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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혼, 당진 면천읍성

얼마 전 서남치성 구간 복원공사를 마치고 새단장

2021.02.11(목) 15:26:53양창숙(qkdvudrnjs@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당진에는 면천읍성이 있다. 서산 해미읍성, 공주 공산성처럼 당진에서 면천읍성은 역사적 가치로 보나 그 의미로 보나 매우 중요한 문화재이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91호이자 당진의 역사문화유산 랜드마크로 자리잡은지도 오래됐다.
 
이 면천읍성이 일부분 복원공사를 딘행했는데, 얼마 전에 면천읍성 서남치성 구간에 대한 복원공사가 완료됐다. 서남치성 부분 복원공사를 마친 면천읍성을 둘러보았다.

면천읍성 표지석
▲면천읍성 표지석
 
면천읍성 안내도
▲면천읍성 안내도
 
면천읍성은 항일 의병의 이기도 하다.
▲면천읍성은 항일의병 전투지이기도 하다
 
면천읍성은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는 조선시대 면천현의 읍성이다. 둘레 약 1200m인데 평면은 네모꼴에 가까운 타원형을 이룬다. 면천읍성은 조선 초기 면천 지역의 행정 중심지를 보호하기 위해 1439년(세종 21년) 돌로 쌓은 석축성으로 현재까지 서벽과 서치성(100m), 남문구간(204m)이 복원돼 있다.
  
이번 준공된 서남치성 및 서남벽 복원은 도로를 제외한 기존의 서벽과 남문구간을 잇는 길이 141m, 높이 4.6m의 공사로 64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다고 한다. 

면천읍성 서남치성 및 서남벽 복원공사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현재 남아있는 성돌을 최대한 존치하고, 침하되어 변경이 있는 구간은 해체 후 보강해 원형대로 정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읍성 앞에서 전체를 조망해 한눈에 본다.
▲읍성 앞에서 전체를 조망해 한눈에 본다
 
읍성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본 모습
▲읍성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본 모습
 
읍성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보니...
▲읍성의 좌우측 
 
당진시는 서산, 태안 등과 더불어 옛부터 중국으로 통하는 중요한 바닷길이 있었던 곳이다. 이처럼 중국과의 통상에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국방상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면천읍성은 고려시대 충렬왕에 세워졌다고도 알려져 왔는데, 일부에서는 백제 초기부터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남문은 옹성(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친 성문을 방어하는 작은 성)을 갖추고 있어서 그 위용이 장엄하다. 문루가 남문과 서문에 있었고 성벽에는 7개의 치성 흔적이 남아 있다.
  
오랜 세월동안 나무도 자라면서 뿌리가 성곽 벽돌을 움켜쥐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무도 자라면서 뿌리가 성곽 벽돌을 움켜쥐고 있다
 
1451년의 기록에는 둘레가 3225자이고, 높이가 12자, 여장(성 위에 활 또는 조총을 쏘는 구멍이나 사이를 띄어 쌓은 작은 성벽)은 56개였다고 나와 있다.
 
여장 높이가 3자, 적대(성문 양옆에 돌출시켜 옹성과 성문을 지키는 방형의 대)가 7개, 문이 3개인데, 2개는 옹성이 없고, 성안에 우물이 3개가 있고, 성밖에 해자(밖으로 둘러 판 못)가 파여 있었다.
   
현재 성안에는 군자지(君子池)라는 연못이 있고, 성의 북쪽 산기슭에서 흐르는 작은 개울이 북벽을 통과한다. 성벽은 남벽과 서벽이 잘 남아 있고, 성벽의 아래쪽은 커다란 돌을 사용하고, 위로는 차츰 작은 돌로 축조해 조선시대 읍성 축조 기법의 전형적인 형식을 보여준다.
  
각자성돌
▲각자성돌의 위치를 알려주는 설명판
 
그리고 면천읍성에서는 ‘각자성돌’이 발견되었다.

도성을 쌓을 때 동원되었던 백성들이 자신들의 고향을 소박한 글자체로 새긴 각자를 보게 되는데, 도성을 쌓느라고 고생하던 민초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를 각자성석이라고도 하고, 이를 줄여서 각자(刻字)라고 한다.

각자성돌은 축성을 하는 돌에 축성 책임자나 감독관, 석공(石工)의 이름, 연대, 공사구간 등을 새겨둔 성돌이다. 요즈음 같이 건축 실명제를 실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면천읍성의 실제 각자성돌
▲면천읍성의 실제 각자성돌
 
각자성돌과 설명판 및 성돌이 있는 면천읍성.
▲각자성돌과 설명판 및 성돌이 있는 면천읍성
 
면천읍성 서치성에는 ‘기미년옥천시면장육십척사촌(己未年沃川始面長六十尺四寸)’, 서벽에 ‘석성종면(石城終面)’, 서치성 끝 지점에 ‘기미년옥천종말(己未年沃川終末)이라고 각각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면천읍성은 세종 21년(1439년)에 축조됐음을 알 수 있으며, 옥천은 오늘날 충북 옥천군, 석성은 부여군 석성면, 결성은 홍성군 결성면을 나타낸다.
 
면천읍성은 복원을 전후해 작년 6월부터 문화재청 공모사업인 생생문화재사업 ‘면천읍성 360도 투어’를 진행하기도 했다.
  
얼마전 복원을 마친 부분 성곽
▲얼마 전 복원을 마친 서남치성과 서남벽 부분
 
서남치성 서남벽 원형 성곽
▲복원을 마치고 새단장한 서남치성 서남벽 원형 성곽
 
수백년 오랜 세월동안 성곽을 지탱해 온 돌.
▲수백년 오랜 세월 동안 성곽을 지탱해 온 크고 작은 돌들
 
서남치성 부분
▲서남치성 부분 외곽 성벽
 
성곽에서 본
▲성곽 위에서 본 성 안과 밖
 
‘꼬마 명탐정, 읍성의 보물을 찾아라!’를 통해 면천 3.10 학생 독립만세운동 등 읍성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면천읍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미션을 해결하고, 숨겨진 보물을 찾아 그 비밀을 파헤쳐 보였다.
 
7~8월에는 ‘각자성돌이 뭐예유?’를 진행했다. 면천읍성 성벽의 각자성돌을 통해 읍성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조선시대 공사 실명제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달빛이 스며드는 소리’는 무더운 한여름 밤 달빛 아래에서 펼쳐지는 풍류음악회로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했고, 마지막 ‘읍성을 부탁해~!’는 면천읍성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어 무예를 익히고 성을 지켜내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다.
 
남측 성루.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민족혼이 느껴진다.
▲남측 성루,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민족혼이 느껴진다

나라를 잘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민족혼이 담겨 있는 읍성을 돌아보며, 다시금 국가와 사회의 안녕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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