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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이동녕선생 생가지

2021.11.12(금) 15:25:49해송이송희(shreer@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천안시 목천읍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의 생가지와 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먼저 이동녕선생이 어떤 분인지 한번 알아볼까요?

본관 연안(延安). 호 석오(石吾). 자 봉소(鳳所). 충청남도 천안(天安)에서 출생하였다. 1904년 제1차 한일협약 체결로 국권이 위축되자 전덕기, 양기탁 등과 상동(尙洞)청년회를 조직, 계몽운동을 벌였고,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조약 폐기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그 해 북간도로 가서 이상설(李相卨)· 여준(呂準) 등과 용정(龍井)에서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설립하였다. 1907년 귀국, 안창호(安昌浩)·김구(金九) 등과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고,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 총무로서 활약하였다. 1910년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설립, 소장이 되어 독립군 양성과 교포 교육에 힘썼다. 1911년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권업회(勸業會)를 조직하고, 대동신문(大東新聞), 해조신문(海潮新聞)을 발행하였으며, 1913년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고, 1919년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의정원(議政院) 의장·내무총장, 1921년 국무총리 서리를 역임 중 파벌싸움으로 임시정부가 위기에 놓이자, 안창호·여운형(呂運亨) 등과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를 조직, 단결을 촉진하였다. 1924년 재차 국무총리가 되어 군무총장(軍務總長)을 겸직하고 이어 대통령대리가 되었으며, 1926년 국무령(國務領), 1927년 주석(主席)이 되었다.
1929년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을 창당, 이사장에 피선되고, 같은 해 재차 의정원 의장이 되었으며, 임시정부 주석은 계속 역임하였다. 1935년 양우조(楊宇朝) 등과 한국국민당을 조직, 당수가 되었는데,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에 가담하여 항일전을 구상하며, 1939년 김구와 전시내각을 구성, 조국광복을 위하여 싸우다가 쓰촨성[四川省]에서 병사하였다. 임시정부 국장(國葬)으로 장례가 거행되고,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두산백과에서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주차장에 내리면 제일 먼저 이동녕 선생 생가지와 기념관 위치부터 확인합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이동녕 선생 생가지 주차장에서 본 생가의 모습입니다. 단풍으로 물든 만추의 생가지 주변 풍경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이동녕선생의 휘호석에는 산류천석(山溜穿石)이라고 새긴 글씨가 눈에 들어옵니다.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라는 의미랍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담장 주위의 단풍나무도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는데요 단풍잎 사이로 마당의 이동녕 선생의 동상을 봅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이동녕 선생의 동상을 단풍잎 사이로 줌 인(Zoom in), 줌 아웃(Zoom out)으로 담아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입구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서 자세히 읽어봅니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72호로 지정된 이동녕 선생 생가지는 독립운동가 이동녕이 태어난 집터이다. 본관은 연안이고 1869년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독립협회와 상동청년회 활동에 참여하여 구국운동을 펼쳤고, 1906년 이상설 등과 함께 만주지역 최초의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세우고 운영하였다, 1907년 안창호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였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마당 한가운데에는 긴 의자에 앉아 있는 이동녕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생가의 전체를 담아봅니다. 오른 쪽 끝에 안내소가 있어서 간단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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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쪽에는 우물도 있어요.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이동녕 선생 동상을 뒤에서 본 모습인데 담장 주위의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들이 울긋불긋 물들어 예쁩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단풍나무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에 단풍색이 더욱 곱게 빛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런 모습이 보이는데요 'ㅁ'자(字)의 전통 한옥의 모습인 것 같아요.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이동녕 선생의 밀랍 인형도 볼 수 있답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생가 옆에는 수령(壽齡)이 500년도 넘은 은행나무가 생가를 지키듯 서 있는데요 이 나무는 천안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데 흉고 직경이 180 cm, 수고가 25 m나 된답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이동녕 선생 생가에서 나와 기념관으로 발걸음 해봅니다. 기념관은 주차장을 가운데 두고 가까은 거리에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기념관에 들어서면 이동녕 선생의 초상화와 만나게 되는데요 얼굴 표정에서 인자함과 근엄함이 함께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한쪽에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는데 옛날 의상도 준비되어 있어서 독립운동 당시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기념촬영 하기에 좋습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당시의 국기와 임시정부의 이동 경로를 볼 수 있는 지도와 서류들이 전시되어 있어요.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당시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 밀랍 인형과 사진, 그리고 국호와 임시 헌장 선포, 임정의 주요 활동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때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산류천석(山溜穿石), 광명(光明), 대의(大義) 등 석오 이동녕 선생의 휘호도 만나볼 수 있답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 & 기념관을 찾아 사진

이곳에는 석오 이동녕 선생의 삶과 독립운동 연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습니다. 이동녕 선생이 1869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서 부터 1940년 중국 치강 임시정부 청사에서 폐렴으로 돌아가실 때 까지의 업적과 독립운동을 연계해서 알아볼 수 있도록 작성되어 있습니다.

독립운동의 거장이신 석오 이동녕 선생의 생가지(生家址)에서는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흔적을, 그리고 기념관에서는 선생의 삶과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공간입니다. 마침 만추의 가을을 맞아 주위에는 울긋불긋 단풍도 곱게 물들어 자연과 더불어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하기에 좋은 장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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