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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2021.02.08(월) 00:50:26유부일기(serimato60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에는 '칠백의총'이라는 무덤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700의사의 무덤입니다. 1963년 1월에 사적 제1005호로 지정되어 현재는 문화재청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예전에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곳은 공사 중이었고, 아래쪽으로 넓은 공간에 주차장이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금산 칠백의총 입구에는 안내도와 함께 간단한 소개가 적혀 있습니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맞서 싸운 칠백의사의 거룩한 영혼을 모시는 성역이라 소개되어 있는데요, 장소에 맞는 마음가짐과 행동을 해야겠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첫 번째 문을 들어서면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넓은 길을 볼 수 있는데, 의총문을 처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의 양쪽으로는 멋진 나무들이 추운 겨울을 견디며 파랗습니다. 봄이 되면 잔디도 푸릇푸릇해지고 지금은 꽁꽁 얼어 있는 숭의지를 제대로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의총문을 우측으로 통과합니다. 나중에 퇴장할 때는 좌측으로 퇴장한다고 하네요.
 
마치 칼로 썰어낸 듯한 반듯한 잔디와 저 멀리에는 취의문, 종용사, 봉분이 3단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비슷한 느낌의 아산 현충사와는 또 다른 규모와 균형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의총문을 들어서서 좌측으로 기념관이 있습니다. 방문 당시에는 코로나19 때문에 개방을 하고 있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었으나 건축물과 나무가 서로 잘 어우러지는 모습이 정말 멋집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이번엔 의총문을 들어서서 우측에 위치한 순의비각입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돌로 만들어진 비에 균열이 여럿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안내문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임진왜란 때 조헌 선생과 승장 영규대사를 따라 일어난 의병들이 왜군으로부터 청주를 수복하고 금산싸움에서 순절하기까지의 행적을 윤근수가 글을 짓고 김현성이 글씨를 쓴 것으로, 1603년 4월에 칠백의총 옆에 건립하였던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그런데 1940년 일제강점기에 금산경찰서장 일본인 이시가와 미찌오가 이 비가 폭파했는데, 인근 주민들이 뒷산에 묻어 두었다가 해방 후 다시 파내어 보관하였고, 1971년 4월에 그 파비를 붙여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몸체와 머릿돌이 떨어져 분리되어 있던 것을 2009년 9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고 비의 규모에 맞추어 비각을 목조양식으로 개축하였다 합니다.
 
의병들의 정신을 지켜온 조상들의 정신과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계단으로 1단을 올라서면 종용사가 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재배나 묵념을 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차분하고 고요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종용사를 뒤로하고 마지막 봉분에 도착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있는 여러 유적, 묘지를 보았으나 왕릉을 제외하고 이렇게 큰 규모의 묘는 처음이었습니다.
 
700의병을 생각케 하는 큰 규모에 잠시 바라보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임진왜란(선조 25년 4월, 1592년)이 일어나자 조헌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음력 8월 1일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탈환하고, 18일에는 호남순찰사인 권율 장군이 이끄는 관군과 함께 금산의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권율 장군은 왜적의 기세로 보아 아군이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열세임을 판단하고 작전을 바꾸어 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조현 선생에게 띄웠으나 미처 받아보지 못한 채 출병한 선생의 의병부대는 금산 연곤평 싸움에서 필사무퇴(必死無退)의 결전을 벌이다가 음력 8월 18일 모두 순절하였다고 합니다. 4일 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더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한 번 더 무덤을 바라보고 왔던 길을 돌아갑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내려오면서 휠체어나 유모차도 쉽게 오를 수 있게 경사로가 설치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봉분까지는 어렵지만 기념관을 거쳐 종용사까지는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종용사 양쪽으로 있는 백목련을 보았습니다. 솜털 가득한 꽃봉오리가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듯합니다.
 
칠백의사와 같이 우리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셨던 분들도 따뜻한 봄을 기다리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덕분에 우리가 평온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바람에 나란히 펄럭이고 있는 태극기와 문화재청기를 보며 칠백의총을 빠져나왔습니다.
 
칠백의총과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칠백의사순의탑을 바라보았습니다. 탑은 1976년 칠백의사의 거룩한 뜻을 영원히 지켜가고자 칠백의총과 마주보는 위치이자 전적지였던 연곤평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13.8m의 거대한 탑의 상부에는 동(銅)으로 만든 창과 방패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탑의 의미처럼 살아갈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겠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찾아서, 금산 칠백의총 사진
 
충청남도 금산에 있는 칠백의총에서 다시 한 번 우리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과 애국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찾은 가족들도 여럿 볼 수 있었는데, 우리 충청남도의 의미있는 장소를 알리는 것도 하나의 교육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배우고 문화를 체험하는 복합문화공간 조성을 위해 건립된 신축기념관은 휴관 중이라고 합니다. 하루빨리 개관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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