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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 마을의 변곡점

구매마을과 장곰마을의 가을 이야기

2021.11.15(월) 22:28:21나드리(ouujuu@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문명의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길을 향해 여행을 떠난다. 끝을 알 수 없는 길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도전하게 만든다. 길은 그래서 희망이 될 수 있고 좌절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의 끝을 연결하는 길 위에 가을의 자취가 을씨년스럽게 남아있고, 길 위에 나뒹구는 나뭇잎들은 나그네의 발길에 밟혀 바스락거리며 신음하고 있다. 시몬 들리는가?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따라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장곰마을에도 가을이 떠나가고 있었다.
▲ 장곰마을에도 가을이 떠나가고 있었다.

세상의 끝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변곡점이다. 길은 세상의 끝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 끝에 도착하면 새로운 풍경과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해돋이로 유명한 울산의 ‘간절곶’이나, 포항의 ‘호미곶’처럼 땅 끝을 알리는 곳을 ‘곶’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라서 이러한 ‘곶’과 ‘만’이 생겼으며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안면도 끝 자락에 위치한 영목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 안면도 끝 자락에 위치한 영목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서해고속도로에서 방향을 틀어 태안의 해변을 달리다 보면 안면도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1623년 조선시대 인조임금이 백사장 항구에서 남당리 항구까지 판목운하를 만들기 전에는 ‘안면곶’이라고 불렀다. 현재 안면도는 다리와 다리가 연결하는 또 다른 땅 끝 마을이 된 셈이다. 이곳 안면도 땅 끝 마을에 영목항을 거쳐 원산도를 잇는 ‘원산안면대교’가 개통이 되었고, 원산도에서 보령시로 연결되는 해저터널이 개통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안면곶’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하다.

장곰마을의 선착장 모습
▲ 장곰마을의 선착장 모습

시골의 이름 없는 작은 마을에도 길은 있다. 낯설기는 하지만 길 위의 풍경 속에서 수많은 시간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명멸하고 있었다. 예쁜 승용차가 비포장도로를 꿀렁거리며 달리는 모습은 새끼를 품은 캥거루가 껑충거리며 달려가는 모습과 같다.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마을의 풍경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만들어 가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구매마을의 선착장 모습
▲ 구매마을의 선착장 마을 모습

내가 여행하기로 마음먹은 안면도 끝자락에 있는 낯선 마을들이 늙어가고 있었다. 마을이 늙는다는 표현이 이상하지만, 마을 풍경이 색 바랜 수채화처럼 느껴졌다.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으며, 젊은 사람들도 가끔 한 두 명 정도 보일뿐이었다. 고령화시대의 낯선 모습들이 아름다운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쓸쓸한 모습으로 여행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70대의 나이에 40대처럼 일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안면도 땅 끝 마을에 가을은 외롭게 저물고 있었다.

솔빛대교(원산안면대교)에서 바라 본 영목항 앞에 소도와 추도가 보인다
▲ 솔빛대교(원산안면대교)에서 바라 본 영목항 앞에 소도와 추도가 보인다

안면도의 땅 끝 마을에는 ‘영목항‘이 있다. 영목항에서 원산도를 잇는 ’솔빛대교(원산안면교)‘가 아름다운 불빛들을 모아 놓고 탐방객들에게 길을 내어주고 있다. 나는 원산도 방향으로 향하는 눈길을 거둬들이고 그 반대편으로 발길을 돌렸다. 천수만을 껴안고 있는 안면도의 동쪽이 궁금했다. 영목항 앞에 있는 ’소도‘를 마주보고 왼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추도‘가 보인다. 추도를 오른편에 두고 해안선을 가다 보면 ’구매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의 풍경이 궁금했다.

구매마을의 모습
▲ 구매마을의 모습

낯선 시골에서 느끼는 시간의 정취는, 도시의 긴박함이 없고 여유롭고 평화롭다. 그 여유로움이 주는 발길은 가볍고, 눈에 들어오는 산천초목의 풍경들도 시골스럽게도 평화롭기만 하다. 천수만의 바닷물이 선착장에서 아장아장 거리며 노닐고 있다. 구매(九梅)라는 이름은, 옛날 이 마을에 거대한 매화나무 아홉 그루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화향기가 흩날리고 사람들은 천수만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농사를 짓던 곳이었다. 지금은 바로 옆 영목마을의 ‘탄개항’과 ‘구매항’ 그리고 ‘장곰항’ 모두 천수만에서 가두리 양식을 하며 우럭과 돔 같은 물고기를 생산하고 있다.

구매항에서 장곰항까지 천수만의 가두리 양식장 모습
▲ 천수만에 위치한 구매항에 배와 가두리가 들어서 있다
 
천수만의 겨울은 정겹다. 천수만의 길이는 안면도의 끝자락 영목과 북쪽의 부남호를 기준으로 할 때 40 km이며, 폭은 평균적으로 약 9 km로 총 면적이 380 ㎢이다. 수심이 10m 이내로 얕아 대형선박의 출입은 불가능하며, 조석간만의 차가 커서(약 6m) 저조시에는 좁은 수로를 제외한 내만(內灣)의 대부분이 육지처럼 광대한 간석지를 이룬다. 천수만 갯벌은 살아있는 생물들의 보물과 같은 곳이다. 이곳 갯벌에서는 갯지렁이, 뿔고둥, 바지락, 쏙, 갯가재, 망둥어, 게 등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서, 세계 5대 갯벌에 포함된다.

천수만 갯벌이 장곰마을 앞으로 펼쳐져 있다
▲ 천수만 갯벌이 장곰마을 앞으로 펼쳐져 있다

구매항에서 바라보는 천수만은, 중국 삼국지에서 제갈량과 조조가 펼친 적벽대전을 보는 것 같았다. 배와 배를 연결하여 고정시키듯이 가두리와 가두리를 연결하여 고정시킨 모습이 거대한 군선처럼 보였다. 이곳 가두리는 우럭과 돔을 주로 생산한다. 천수만의 유유한 바닷물이 풍부한 플랑크톤을 물고기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자연산 우럭과 같다는 평을 받는 이유이다. 이곳 사람들의 사투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을 허무는 묘한 정겨움이 묻어 있다. ‘아저씨 거따가 차대면 이따가 차 빠져유’ 하는 소리에 나는 다음 행선지도 정하지 못하고 ‘구매항’을 출발했다.

구매항 앞에 가두리 양식장이 줄지어 있다
▲ 구매항 앞에 가두리 양식장이 줄지어 있다

구매마을에서 5분 정도 북쪽 길로 향하니 ‘장곰마을’이 나왔다. 장곰항과 구매항의 분위기는 형제나 자매처럼 닮아있었다. 도시처럼 매끄러운 아스팔트길은 아니지만 투박한 시멘트로 동네 골목마다 포장되어 있으니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구매항은 행정구역으로는 ‘고남면 고남리’에 해당되지만, 장곰항은 행정구역이 ‘고남면 누동리’에 해당된다. 70년 대 까지만 해도 구매마을 끝과 장곰마을 끝이 도로로 연결되지 않아서 장곰마을은 섬처럼 분리되었던 곳이었다.

구매항에서 장곰마을까지 연결된 예쁜 모양의 둑
▲ 구매항에서 장곰마을까지 연결된 예쁜 모양의 둑

옛날에는 안장곰(內長古島)과 외장곰(外長古島)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마을 지형이 장구처럼 생겼기 때문에 장곰이라 했는데, 외장고도(外長古島)와 구분하기 위해 ‘안장곰’이라 불렀다고 한다. 누동리 동쪽의 위치한 ‘장곰포’에는 일제강점기 때 돛배를 제작하는 조선소가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한때는 80여 호가 거주했으나 지금은 13호 정도가 어업이나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노인들이 지켜나가는 시골의 마을들은 모두 퇴화하고 있었다.

장곰마을의 모습
▲ 한적한 장곰마을의 모습

고남면 ‘누동리’의 우리말 이름은 ‘다락골’이다. 지대가 높아서 다락처럼 생겼기 때문에 다락골 또는 누동(樓洞)이라 하였으며, 큰다락골과 작은다락골이 있다. 다락골은 흥선대원군때 천주교의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도들이 다락처럼 높은 곳에서 몰래 숨어 살며 개척한 마을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다락골에는 천주교 성당이 있다.

충남 홍성군과 청양군 그리고 보령시에 걸쳐있는 ‘오서산’이 천수만의 바닷물에 일렁이고 있다. 오서산은 해발 790.7m로 억새풀로 유명한 우리나라 명산이다. 예전에 오서산을 등산하던 중 월정사에서 막걸리와 파전을 먹고 취해서 그냥 내려온 기억이 있다. 오서산을 품은 천수만은 태안, 서산, 홍성, 보령으로 연결되는 해안선의 길이가 200km에 이른다. 충남의 안면도는 세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시작점으로 연결되고 있었던 것이다.

오서산을 품은 천수만의 모습
▲ 오서산을 품은 천수만은 해양 생태계와 물고기의 보고이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장곰마을과 구매마을의 고령화도 인구절벽으로 이어지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들이 탄생하고 자라나는 변곡점이 될 것이다. 계절은 변함없이 찾아오고 되돌아가지만 사람들은 남아서 삶의 터전을 가꾸고 있다. 사람들이 늙어지면 풍경도 늙어지게 되는 것일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긴 길 위에 낙엽들이 뒹구는데 그 모습이 쓸쓸하다. 내가 그 길을 또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여행이 주는 묘미를 새롭게 정의하게 된다. 자연의 생명이 주는 연속성도 중요하지만, 인간들의 삶이 지속가능하도록 환경을 가꾸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천수만은 우리 모두의 수자원보호구역이다
▲ 천수만은 우리 모두의 수자원보호구역이다

우리들에게 활력을 주는 여행이 환경의 쓰레기가 되어 자연을 파괴한다면, 먼 훗날 우리들이 마주하게 될 미래의 여행은 쓰레기 더미가 될 것이다. 피곤함을 무릅쓰고 길 위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장곰마을의 어느 할아버지 손길에서 자연과 생명을 연결하는 사랑이 발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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