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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桑田碧海)의 어느 마을 이야기

판목운하와 ‘대하랑꽃게랑 다리’에서 보이는 것들

2021.09.23(목) 23:01:21나드리(ouujuu@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뜬금없는 이 표현은 한(漢)나라 환제(桓帝) 때,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에서 마고가 말한 상전벽해(桑田碧海)에서 유래되었다. 상전벽해란 세상의 일이 덧없이 빠르게 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땅을 가르고 뱃길을 만든 판목운하
▲ 땅을 가르고 뱃길을 만든 판목운하

조선시대 1638년 이전에는 백사장 마을과 드르니 마을이 작은 산길로 이어져 있었다. 마을 앞바다가 만들어준 고운 모래는 삼봉해수욕장에서 백사장해수욕장을 거쳐 드르니항까지 이어졌다. 백사장 해변길을 따라 드르니 마을까지는 100미터 정도이니 이웃사촌과 다름없고 한 동네처럼 살았을 것이다.

백사장항구 마을의 전경
▲ 백사장항구 마을의 전경

그러던 어느 날, 조선시대 인조 임금은 ‘남면 신온리 드르니마을’과 ‘안면읍 창기리 백사장마을’ 사이에 판목운하를 만들었다. 두 마을은 폭 300M의 판목운하를 사이에 두고 뚝 떨어져 나갔다. 말 그대로 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겪은 것이다. 5천 년 역사의 한반도 땅 줄기를 붙잡고 명맥을 이어온 태안반도의 끝자락 안면곶은 조운선의 항해를 위해 가야산맥의 맥을 끊고 섬이 되어야 했다. 당시 신온리와 창기리 사람들에게는 육지가 바다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 것이다.

판목운하를 가로지른 대하랑꽃게랑 다리 위에서 본 백사장 마을
▲ 판목운하를 가로지른 대하랑꽃게랑 다리 위에서 본 백사장 마을

1970년, 안면도는 판목운하가 굴착된 이후 360여 년 만에 육지와 단절되었던 한을 풀게 되었다. 남면 신온리를 잇는 연륙교가 준공됨으로써 수백 년 동안 나룻배를 이용하여 왕래했던 불편함을 해소하게 된 것이다. 연륙교가 준공되기 이전의 안면도 주민들은 배를 타고 천수만을 왕래하며 홍성의 광천장이나, 대천에서 생활물품을 구매했었다. 연륙교가 놓이자 마을 앞에서 버스를 타고 전국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백사장 마을을 알리는 표시석
▲ 백사장 마을을 알리는 표시석

지금의 백사장항은 연륙교가 가설되기 이전에 남면 신온리 드르니에서 떠나는 버스시간에 맞추어 나룻배가 왕래하던 곳이었다. 이 마을은 1970여 년 전까지도 고작 2~3호가 거주하는 한적한 포구였다. 나룻배로 드르니항을 왕복하고 가까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생활하던 곳이다. 그러다가 연륙교가 놓이면서 백사장항이 안면도의 관문으로 부각되면서 호구 수도 급속히 늘어나서 지금은 200여 호가 거주하는 물류의 집산지로 성장한 것이다.

백사장 수산시장은 안면도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 백사장 수산시장은 안면도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지금까지는 안면도를 가려면 연육교를 건너서 백사장항을 거쳐서 간다. 2022년부터는 ‘보령해저터널’과 ‘원산안면대교’를 건너면 안면도 영목항까지 올 수 있게 된다. 백사장항은 남면의 드르니항과 마주 보고 있다. 한적한 드르니항과는 달리 백사장 항구는 안면읍의 자랑이자 가장 번성한 어항이다. 선착장에는 출항을 기다리는 수 십 척의 어선들이 정박해 있으며, 그 주변에는 모텔, 펜션, 민박, 횟집, 음식점, 수산물 판매점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서 잔칫집처럼 흥청거리는 항구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늘 붐비는 백사장수산시장 내부
▲ 사람들이 늘 붐비는 백사장수산시장 내부

서해에서 바다낚시를 하거나 갯바위 낚시를 즐기려는 낚시꾼들이 모여들고, 어시장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며 안면도의 대표 특산물인 꽃게와 대하를 고르는 여행객들에게 '사유~'하며 구수한 사투리로 손님을 부르는 아주머니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어부들은 출항 준비를 하면서 바쁘게 움직이지만 얼굴에는 만선을 기대하는 부푼 희망이 엿보인다. 항구의 생동감이 어우러져 언제나 정겹고, 갯내음이 물씬 나는 곳이다.

백사장항 앞에서 본 서해 모습
▲ 백사장항 앞에서 본 서해 모습

태안군에서는 매년 안면도 대하축제를 이곳에서 개최하여 미식가들의 구미를 당긴다. 1997년 시작된 백사장 대하축제는 매년 10월을 전후하여 약 보름간 진행된다. 첫 축제가 열린 이후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이 줄을 이어 해마다 약 25만 명이 찾아 성황을 이룬다. 백사장항은 충남지역 대하 어획량의 80%가량을 차지하는 태안군 대하의 집산지이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해수욕장을 끼고 있어 많은 도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이는 곧 창기리를 비롯한 안면도 주민들의 생활과도 직결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커다란 기폭제가 되고 있다.

대하랑꽃게랑 다리 모습
▲ 대하랑꽃게랑 다리 모습

가을이 바다에 쏟아진다. 바다는 가을이 되어 하늘을 품고 구름을 타고 파도에 휩쓸리더니 항구로 향하는 뱃머리 밑으로 사라진다. 구름을 삼켜버린 어선은 바다를 가르면서 물보라를 가르면서 시치미를 뚝 떼고 항구로 사라진다. 어선의 물보라가 가을이 되어 나의 눈을 붙잡고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시끌벅적한 수산시장을 지나자 백사장항의 명물이 된 '대하랑꽃게랑 인도교'가 눈에 띈다.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2차원 도형으로 교묘하게 이어지는 다리로 다가서는 나의 마음이 흥분된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가을 하늘처럼 푸르다. 사람들만 건널 수 있게 만든 대하랑 꽃게랑 다리는 250미터의 길이로 지난 2014년 11월에 개통되었다.

다리 입구의 조형물 글씨가 이채롭다
▲ 다리 입구의 조형물 글씨가 이채롭다

'대하랑꽃게랑' 다리 입구에서 새우 모양의 조형물에 적혀있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서해안의 황금빛 태양이 있는 곳! 가족과 연인들의 달콤한 사랑과 행복한 여정이 쉬어가는 곳! 백사장과 드르니를 잇는 낭만의 장소에 우리는 서있네.'란 시와 같은 글이 행복하게 한다.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연인들에게 인기가 있을 듯하다. 다리 전체의 디자인이 독특하고 중앙에 설치된 배의 키 모양을 한 조형물이 특이하다. 다리 위에서 여객선을 타고 항해하는 기분을 느껴보라는 의미일 것일까?

대하랑꽃게랑 인도교 중앙의 모습
▲ 대하랑꽃게랑 인도교 중앙의 모습

선장이 잡는 핸들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려 바다를 껴안고 싶은 것은 입구에 적힌 싯귀 때문이리라. 두 팔을 벌려 바다를 바라보니 '타이타닉'이란 영화가 떠오른다. 타이타닉호에 올라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화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막강한 재력의 약혼자와 함께 1등실에 승선한 로즈(케이트 윈슬렛)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북대서양 한가운데에서 로즈가 타이타닉호 뱃머리에서 두 팔을 벌려 바다를 품고, 잭은 뒤에서 로즈를 가슴에 품는 명장면을 재현할 수 있으니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역시 이곳은 연인들이 함께 와야 더 좋은 곳이다. '대하랑꽃게랑' 다리보다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사랑교'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배의 조타 모양을 한 핸들
▲ 배의 조타 모양을 한 핸들 

다리 서쪽에는 곰섬이 보인다. 서해의 그림자 같은 물길이 곰섬의 머리를 감싸 안고 등을 토닥이는 모양이다. 곰섬에는 한서대학교 태안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조종사들을 양성하는 곳이다. '비행교육원', '항공기술교육원','항공교통관제교육원'등의 학과를 위해 비행장까지 갖추고 있다. 또한 한서대학교는 해양스포츠 교육원을 갖추고 있어서 서해안 지역에 맞게 하늘과 바다에 관련된 스포츠 행사가 다양하게 열린다. 해양레저의 도시 태안에 위치한 곰섬 한서대학교는 수상스키 퍼레이드, 다이내믹한 슬라룸 수상스키, 웨이크보드, 수상스키 점프, 파워보트 레이스, 제트스키 묘기, 물 위의 아이언 맨 플라이보드, 피라미드 수상스키 등 해양레저를 총망라한 수상스포츠 메카로 발전되어 가고 있다.

곰섬의 한서대학교 전경
▲ 곰섬의 한서대학교 전경

서해에서 미끄러지듯이 밀려오는 바닷물이 해변의 모래들을 집어삼킨다. 천연덕스러운 바닷물이 판목운하를 가득 채우더니 드르니항과 백사장항을 한껏 벌려 놓는다. 다리를 건너 드르니항에 도착하니 10여 채의 건물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조용하다. 관광객들도 잠시 들렀다 가는 곳이니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관광객처럼 보인다. 사실 '드르니'의 뜻은 '들리다'라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잠시 들렀다 가는 그 '들리다'의 의미이니 드르니 마을에 사람들이 없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름 참 고약하다. 사람들이 계속 머무르는 '머무는 마을'로 바꾸었으면 어떨까? 드르니 마을에서 조용히 커피 한 잔 하려고 마음먹은 것이 왠지 씁쓸하다.

다리 위에서 바라 본 드르니항 모습
▲ 다리 위에서 바라 본 드르니항 모습

백사장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쪽을 바라보니 판목운하에 갇혀 있는 바닷물의 움직임이 용의 비늘처럼 햇살에 빛나고 있다. 이곳 백사장항에서 시작되는 판목운하의 끝은 당암리 포구이다. 판목운하의 총길이가 5km 정도이니 가까운 거리는 아니어서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물길이다.

안면도 남쪽 끝자락의 서해에서, 천수만을 거쳐 판목운하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뱃길은 200여 리를 단축시켰다. 이 길로 한양을 가던 조운선이 안흥 앞 난행량(難行梁)의 거센 물살로 침몰된 고려와 조선시대 유물들은 아직도 안흥의 마도해역 근처에서 잠자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건져 낸 과거의 유물들은 신진도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복원 작업을 거쳐 전시되고 있다.

판목운하가 당암리 포구로 굽이치고 있다
▲ 판목운하가 당암리 포구로 굽이치고 있다

백사장 항구의 발전된 현재의 모습에서 오래된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은 인간의 사치스러운 상념(想念) 일지도 모른다. 나의 상념은 순결하다. 오랜 시간의 바다에 일엽편주처럼 외롭게 떠다니는 시간의 퍼즐은 상념의 매개체일 뿐이다. 나의 몸은 현재의 백사장 마을에 머물고, 나의 생각은 과거의 시간 속으로 향하고 있다. 이것은 시간이란 지우개의 마술이다. 어느덧 시간은 몸의 기억을 지우고 상념의 퍼즐을 맞추는 것이다.

360여 년 전, 임금이 살고 있는 한양으로 공물을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서 땅을 가르고 바닷길을 이었다. 임금의 탐욕이 반도의 맥을 끊고 땅을 부수었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백사장항에서 바라 본 드리니항
▲ 백사장항에서 바라 본 드리니항

지금도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파괴하고 땅을 변형 시키고 있다. 자연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과 같다. 하루아침에 이별을 한 드르니 마을과 백사장 마을의 부두가에는 '바다가 육지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충남 화이팅!! 안면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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