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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대표인물인 만해 한용운의 상이 자리한 공간

2022.02.13(일) 14:54:48서영love(hush7704@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봄 하늘의 고요한 별이어요.
그러나 찢어진 구름 사이로 돋아오는 반달 같은 얼굴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어여쁜 얼굴만을 사랑한다면 왜 나의 베갯모에 달을 수 놓지 않고 별을 수 놓아요.
당신의 마음은 티 없는 숫玉이여요. 그러나 곱기도 밝기도 굳기도 보석 같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아름다운 마음만을 사랑한다면 왜 나의 반지를 보석으로 아니하고 玉으로 만들어요.

당신의 詩는 봄비에 새로 눈뜨는 金결 같은 버들이어요.
그러나 기름 같은 검은 바다에 피어오르는 百合꽃 같은 詩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좋은 文章만을 사랑한다면 왜 내가 꽃을 노래하지 않고 버들을 讚美하여요.

온세상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아니할 때에 당신만이 나를 사랑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여요 나는 당신의 「사랑」을 사랑하여요.

- 한용운 님의 사랑
 

홍성의 대표인물인 만해 한용운의 상이 자리한 공간 사진 

시와 글은 때론 생명을 담기도 하고 때로는 무르익어가는 계절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눈이 내릴 때나 비가 내릴 때 혹은 겨울 다음에 오는 봄을 연상하게 만들어주는데요.

홍성의 대표인물인 만해 한용운의 상이 자리한 공간 사진


일제강점기로 돌아가 보면 과연 그때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속칭 지식인들 혹은 고위 관료들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침묵을 선택하기도 했었습니다. 

 

홍성의 대표인물인 만해 한용운의 상이 자리한 공간 사진


홍성에 자리한 만해 한용운의 생가를 가본 것이 수년 전의 일입니다.
전국에 자리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생가나 흔적 혹은 기념관을 방문해보았습니다.

홍성의 대표인물인 만해 한용운의 상이 자리한 공간 사진


이곳은 남당리에 자리한 만해 동상이 자리한 충령사입니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홍성의 대표인물인 만해 한용운의 상이 자리한 공간 사진

만해 한용운의 흔적은 이곳 홍성뿐만이 아니라 서울, 강원도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서
울에는 심우장이 있고 강원도 고성 건봉사는 그가 만화 선사의 제자가 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만해(萬海, 卍海)는 그의 법호(法號)이며 용운(龍雲‘)이라는 이름은 만화 선사(萬化禪師)의 제자가 되었을 때 얻은 법명이라고 합니다.

홍성의 대표인물인 만해 한용운의 상이 자리한 공간 사진


그를 대표하는 시는 바로 님의 침묵입니다.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한용운은 20대 후반의 나이인 1905년 백담사에서 득도를 하는데 이때는 일본과 대한제국이 을사늑약을 체결하던 해입니다.
만해 한용운이 독립운동의 전면에 나선 것은 1919년 3.1 독림 운동을 이끌면서부터인데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작성을 했습니다.

홍성의 대표인물인 만해 한용운의 상이 자리한 공간 사진

만해 한용운은 일찍이 학문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것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만해 한용운의 아버지는 몰락한 양반 사대부 출신으로 홍성군 관아의 하급 임시관리로 일했기에 집이 넉넉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홍성의 대표인물인 만해 한용운의 상이 자리한 공간 사진

이곳에는 충령사도 있는데 한국전쟁 당시에 전투 중 전사한 사람들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1978년 홍성군에서 건립하였습니다.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는 관계자가 모여서 추념식을 개최한다고 합니다.  

홍성의 대표인물인 만해 한용운의 상이 자리한 공간 사진

그가 저항문학에 선두에 선 것은 바로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통해서였는데 3.1 운동으로 징역 3년형을 받고 복역하기도 했던 한용운은 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조국독립에 열변을 시에 담았던 것입니다. 

홍성의 대표인물인 만해 한용운의 상이 자리한 공간 사진

일본이 본격적으로 태평양전쟁으로 돌입했을 때 한용운은 어떠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지냈기에 어려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지병이 있던 한용운은 1944년 6월 28일 조선총독부의 훈련이 있던 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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