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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정길 이야기

조선시대 태안현의 숨결이 담긴 소중한 보물들

2021.02.23(화) 22:11:25나드리(ouujuu@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가끔 바라보는 푸른 하늘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인공위성이 보인다. 옛날에는 하늘에 UFO가 떠 있다고 난리법석을 피웠는데 지금은 인공위성이구나 하며 무덤덤하게 되니 나 자신이 재미없다. 인공위성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경이로운 모습은 사진에서 볼 수 있다. 하늘에서 제한된 시야로 바라보는 풍경보다는, 땅을 딛고 생각 없이 걸어가는 산책길에서 눈으로 마주하고 손으로 느낄 수 있는 풍경은 다르다.
  
태안읍사무소 아래 경이정 5길 모습
▲태안읍사무소 아래 경이정5길 모습
 
어느 산책길을 걷다 의도치 않게 그 어떤 존재와 나의 우연이 교차하는 그 순간, 우리들의 이야기는 추억으로 탄생한다. 과거의 시간에 묻혀 있는 오래된 이야기들을 헤집어 찾아내는 재미는 여행이 주는 선물이며 또 다른 우연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된 경이정 전경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된 경이정 전경
 
이름도 예스럽게 느껴지는 '경이정길'은 태안군 태안읍사무소 주변에 있는 행정지명이다. ‘경이정길’은 1986년 11월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된 경이정(憬夷亭)이라는 누각형(樓閣形) 목조 건물에서 따온 것이다.

경이정 안내판
▲경이정 안내판
 
경이정은 조선시대인 1399년 정종임금 때 세워진 것으로, 태안 방어사가 군무집행을 수행하던 곳이며, 때로는 오랑캐를 잡아다가 교화하는 장소로 쓰였다고 전한다. 건물은 화강석재를 2단으로 쌓아서 만든 기단석 위에 세워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평면구조에, 팔작지붕 겹처마를 하고 있다. 팔작지붕의 네 모서리는 지붕의 하중을 받치기 위하여 별도의 팔각고주초석 위에 원주를 세워 놓았다. 누각형의 건물로 하방은 별도로 막지 않았으며, 방형에 가까운 자연석재를 초석으로 이용하고 그 위에 원주를 세웠다. ‘초익공식’으로 어칸 상단에 ‘경이정(憬夷亭)’이라는 현판이 있다.
 
경이정 현판의 모습
▲경이정 현판의 모습
  
경이정이란 명칭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노송반수'의 '경피회이(憬彼淮夷)', 즉 '저 회이를 깨달으라'는 문구에서 유래했는데, 그 뜻은 '오랑캐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즉 외적의 침입이 심한 지역인 태안에 군무 수행에 필요한 건물을 지으면서 경이정이라는 현판을 붙인 것이다. 다른 뜻으로는 경이(憬夷)라는 말은 '멀리 항해하는 사신의 편안함을 빈다'는 뜻으로 중국의 사신이 안흥항을 통하여 육지에 들어올 때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경이정 5길에 있는 돌담길
▲경이정5길에 있는 돌담길
  
두 가지 견해를 종합해 보면 경이정은 '외적을 경계하면 편안하다'는 뜻이니 태안(泰安)의 어원인 '국태민안(國泰民安)', 국가는 태평하고 국민은 편안하다는 뜻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경이정에서 바라보는 주변풍경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경이정길에 있는 조선시대 고관대작의 대문
▲경이정길에 있는 조선시대 고관대작의 대문
  
경이정에서 태안읍사무소를 뒤로하고 왼쪽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토흙에 정갈한 모양의 돌이 박혀 있는 돌담길을 돌아서 걷다 보니, 끝자락에 서있는 한옥의 전통대문이 보였다. 옛날에 고관대작(高官大爵)이 살았던 집이 분명한데, 지금은 너무 낡아서 기와집의 모양새가 기울어져 있었다. 아마도 현대문명은 재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조상들의 숨결이 담긴 작품들을 사라지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내부를 볼 수 없도록 모든 출입문이 닫힌 큰 기와집을 뒤로하고 ‘경이정길’을 더 걷기로 하였다.
  
경이정 주변의 오래 된 건물
▲경이정 주변의 오래된 건물
 
과거에 화려했던 태안의 중심지 건물들이 오랜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허름한 모습으로 힘겹게 버티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인다. 마치 세월의 흔적을 감추려는 듯 곳곳에 칠해져 있는 아트 페인트가 시골 노인들의 어설픈 화장처럼 ‘경이정길’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조선시대 태안현 관아의 모습, 안에 목애당이 있다.
▲조선시대 태안현 관아의 모습, 안에 목애당이 있다
 
경이정에서 5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안현 관아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목애당(牧愛堂)'이라고 쓰인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사또가 목애당 동헌마루에 앉아 있고, 이방·형방·예방이 그 옆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사극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분위기였다. 목애당과 경이정은 5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있으며, 동헌건물인 ‘목애당’은 1970년 태안읍사무소가 신축되기 전까지 태안면사무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목애당 바로 옆에 태안읍사무소가 신축되자 농촌지도소, 민원실로 사용되다가 1997년 8월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1960년 대 후반의 목애당 모습(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1960년대 후반의 목애당 모습(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태안읍사무소 후문에 "'아담히 드리워진 백화산/ 내가 살고 누울 자리 태안/ 사랑하고 지킴은 나의 몫' 위대한 태안인 생각"이라고 돌에 쓰인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태안 주민들의 태안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엿보이는 글이다.
 
태안읍사무소 후문에 위치한 돌에 새겨진 태안 주민들의 사랑 글.
▲태안읍사무소 후문에 위치한 돌에 새겨진 태안 주민들의 사랑글
  
목애당은 1992년 8월 17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 영조 때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태안의 객사에는 정청 6칸, 동헌 12칸, 서헌 10칸, 중대청 8칸, 하마대 5칸 등의 건물이 있었는데,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소실되었다 한다. 목애당은 소실되고 남은 목재와 태안 소근진성(충남기념물 93)의 목재를 사용하여 1904년 고종임금 때 신축한 것이다. 정면 6칸, 측면 3칸의 37평으로 처마는 홑처마,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내부는 전면에 툇간을 두도록 기둥이 배열되어 있다. 기단은 2벌대의 장대석이며, 그 위에 네모뿔 모양의 주춧돌을 놓고, 직사각형의 기둥을 세웠다.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를 짜맞춰 댄 나무부재는 무출목 초익공 양식인데, 익공은 기둥머리와 엇물려 튀어나왔다. 창방(昌枋,대청 위 장혀 밑에 대는 넓적한 도리) 위에는 기둥 사이에 소로 3개를 놓고 주심도리 장혀를 받쳤다. 가구(架構)는 지붕 전후면에 처마도리와 중도리를 걸고 중앙에 종도리를 걸어 지붕틀을 꾸민 집인데, 툇기둥과 뒤편 평주 사이에 내고주(內高柱)를 세운 다음 툇보와 대들보를 결구하였다.
 
조선시대 모습으로 복원 된 목애당 모습
▲조선시대 모습으로 복원된 목애당 모습
   
동헌마루에 잠시 앉아있으니 주변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이곳을 거쳐 간 조선시대 현감들의 인성은 대문 옆 느티나무처럼 우직했으리라 짐작이 된다. 저 느티나무와 목애당이 함께 살아온 세월이 궁금하다. 1399년 조선조 정종 때 지어졌다고 가정한다면 지금까지 지나온 세월이 630년이다. 지나온 600년의 시간보다 앞으로의 600년은 어떤 모습일까? 600년 전, 이 ‘목애당’이라는 삶의 무대에서 인생의 연극무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조상들은 오늘의 이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목애당 현판
▲목애당 현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강산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변하는 것이다. 아니, 인간의 욕심이 세상을 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목애당 옆에는 유물 발굴단이 땅을 헤집고 있다. 조상들의 삶에 대한 흔적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흔적들을 잘 보존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아름답고 소중한 우리 땅 금수강산(錦繡江山)을 잘 보존하여 600년 후에도 우리의 후손들이 목애당에서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미래를 고민하기를 기대해 본다.
 
목애당에서 바라본 정문
▲목애당에서 바라본 느티나무와 정문
 
‘경이정길’에서 우연히 마주한 경이정과 목애당이 나의 귀를 붙잡고 속삭인다.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말로 '꽃이 무성하고 열매가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겨울잠을 자던 벌레와 개구리가 기지개를 켜는 경칩이 다가온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코로나19로 지친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 두 손을 모아본다.
 
목애당 뒤뜰에 있는 선조들의 비석
▲목애당 뒤뜰에 있는 선조들의 비석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충남 화이팅!! 태안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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