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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의 역사 속으로 봄 맞이 산책

2022.02.24(목) 08:02:52해송이송희(shreer@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수도 방어를 위해 축조된 복합식 성곽이다. 
사적 제5호인 부소산성은 538년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 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도읍지였으며, 당시에는 사비성이라 불렀다.
둘레는 2,200 m이고, 지정 면적은 98만3,900㎡이다. 
이 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泗泌)를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 수도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500년(동성왕 22)경 이미 산봉우리에 테뫼형 산성이 축조되었다가 천도할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605년(무왕 6)경에 현재의 규모로 확장,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소산성 축성의 구체적 방법을 보면, 성벽 안쪽의 흙을 파서 호()를 만든 한편, 그 파낸 흙을 내벽에 보축()하였다.
성의 바깥 벽면은 기반토(
)를 마치 판축()하듯이 황색사질토와 적색점질토를 겹겹이 다져놓았고, 그 위에 돌을 3∼5단으로 쌓고 흙을 덮었다.
이런 방식으로 축조된 산성의 입지는 경사면이어서 원래의 경사도보다도 더욱 가파른 경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이 산성의 아래 너비는 7 m 가량이며 높이는 대략 4∼5m에 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창지와 영일루가 있는 부근의 표고는 전면 70 
m, 후면 90 m의 등고선을 따라 둘레 1,500 m의 성벽을 거의 토축()으로 축조하였다.
부소산성은 사비천도 이후 백제 멸망시까지 국도의 중심산성으로, 인근의 청산성(
)·청마산성() 등의 보조산성 등과 함께 왕도 방어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부소산성 입구에서 낙화암에 이르는 길은 봄맞이 산책하기에 알맞아 역사기행을 곁들인 나들이 코스로 최고인 것 같습니다.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백제의 수도 방어를 위해 축조된 부소산성을 돌아보기 위해 부소산문(
山門)에 도착했습니다.
왼편에 보이는 곳이 매표소인데요 입장료는 
어른 2,000 원(단체:1,800 원), 청소년 1,100 원(단체:1,000 원), 어린이 1,000 원(단체:900 원)이며 만 6세 이하, 65세 이상, 장애인, 부여 군민은 무료입니다.

입장하자마자 안내도를 살펴보며 관람 코스를 정합니다.
삼충사→영일루→군창지→사자루→백화정/낙화암→고란사 순으로 돌아보기로 하고 출발합니다.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유네스코에서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 유산으로 지정하였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산성으로 오르다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삼충사(三忠祠)인데요 이곳은 
백제의 충신인 성충(忠 : ?∼656), 흥수(首 : ?∼?), 계백(伯 : ?∼660)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1957년에 세워 1981년에 중건하였으며 1984년 5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5호로 지정되었다고 하네요.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삼충사 내부의 모습인데요 왼쪽부터 성충공, 흥수공, 계백 장군의 영정입니다.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부소산성은 부소산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으로 구축하였는데 주성에 해당하는 부분은 군창지와 영일루를 중심으로 하여 그 남쪽 경사면까지 둘러싸고 있는 약 600미터의 테뫼식 산성의 일곽이다.
군창지를 포용하고 있는 산성에 연하여 반월루에 이르는 지역에 또 하나의 테뫼식 산성이 확장되며 쌓여졌다.
또 다시 이 산성과 연이어 군창지 동측과 반월루에서 사자루를 향해서 북쪽으로 달리는 산성이 골짜기를 감싸며 포곡식으로 부소산을 둘러쌓는데 그 둘레는 약 1.5 ㎞에 이르고 있다.
- 문화원형백과(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에서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영일루의 모습인데요 전설에 의하면 사비도성(
泗泌)의 비원이던 부소산 동쪽 산정에는 임금이 매일 올라가서 동편 멀리 계룡산 위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국태민안을 기원하던 영일대가 있었으며, 서쪽 산정에는 임금이 달맞이를 즐기던 송월대(, 일명 )가 있었다고 합니다.
영일루에 오르면 동쪽으로 정동리 일대의 광활한 평야와 청산성이 한눈에 굽어 보입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1호로 조선시대 홍산현() 관아 입구에 있던 것을 1964년 옛 영일대()가 있던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이곳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인 군창지의 모습입니다.
부여 부소산성 동쪽 정상부 영월대라고 불리는 평평한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제시대 군량미를 보관하였던 창고이다. 
군창지 땅속에서 당시에 사용했던 쌀과 보리, 콩 등이 불에 탄 모습으로 발견되어 이곳이 백제의 군량미를 보관했던 곳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건물은 자로 배치되어 있으며 가운데 공간을 두고 길이 약 70 m, 넓이 약 7 m, 땅속 깊이 약 47 cm 정도이다. 660년 백제의 사비성이 함락될 때 병화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 두산백과 두피디아에서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이곳은 반월루(半月樓)인데요 부소산 서남쪽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누각으로 부여읍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이 아름다운 누각입니다.
원래 이곳에는 수루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오래 전에 없어지고 빈 터만 남아 있다가 1972년에 반월루를 세웠다고 하네요.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사자루의 모습입니다.
사자루는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 송월대(送月臺)에 있는 누각으로 조선 시대 임천의 관아 정문을 1919년 이곳으로 옮겨와 사자루라 명하였다고 합니다.
정면에 보이는 현판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이 쓴 현판이며 반대편 백마강 쪽에는 김규진이 쓴 백마장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부소산성의 끝에 위치한 백화정의 모습이며 그 뒤의 바위가 낙화암입니다.
백화정은 낙화암 위에 있는 정자인데요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사비성이 함락될 때 이곳에서 목숨을 버린 궁인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세운 것으로 전해집니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북송시대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혜주에 귀양갔을 때 성 밖의 호수를 보고 지은 강금수사백화주(江錦水射百花州)라는 시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곳을 감싸고 도는 백마강과 주변의 산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이 펼쳐져 부여를 찾는 관광객은 반드시 들르는 명소입니다.
- 현지 안내문에서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낙화암에서 내려다 보면 구비쳐 흐르는 백마강의 물결과 그 위를 달리는 유람선의 모습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같습니다.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백화정에서 약 100 m 정도 계단을 따라 강가 유람선 선착장 쪽으로 내려가면 고란사(
皐蘭寺)가 있습니다. 
고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인데 창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백제 때 왕들이 노닐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였다는 설과 궁중의 내불전(殿)이라는 설이 전하며, 백제의 멸망과 함께 소실된 것을 고려시대에 백제의 후예들이 삼천궁녀를 위로하기 위해서 중창하여 고란사()라 하였다. 절 뒤 벼랑에 희귀한 고란초가 자생하기 때문에 고란사라 불리게 되었다. 
1028년(현종 19)에 중창하였고, 1629년(인조 7)과 1797년(정조 21) 각각 중수하였으며, 1900년 은산면에 있던 숭각사()를 옮겨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31년에 지은 것을 1959년 보수, 단장한 정면 7칸, 측면 5칸의 법당과 종각인 영종각 뿐이다.
절 일원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8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고란사 법당에는 현재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이 중 본존과 향 왼쪽의 보살상은 동일한 양식의 古佛이지만 다른 보살상은 현대에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본존은 중품하생인을 결한 아미타불이며, 보살상은 삼존의 배치상 대세지보살상이지만, 오른손을 가슴까지 올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있는 점으로 보아 관음보살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보살좌상
(扶餘 皐蘭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및 菩薩坐像)은 2011년 7월 20일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41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위키백과에서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낙화암 그늘에서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는데/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으니

유행가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고란사의 종은 바로 이 영종각 안에 있습니다.
영종각의 종은 방문객이 타종을 해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서 은은하게 울리는 고란사 종소리를 수시로 들을 수 있답니다.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고란사를 돌아본 다음 다시 원점 회귀하는 길, 백화정 주위의 울창한 소나무 숲 사잇길을 걸어봅니다.
고목 허리에는 초록 천을 두른 듯 낀 이끼에서 천년의 세월을 느끼게 해줍니다.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에서 백제의 영욕을 돌아보다 사진 

이끼도 봄이 왔음을 아는지 작은 꽃대를 올리고 있는 모습에서 생명의 신비를 봅니다.
백제의 수도를 지키기 위해 조성한 부소산성에서 백제의 영욕이 깃든 역사적 의미와 함께 봄 기운을 음미하며 나들이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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