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자주 오던 1월, 조용한 합덕으로 향했습니다. 외출을 자주 하지 못해서 조용한 평일 방문을 하는 편인데요, 눈이 와서 그런지 다른 날보다 더 조용해서 혼자서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만 봐도 모두들 아시는 당진 합덕읍 신리에 있는 '신리성지'입니다. SNS에서는 인생사진 찍는 곳으로 유명하다지만 이곳은 엄연히 성지라는 것을 잊지 않고 방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이곳에 내리면 사방이 트여 있어서 마음도 탁 트이는 듯합니다. 다른 계절엔 초록초록한 잔디와 푸른 하늘이 반겨주는데, 겨울엔 하얗게 눈이 와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처음 도착했을 땐 빛이 살짝 있었고 저녁에 눈이 하얗게 깔려 있는 이곳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하늘색도 오묘해서 더 좋더라구요!
신리성지는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뷔 주교가 거처하던 곳입니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에 첫 걸음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조선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신리는 천주교 탄압기의 가장 중요한 교우촌이었습니다.
바위 하나하나에도 이렇게 그 당시 천주교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저는 신자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당시의 상황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곳을 방문한 분들도 아마 같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신리는 조선에서 가장 큰 교우 마을이였으며,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천주교 전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곳은 조선의 카타콤마(로마시대 비밀교회)로 불리고 있습니다.
당진에서 합덕성당이 가장 먼저 지어진 성당으로 합덕, 신평이 당진 천주교의 중심이었고 그중에서도 이곳 신리성지와 합덕 성당은 천주교 발전의 중심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자주 왔지만 설명서나 역사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는데, 이번에는 조용히 설명서도 읽으면서 둘러보니 더 새롭게 보였습니다.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간혹 개가 짖는 소리만 멀리서 들리곤 했었는데, 하얗게 눈 쌓인 이곳이 더욱 신성해 보입니다.
신리성지라고 보통 부르지만 이곳의 정식 명칭은 '당진 신리 다블뤼 주교 유적지'입니다. 다블뤼 주교가 신리에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발달된 삽교천 수제를 통해 중국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었던 점과 내포지방의 문화적 개방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당이구요, 외부는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앞 야외성당에는 종이 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종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이곳의 종소리는 어떨지 궁금해서 다음엔 시간 맞춰서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록상 신리의 첫 순교자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손경서[안드레아]라고 합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손자선[토마스] 성인이 공주에서 순교한 이후 서울, 수원, 홍주, 해미, 보령 갈매못 등에서 40명이 순교하였습니다. 이는 이름이 밝혀진 내포 지역 순교자들 중 10%에 해당하는 인원입니다.
신리는 규모가 컸던 만큼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무명 순교자들도 많았는데, 인근 대전리 공동묘지에 있는 46기의 무명순교자 묘소가 이를 말해 줍니다.
이집은 성 손자선 토마스 생가이자 제5대 조선교구 다블뤼 주교의 비밀 성당이자 주교관이었습니다. 앞엔 이렇게 동상이 세워져 있고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가 순교하고 신리교우촌이 파괴되면서 이 집도 주인을 잃었습니다. 이후 1927년 이 지역 교우들이 모금을 통해 이 집을 매수하여 천주교회에 봉헌하였습니다. 대들보에는 '가경21년' 곧, 1816년에 상량하였으며 1954년과 1964년에 축성과 수리를 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인을 잃은 집이었지만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이렇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뒤뜰에 장독대를 보는데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소복하게 쌓여 있는 눈에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구요.
처마끝에 고드름도 이렇게 줄줄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해에도 신앙을 지켜온 데에는 그들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천히 돌아보고 있는데 성모마리아상 뒤로 잠시 해가 나와서 하늘색이 오묘하게 빛나 더 성스러운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신자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지로 방문하고 사색하는 곳이므로 저도 조용히 그 길을 따라 걸어 보았습니다.
저렇게 세모 모양의 건물에는 박해 때 순교하신 신부님들의 생애와 조각상이 각각 새겨져 있습니다.
박해가 워낙 심해서 신리를 떠나 뿔뿔이 흩어진 신자들은 순교자들에 관해 증언할 형편이 못 될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결국 신리교우촌은 완전히 붕괴되어 한 사람의 신자도 살지 않는 비신자 마을이 되었을 정도라고 하니 박해가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나오기 전에 아이와 같이간 저는 이곳에 앉아 눈으로 오리도 만들어 보고 지나가는 길목에 하나씩 놓아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없는 평일이라 마음이 더 편했던 것 같아요!
종교를 떠나서도 조용히 산책하고 사색할 수 있어서 종종 방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올 때쯤 되니 갑자기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니 이곳은 더 아름답고 평온한것 같았어요. 다른 분들도 아마 이곳을 방문하시면 그런 느낌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겨울에도 아름다운 신리성지!
그래도 이곳은 성지이니 방문하실 때는 조용히 둘러보시고 큰 소리나 애정행위 등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삼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당진 신리성지
-충청남도 충남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135[신리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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