못한 일본군 총사령부 전체를 폭파시켜 버리는 전과를 낼 수 있었다. 

윤봉길은 이 작전에 자원하였다. 김구는 무거운 마음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거사를 책임질 것을 위임하고 중국 돈 200원을 주면서 거사 준비를 하도록 했다. 윤봉길은 김구의 말을 듣고 “저는 이제부터 가슴에 한 점 번민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준비해주십시오”라고 했다.  
/김상기 충남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