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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가옥 엿보기' 논산 백일헌 종택

충남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이상장군 고택

2021.06.17(목) 16:03:17계룡도령춘월(mhdc@tistory.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청남도에는 곳곳에 관청, 향교, 서원이 많은데요.
그 이유는 조선시대 유학은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로 나뉘었는데 그중 기호유학의 중심이 충청남도였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논산에는 조선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한 서원 훼철(毁撤)이 단행되었지만 훼철되지 않은 47개의 서원 중에서 노강서원과 돈암서원 두 곳이나 남아 있을 정도로 그 부리가 깊은 곳인데요.
그런 논산에 노론과 소론 등으로 나뉘었지만 조선시대 유명한 양반가문들이 많이 있답니다.

그러한 논산의 양반 가옥 중에서 논산시 상원면 주곡리에 자리하고 있는 백일헌 종택을 사알짝 엿볼까 합니다.

'양반 가옥 엿보기' 논산 백일헌 종택 사진

이삼 장군의 고택인 백일헌 종택이 있는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는 볼수록 볼게 늘어나는 아름다운 마을인데요.

역사 유적으로는 논산 충헌사를 비롯해 논산백일헌종택이 있고 또한 대한민국 최초로 장승제를 시작한 역사적 마을이기도 하지만 위 사진에서 보이는 도로가 바로 목포까지 이어져 있는데요.
예전에 장원급제한 이몽룡이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성춘향을 만나러 가던 길이기도 하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

상월면 주곡리 마을 입구에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는데요.

우리 마을의 역사

우리 주곡리(酒谷里) 마을은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주막리(酒幕里)로 동주막(東酒幕), 서주막(西酒幕), 마근동(麻芹洞)의 뜸으로 나뉘었고, 이를 합쳐 술골(酒谷)이라 불려 오다가 1914년 지금의 상월면(上月面) 주곡리로 되었다.

마을에 있는 청주양씨(淸州楊氏) 시조(始祖) 충헌공 양기(忠憲公 楊起) 선생의 영당과 종가는 조선 선조 때 양기 선생 9세손 첨정공 춘건이 지금의 주곡리로 정착할 때부터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데, 충헌공 양기선생은 원나라의 높은 신하로서 고려에서 원나라에 바치던 조공제도를 폐지시킨 공로로 고려의 대광보국 상당백 벼슬과 함께 식읍을 하사받아 청주양씨 시조가 되었다.

이곳 주곡리 마을에서 출생한 함평 이씨 이삼 장군은 1705년 무과에 급제하여 정주목사를 시작으로 경종 때 형조참판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영조 때에는 훈련대장으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후, 양무2등공신 함은군의 작위 및 백일헌의 시호를 받았고 공조, 병조판서도 지냈다.
지금 장군의 고택은 영조로부터 하사받은 가옥으로 도지정 민속자료이다.

또, 마을 북쪽 마근동의 전주이씨는 세종의 3세손 승현대부 승선군 문헌공과 이취선생을 사당에 모셔오고 있다.

승선군의 현손인 호조참판을 지낸 마근 이 최 선생은 중종 때 기묘사화에 관련되어 유배되었던 승선군의 복작과 시호를 추증 받아 위폐를 모시고 영조 때 이곳으로 낙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라고 쓰여있습니다.

하지만 마을 곳곳에서 숫골(수컷 雄), 숯골(나무로 만든 숯)이라는 표현들이 보입니다.
분명히 잘못된 표기들인데 왜 수정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계룡도령 춘월이 포털에 개인적으로 수정을 요청해 개선되기도 하는데요.
논산시나 마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양반 가옥 엿보기' 논산 백일헌 종택 사진

주곡리 국도변 마을 입구에서 호리병 같은 마을 안쪽으로 약 250미터 정도 거리에 장승샘과 장승제를 지내고 세운 장승이 있으며, 약 340미터 지점에는 연꽃과 수련꽃이 아름답게 피는 연못이, 460미터 지점에 백일헌종택이 나옵니다.

백일헌 종택은 1985년 충남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삼장군이 이인좌의 난(1728)을 평정한 공으로 영조로부터 함은군(咸恩君)에 봉해지면서 왕으로부터 집을 짓는데 드는 건립비가 하사되어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양반 가옥 엿보기' 논산 백일헌 종택 사진

백일헌 종택의 입구 대문을 일반적이지 않은 어안렌즈로 담아 보니 훨씬 재미있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양반 가옥 엿보기' 논산 백일헌 종택 사진

대문을 들어서면 'ㄷ'자 형태의 안채와 'ㅣ'형태의 사랑채가 맞붙어 'ㅁ'자 형태의 본체가 나옵니다.

'양반 가옥 엿보기' 논산 백일헌 종택 사진

백일헌(白日軒) 이삼(李森, 1677~1735) 장군
이삼의 자는 원백(遠伯), 호는 백일헌(白日軒)이며 본관은 함평인데 지금의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서 태어나 명제 윤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숙종 때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정주목사를 거쳐 함경남도병마절도사를 지내면서 군제 개혁에 관심을 기울였고, 경종 때 소론으로서 우포도대장, 총융사, 어영대장을 역임하였으나 영조 때 노론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풀려나 훈련대장으로 승진하였고, 이후 어영대장이 된 사람으로 이인좌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2등 공신에 책봉되었고, 영조 5년(1729년)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이삼의 사후 영조가 “충관백일지의(忠貫白日之義)이니 백일헌(白日軒)”이라 하여 손수 글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삼징군은 무기 등 기계 제작과 무술에도 뛰어났으며 특이하게도 문인으로서도 널리 알려졌는데 저서로는 관서절요(關西節要)가 있습니다.

'양반 가옥 엿보기' 논산 백일헌 종택 사진

계룡도령 춘월이 찾은 날이 마침 문을 열지 않는 날이라 안채로 이어지는 문이 굳게 잠겨있는데요.
이 문 왼쪽으로 작은 화단이 있는데 다양한 꽃들이 피고지고 지고 또 피며 아름답게 꾸며준답니다.

'양반 가옥 엿보기' 논산 백일헌 종택 사진

백일헌 종택에는 종부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6월의 백일헌 종택 화단에는 장미가 붉게 피어 반겨줍니다.

'양반 가옥 엿보기' 논산 백일헌 종택 사진

그리고 마치 냉해를 입은 듯한 모습의 흰장미도 보이는데 색상때문인지 몰라도 연약한 느낌이 듭니다.

'양반 가옥 엿보기' 논산 백일헌 종택 사진

그리고 북아메리카 원산이고 제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진 등심붓꽃도 보입니다.
각 지역의 토양 때문인지 몰라도 꽃의 색이 분홍색과 흰색은 주로 제주에서 발견되고 위 사진처럼 푸른색은 내륙에서 발견되며 식물 전체의 크기는 손가락만한데요.
앙증맞은 작은 꽃이 무척 아름답답니다.

'양반 가옥 엿보기' 논산 백일헌 종택 사진

그리고 노란색을 띤, 무리지어 핀 이 꽃은 좀가지풀 꽃인데요.
우리나라 원산으로 남부지방에서 주로 자라는 식물입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꽃들이 피어있는데요.
직접 확인해보세요.
^^

'양반 가옥 엿보기' 논산 백일헌 종택 사진

문이 굳게 담겨 있어 여기 저기 다니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제 돌아서 나가야겠죠?

인심 좋은 마을 충남 논산시 상월면의 주곡리 술골 마을은 마을 어디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주차도 도로 통행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주차할 수 있습니다.

백일헌 종택(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길 45)을 방문한다면 마을 가운데의 연과 수련이 꽃을 피우는 연못도 둘러 보고, 명재고택(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과 종학당(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을 둘러 보는 것도 알찬 엿보기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며 다니는 비대면 나들이는 백신으로 다시 그때로 되돌아가길 바라는 우리의 마음처럼 작은 행복으로 채워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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