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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고마나루터, 지금은?

2020.11.08(일) 08:42:04잔잔한 미소(ih2oo@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나루터 고마나루 이야기다.
 
공주에는 금강이 있어서 강을 건너는 나루가 여럿 있었다. 옛날 공주 읍내를 오갔던 강나루로는 내가 아는 이름만 해도 디디울나루, 고마나루, 산성나루, 장깃대나루, 오얏골나루, 석장리나루, 마암나루 등 많다.
 
지금처럼 금강교나 공주대교, 백제큰다리 등 사람과 차들이 자유롭게 건너다니는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강을 건너려면 모두 뱃사공이 노를 젓는 나룻배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나룻배를 탔던 곳이 나루터이다.
 
공주 금강을 건너는 여러 나루 중에서 사람과 자동차를 실어 나르던 나루터는 지금의 금강교 부근의 산성나루였지만, 웅진백제 시대부터 그 역사적인 해상 교통로로는 고마나루였다고 한다.
 
적막감에 쌓여 조용한 공주 고마나루
▲적막감에 쌓여 조용한 공주 고마나루
   
고마나루의 역사적 사실은 고마나루터에 있는 안내판을 읽어 알 수 있다.
 
지금의 고마나루터는 옛날의 화려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배도 사공도 배턱도 없는 쓸쓸한 모습이고, 그마저 평소에는 사람의 왕래가 적어서 나루터 가는 길이 어딘지 알기 어려웠다.
 
고마나루터 안내판에는,
'고마나루는 공주의 시원(始原)이자 상징이며, 나무꾼과 곰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웅진백제 시대에는 백제의 관문으로 중국, 일본, 고구려 등과의 문물을 교역하던 국제 항구로 이용되었으며, 고려 현종은 거란의 침입을 피해 이곳을 건너 피난을 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 시대 이후에는 주로 우성, 예산, 아산 방면으로 건너다니는 중요한 교통로로서 민중의 정서와 애환이 짙게 서려 있는 활발한 생활터전이었다.'
라고 적혀 있다.
 
고마나루터 안내판
▲고마나루터 안내판
    
60년 전만 해도 금강 건너 도천리, 신웅리, 내산리, 한천리를 비롯하여 우성면 여러 곳 사람들은 이 고마나루 나룻배를 타고 공주장이나 학교에 다니던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톡톡히 하던 곳이다. 그러나 오늘 고마나루터를 가 보았는데, 사람이 다니지 않은 나루터 가는 길가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강 언덕에는 강바람을 맞아 흔들리는 갈대와 억새가 춤을 추고 있었다.
 
새하얀 억새와 갈색의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가냘프지만, 바람에 절대 꺾이지 않는 자연 현상이 대견스러워만 보였다.
 
고마나루터의 갈대와 억새
▲고마나루터의 갈대와 억새
    
어릴 적 내가 아는 이곳 고마나루는 우성면 사는 친구들이 학교 다닐 때 건너던 그 나루터다. 흔히 곰나루라고 했었는데, 고마나루와 같이 쓰기도 한다. 고마나루에서 '고마(固麻)'는 '곰'의 옛말이며,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라는 설명이다.
 
고마나루는 넓은 의미에서는 고마나루터를 비롯하여 금강과 연미산 그리고 무령왕릉 서쪽의 강가 솔밭 일대를 말하는데, 이곳은 역사 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곳으로 2006년 12월 4일, 명승 제21호로 지정된 곳이다.
 
다음은 고마나루 솔밭 속의 곰사당 바위에 새겨진 글이다.
 
  금강의 물이 남동 편으로 휘어 돌고
  연미산이 올려다 뵈는 한갓진 나루터, 공주의 옛 사연 자욱하게 서린 곳
  입에서 입으로 그냥 전하여 온 애틋한 이야기
  아득한 옛날 한 남자 큰 암곰에게 붙들리어 어느덧 아기까지 얻게 된다.
  그러나 남자는 강을 건너버리고
  하늘이 무너져 내린 암곰은 자식과 함께 강물에 몸을 던진다.
  여긴 물살의 흐름이 빨라지는 곳이어서 배는 자주 엎어지곤 하였다.
  곰의 원혼 탓일까 하고 사람들은 해마다 정성을 들였는데
  그 연원 멀리 백제에까지 걸친다.
  공주의 옛 이름 웅진, 고마나루.
  그 이름 여기에 아직 있어 백제 때 숨결을 남기고 있다.
 
고마나루 웅신단 비문
▲고마나루 웅신단 비문
    
오래되어 바위에 새긴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서 읽기 어려웠지만, 적힌 내용은 대체로 위와 같았다. 고마나루에 얽힌 사연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들어 강 건너 곰굴이 있을 것 같은 연미산 중턱을 쳐다보았다.
 
고마나루 백사장과 연미산
▲고마나루 백사장과 연미산
    
활발하던 나루터가 지금은 육로교통의 발달로 수로 중심의 기능이 상실되어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의 고마나루터도 옛날처럼 사공이 노 젓는 나룻배가 건너다녔으면 참으로 낭만적일 텐데 생각하면서 고마나루에서 보이는 공주보를 쳐다보았다. 공주보 위로 많은 자동차가 편리하게 다니고 있다.
 
고마나루에서 보이는 공주보
▲고마나루에서 보이는 공주보
    
공주 한옥마을에서 백제큰길의 곰나루교차로를 건너면 고마나루터로 가는 큰길이 보이지만, 막상 나루터 가는 길은 찾기 힘들다.
 
거기는 고마나루 솔밭 가는 길가 화장실 건너편에 서 있는 수상레저 활동 금지구역 표지판 쪽으로 가야 고마나루터 가는 길이다.
 
고마나루 가는 길
▲고마나루 가는 길
 
수상레저 활동 금지구역 공고문
▲수상레저 활동 금지구역 공고문
    
강쪽으로 나루터 가까이 가서 본 주변의 풍경이다. 강 건너에 보이는 나루터였던 곳의 모습은 오래된 나무 사이로 두어 채의 집이 보였다.
 
강 건너로 사공에게 건너 달라고 소리치면 알아듣고 배를 저어 올 것 같은 거리지만, 배도 없는 강가에는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강 건너 고마나루터
▲강 건너 고마나루터
    
잠시 금강 백사장으로 내려가 하얀 모래를 밟아보았다.
 
은빛 모래사장을 걸어보니 옛날처럼 사각거리는 모래 촉감도 여전했고 지금도 옛날같이 걷기 힘든 금강 모래밭이었다. 잠시 고마나루 백사장에서 주위를 둘러보면서 잠시 추억 속에 잠겨보았다.
  
소풍 때 이 백사장에서 씨름도 하고 모래성도 쌓고 했었는데.
 
고마나루 백사장
▲고마나루 백사장
    
고마나루 백사장에서 되짚어오는 길에 다시 강 언덕에 서 보니 주변의 억새가 세게 부는 바람에 많이 휘어지며 흔들리는 모습이 깊어가는 가을을 더욱 실감하게 했다.
 
고마나루의 억새
▲고마나루의 억새
 
공주의 고마나루터, 백사장, 솔밭 그리고 연미산이 어우러진 고마나루 명승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공주의 역사와 함께 애틋한 고마나루 전설 속에 멋진 추억을 남기는 인연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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