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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서원, 공암리 충현서원(忠賢書院)

2022.01.16(일) 16:11:40잔잔한 미소(ih2oo@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충현서원 이야기

 

충현서원을 설명한 안내서에 따르면

충현서원은 충청남도에 있는 여러 서원 가운데

세운 시기가 가장 빠른 유서 깊은 서원이라고 적었다.

 

우리 고장 공주의 충현서원은

1581년부터 고청(孤靑) 서기(徐起)에 의해

공암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 운영되었다.

 

충현서원

▲ 충현서원


1624
년에 국가로부터 충현서원으로 사액(賜額)되었으며

명실공히 16세기 후반, 지역의 대표적인 강학 장소로 자리매김하였고

17세기에는 조선 후기 사림계(士林界)를 주도할 교육기관으로 발전하였다.

현재 충현서원에서는 유무형 문화유산을

문화재청의 문화재 활용사업과 연계하여

다채로운 체험과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출처 충현서원 안내서, 충현을 담은 꿈꾸는 서원)

 

공주시 산성동에서 시내버스로

2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반포면 공암리가 있다.

 

공암 장터길을 걸어서 찾아간 충현서원 모습이다.

 

충현서원

▲ 충현서원


서원 앞에서 본 맑은 물이 흐르는 모습이 다른 서원과는 색다르다.

작은 수로가 마을 한복판을 흐르는 곳을 본 것이

전주 한옥마을이고, 공주 정안면 장원리로 기억되는데

여기서도 이렇게 마을 길을 따라 흐르는 물을 보니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말이 떠오른다.

 

충현서원 앞 수로

▲ 충현서원 앞 수로


이곳 서원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하마비가 서 있다.

 

홍살문을 세운 곳은 신성한 곳으로

격식이나 예절을 갖추어야 하는 장소를 뜻하며

 

하마비는 이곳은 신성한 곳이므로 통행인 누구나 신분을 가리지 않고

타고 있던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라는 뜻으로 안다.

 

충현서원의 홍살문은 두 큰 기둥 위를 가로질러

좌우로 7개씩 화살이 있고 중앙에 태극 문양이 있는데

기둥과 화살의 붉은 색은 귀신과 액운을 물리친다는 뜻을 담고 있고

화살은 잡귀를 쏘아 없앤다는 뜻이란다.

 

충현서원 홍살문

▲ 충현서원 홍살문

 

하마비는 세운지 오래돼서인지

大小人員下馬라는 글자가 희미하다.

 

충현서원 하마비

▲ 충현서원 하마비


이곳 충현서원의 배향 인물 9분은 다음과 같다.

문공 회암 주희(주부자) 선생(文公 晦菴 朱熹(朱夫子) 先生) 1130~1200

 

정간공 한재 이목 선생(貞簡公 寒齋 李穆 先生) 1471~1498

문목공 고청 서기 선생(文穆公 孤靑 徐起 先生) 1523~1591

문원공 사계 김장생 선생(文元公 沙溪 金長生 先生) 1548~1631

문정공 우암 송시열 선생(文正公 尤菴 宋時烈 先生) 1607~1689

 

정언공 석탄 이존오 선생(正言公 石灘 李存吾 先生) 1341~1371

청헌공 동주 성제원 선생(淸憲公 東洲 成悌元 先生) 1504~1559

문열공 중봉 조헌 선생(文烈公 重峯 趙憲 先生) 1544~1592

문정공 동춘당 송준길(文正公 同春堂 宋浚吉 先生) 1606~1672

 

충현서원 배향 인물

▲ 충현서원 배향 인물


공주시에서는 202011월의 역사인물로

호서유학 선구자인 고청 서기선생을 선정했다는 안내판을

충현서원 사당 입구에 세웠다.

내용을 읽어보면 이곳 충현서원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충청우도 최초의 서원인 공암정사(, 충현서원)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고 기호학파의 맥을 호서 지역에 정립한

고청 서기 선생이다.

1581(선조 14) 지역 유생들과 공주 목사 권문해 등의 도움으로

주자의 영정을 모시고 공암정사(, 충현서원)을 세웠다.

1624(인조 2)에는 충현(忠賢)’으로 사액을 받아

1660(현종 1)에 사액 받은 돈암서원보다 먼저다.

1871(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5년 현재의 서원으로 복설되었다.

공주의 서원, 공암리 충현서원(忠賢書院) 사진

이달의 공주 역사인물 서기 안내판


「충현서원 사실 및 우암 송 선생 추향기」에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고청 서 선생은 이곳에서 학문을 가르치며 인재를 양성하였고

처음으로 주자의 진상을 모시어 서원을 완성하였으니

충현서원의 시작은 고청 선생이라 할 수 있다.

 

이존오 선생과 이목 선생은 굳센 기상과 의로움이 매우 높으며

성제원 선생은 맑은 선비의 자취를 이었다.

조헌 선생은 학문과 절의를 겸비하셨고

 

박문약레(博文約禮)의 바른 맥을 참되게 전한 이는

김장생 선생과 송준길, 송시열 선생이다.

 

송시열 선생은 굳은 지조와 바른 정신으로, 대의를 밝혀서

한결같이 주자의 법도를 따랐다.

 

「충현서원 사실 및 우암 송 선생 추향기」 비문

▲ 「충현서원 사실 및 우암 송 선생 추향기」 비문


충현서원의 주 배향 인물인 주희(朱熹)는 호가 회암(晦庵)이다.

중국 송대의 유학자로 주자(朱子), 주부자(朱夫子로도 불린다.

공자, 맹자 등의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주돈이, 정호, 정이 등의 유학 사상을 이어받았다.

유학을 집대성하여 성리학(주자학) 창시하여 완성시켰다.

 

충현서원의 주 배향인물 「주희」 영정

▲ 충현서원의 주 배향인물 「주희」 영정


충현서원을 향하여 왼쪽에 강당 건물이 있는데 현판이 박약당(博約堂)이다.

박약당 옆 사무실에서 만난 어른으로부터

서원을 둘러보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원래 박약당은 고청 서기 선생이 1573년경 이곳 공암에 살면서

선비들을 가르치던 곳인데 박약(博約)이란

'배워서 지식을 넓히고 실행하되 예의에 맞게 하라'는

논어에 나오는 박문약례(博文約禮)에서 나온 것이란다.

 

충현서원 박약당 현판

▲ 충현서원 박약당 현판


충현서원은 지난 1970년에 중수하고 문공부에 사단법인체로 등록되었으며

1984년에 충남문화재 제60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곳 충현서원은 다른 서원과 달리

서원 사무실에 상주하는 사람이 있고

서원 안내 팸플릿과 알기 쉽게 적은 비석은

서원을 돌아보고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박약당

▲ 박약당


현재 충현서원에서는 유·무형 문화유산을

문화재청의 문화재 활용사업과 연계하여

충현을 담은 꿈꾸는 서원이라는 주제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하는데

지역 주민과 학생들의 많은 호응과 협조로 좋은 성과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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