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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이 그려낸 풍경화 속 이야기

안면도 정당리의 안면송과 함께 이색적인 여행을 하다

2021.01.23(토) 13:26:07나드리(ouujuu@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냉장고와 같다. 배가 고프거나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날 때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먹게 되기 때문이다. 냉동실에 쌓여가는 음식과 재료들은 녹여서 요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다. 냉장고에 냉동실이 있는지조차 잊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정당리가 시작되는 입구에 안면송이 숲을 이루고 있다.
▲정당리가 시작되는 입구에 안면송이 숲을 이루고 있다
  
요즘같이 방역수칙을 꼭 준수해야 하는 나날들은, 우리 기억의 냉동고에 쌓여 있는 추억을 꺼내어 요리하고 싶어지는 날이다. 기억의 냉동고를 열어보니 하얗게 얼음으로 뒤덮인 과거의 추억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기억을 정리한다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오래된 시간의 얼음덩어리들을 녹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연히 찾아낸 지난날의 추억 하나 소환하여 과거로 떠나는 기억 여행을 시작해 본다.
 
안면암에 위치한 석가여래좌상과 주변 모습.
▲안면암에 위치한 석가여래좌상과 주변 모습
 
태안의 명품 소나무 '안면송'이 푸른 철갑을 두른 채 안면도의 중심에서 위풍당당하게 방문객들을 맞는다. 수백 년 넘게 이곳 안면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고려시대부터 왕실과 인연을 맺었기에 나무 중 으뜸이라는 의미를 담은 '솔'과 '나무'의 두 글자를 합쳐서 '솔나무'라고 불렀었다. '솔'은 원래 우두머리를 뜻하는 '수리'라는 옛말에 어원을 두고 있다. 조선 중종 때는 '안면송'이 자라는 이곳을 황월장봉산(黃月長封山)으로 봉하고 왕실에서 특별 관리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으며, 조선 왕실에서도 경북궁 기둥과 왕실의 관으로 쓸 때에만 안면송을 사용하도록 할 정도였다. 
 
정당리 안면송이 위풍당당하게 솟아있다.
▲정당리 안면송이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다
  
태안군 안면읍 정당리는 안면송이 시작되는 곳이다. 정당리부터 중장리까지 이어지는 77번 국도 주변 430ha에 20만 그루 이상의 안면송이 세계 최대의 소나무숲을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적송'이라고 부르며 마구잡이로 수탈(收奪)해 간 아픈 기억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분노보다 감동이 앞서는 것은, 자랑스러운 우리들의 자연유산을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부상탑이 있는 여우섬에서 바라 본 안면암과 꽃피는 절의 모습.
▲부상탑이 있는 여우섬에서 바라 본 안면암과 꽃피는절의 모습
  
정당리 입구에서 77번 국도를 벗어나 동쪽 좌측길로 들어서서면 색다른 절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이름이 아름다운 '꽃피는절'이고, 또 한 곳은 건축양식이 특이하고 이채로운 '안면암'이다. 이 두 절은 같은 장소에 있지만, 꽃피는절은 아래쪽에, 안면암은 위쪽에 위치해 있다. 안면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末寺)이다. 법주사 주지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등을 지낸 지명스님을 따르던 신도들이 1998년 이곳에 지은 절이다.
 
안면암 용왕문 앞에 있는 불상.
▲안면암 용왕문 앞에 있는 불상
 
천수만이 그림같이 펼쳐진 안면암이 위치한 곳은 정당리 포구와 가깝다. 주변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1950년 대 천수만에 조기잡이가 성행할 때에는 안면암 앞에 있는 쌍둥이섬에서 조기를 널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섬이름을 조기를 널은 장소라 하여 '조그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여우섬이라고 부르는 '조그널' 섬까지 100여 미터의 부교를 놓아 '안면암 부상탑'까지 만들어 놓고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2층 법당에서 바라 본 과거 조그널 섬이라 불리웠던 여우섬과 부상탑 모습.
▲2층 법당에서 바라본 과거 조그널 섬이라 불리웠던 여우섬과 부상탑 모습
   
안면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안면암을 방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불심(佛心)이나, 호기심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으나 안면암 앞에서 갯벌체험을 즐기려고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안면암 주변의 천수만 갯벌은 살아 있는 생물들의 보고와 같은 곳이다. 이곳 갯벌에서는 갯지렁이, 뿔고둥, 바지락, 쏙, 갯가재, 망둥어, 게 등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때 아이들과 함께 갯벌체험을 즐기면 재미와 함께 해양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썰물 때 살아있는 천수만 갯벌의 모습이 드러난다.
▲썰물 때 살아 있는 천수만 갯벌의 모습이 드러난다
  
밀물이 시작되어 바닷물이 가득해지면 부교를 타고 여우섬에 위치한 '부상탑'까지 갈 수 있는데, 출렁거리는 부교를 밟는 재미가 마치 바다 위를 걷는 것처럼 느껴진다. 부상탑 1층 내부에는 부처님을 모셔놓고 삼배를 올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바다위에서 부처님과 마주하는 것도 새롭지만 흔들거리는 부상탑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부교를 건너가면서 바라 본 부상탑.
▲부교를 건너가면서 바라본 부상탑
 
안면암 내부는 공양처와 불자수련장, 소법당, 대웅전, 선원(禪院), 불경독서실, 삼성각(三聖閣), 용왕각(龍王閣)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찰을 자세히 보면 태국식 건축양식이어서 그런지 화려한 색상들이 눈에 띈다. 7층 목조탑을 오르는데 삐그덕거리는 나무소리와 금빛으로 색칠한 쇠기둥에 녹슨 쇠줄로 곳곳을 고정시켜 놓은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쇠줄에 고정되어있는 7층 목조탑 모습.
▲쇠줄에 고정되어 있는 7층목조탑 모습
  
아기자기한 안면암 내부의 풍경과 다양한 표정으로 서있는 석상들을 보면서 안면암이 보여주는 형형색색의 건축양식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사찰이 주는 아름다움과 세심한 작품성보다는 화려함이 인상적인 곳이다. 하지만, 호기심을 갖고 이곳저곳을 살피다 보면 다채로운 풍경들이 제시하는 특징들을 퍼즐 맞추듯 알아가며 여행을 즐기는 것도 재미있다. 여행은 낮선 풍경을 바라보면서 시작되는 호기심의 시간과도 같다. 
  
독도함과 거북선은 추억의 포토존이다.
▲독도함과 거북선은 추억의 포토존이다
  
일출이 시작되는 아침에 안면암 2층 법당에서 바라보는 천수만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답다. 태양에 비춰지는 천수만 풍경을 바라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불멍'과 '물멍'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멍때리기'는 뇌에 휴식을 주어 뇌의 가소성을 높일 수 있기에 많은 전문가들이 추천하고 있으며, '멍때리기대회'도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목탁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는 아침에 '멍때리고' 나면 마음과 정신이 맑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안면암에서 바라 본 여우섬과 일출.
▲안면암에서 바라본 여우섬과 일출
   
안면암 입구 아래에는 꽃피는절이 있다. 바닷가 쪽으로 꽃정원을 꾸며놓아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는 이곳은, 해수관세음보살상을 높게 세워 천수만 정당포구를 지나는 어부들과 오가는 선박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꽃피는절은 2007년에 지은 절이니 안면암보다는 짧은 역사이다. 꽃피는절에서는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안면암에서 여우섬 부상탑까지 여행을 마친 관광객들이 이곳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즐거움은, 여유로운 휴식과 다음 여행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커피를 들고 나와서 밖에서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공간들이 있다.
 
꽃피는 절과 해수관세음보살상.
▲꽃피는절과 해수관세음보살상
  
봄이 오면 이곳 꽃피는절에 얼마나 많은 꽃들이 피어날까? 김소월은 그의 시 '진달래꽃'에서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고 했는데 바로 이곳을 두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선화와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이곳 안면암과 꽃피는절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은 바람에 날리고 빗물에 씻기어 땅에 머물고 사람들은 그 꽃잎들을 사뿐히 즈려밟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할 것이다.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꽃들과 잘 어울린다.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꽃들과 잘 어울린다
  
여기에 있는 사찰 두 곳의 특징은 다양한 색상의 건축물과 각각 다른 표정의 불상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각각의 매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로 다르다고 부딪히지 말고, 화합하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왜 우리는 다르다는 이유로 싸울 시빗거리만 찾는 것인지 궁금하다. 서로 다른 꽃들이 모이면 아름다운 꽃동산이 되듯,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이고 화합하면 감동적인 휴먼 다큐멘터리가 된다. 오죽하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조차 있을까.
 
부상탑에 벽면에 그려진 탱화.
▲부상탑 벽면에 그려진 탱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안면송 앞에 잠시 멈추어 섰다. 잠깐이지만 장갑을 벗고 안면송에 손을 대어보니 두꺼운 굳은살이 박인 어머님의 손과 같다. 딱딱한 안면송 껍질이 평생토록 자식들을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님의 손과 같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소나무껍질 사이사이로 깊게 패인 것은 어머님의 주름으로 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계속되고 있는 이번 설에 찾아뵐 수 있을지 걱정이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어머님과 전화 통화를 한 후, 우뚝 솟은 안면송을 살포시 껴안아본다.
 
충남 파이팅!! 태안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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