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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지키는 서산향교

가을 은행나무가 물들어 아름다운 서산향교

2020.11.06(금) 17:15:22일상의낭만(picture486@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가을이 되니 여기저기 아름답게 물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온세상이 물들어 아름다운 가을, 저도 멋진 은행나무가 자리잡고 있는 서산향교로 발길을 옮겨 보았습니다. 
 
서산 향교 은행나무 수령
▲서산향교 은행나무 수령

향교는 조선시대 관립 교육기관으로 고을마다 세워졌습니다.

서산향교는 조선시대 서산 지역에서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국가에서 설치한 지방 교육기관입니다. 1406년(태종 6)에 창건된 것으로 구전되는데, 구체적인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서산향교의 창건과 이건에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자료가 일부 전해지는데, 1415년(태종 15) 유백유(柳伯濡)가 찬한 서산향교 창건시가 그것입니다. 서산향교 창건시에서 군수 조종생(趙從生) 재임 시절(1412~1415) 격식을 갖춘 향교가 건립되었음이 확인됩니다.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지키는 서산향교 사진
 
이 은행나무는 서산향교를 대표하는 은행나무로 충청남도 지정 기념물 제116호로 서산향교와 그 역사를 같이 하는 은행나무입니다. 그 연원에 대해서는 한여현이 지은 우리 지역 최초의 군지인 '호산록(1619)'의 향교조에 자세히 나옵니다. 1406년(태종 6)에 건립된 서산향교를 1574년(선조 7)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울 때 옮겨 심은 것으로 추정되어 서산향교와 역사를 같이하는 나무입니다.

1619년(광해군 11)에 지은 '호산록(湖山錄)'에 의하면 서산향교 은행나무는 서산향교를 옮길 때 한여현의 선인이 심은 은행나무 네 그루 중 한 그루로 추정된다고 하며, 은행나무에서 해마다 수확하는 은행이 두 가마에 이른다고 합니다. 들어갈 때부터 그 규모가 압도하는 듯합니다. 하늘로 높이 뻗어 있는 모습은 토닥토닥 위로를 해주는 것 같습니다.
 
단청과 어울러진 은행나무
▲단청과 어우러진 은행나무
 
민트색과 태극마크가 어우러진 모습과 은행의 대비는 더욱 은행의 노란색을 돋보이게 해줍니다. 한국적인 모습에 은행은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담장과 어울러진 은행나무
▲담장과 어우러진 은행나무
 
현재 대성전과 명륜당(明倫堂) 등이 남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경사진 대지를 2단으로 정리하고 전면에 명륜당을, 후면에 대성전을 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홍살문과 외삼문(外三門)은 남아 있지 않고 길과 담을 경계로 영역을 만들고 있습니다.
 
전면의 명륜당은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좌우에서 길게 이어지면서 ‘ㅁ’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어 명륜당 뒤쪽의 대성전 담과 함께 폐쇄된 마당이 만들어집니다. 명륜당은 뒷마당에 붙여서 높은 석축과 계단이 있고 계단 상부에 내삼문이 배치되어 있으며, 내삼문을 들어서면 좌우에 동무와 서무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동무와 서무의 위치가 대성전 쪽에 인접하여 중정이 개방된 공간감을 주고 있습니다.

서산향교는 명륜당 구역과 대성전 구역이라는 2개의 구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형태입니다.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지키는 서산향교 사진
 
명륜당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그곳도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자리잡고 있어 환상의 나라가 펼쳐지는 듯합니다. 조선시대로 들어가는 듯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은행나무는 500년 역사를, 그리고 이곳 향교도 그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은행잎이랑 노는 아이
▲은행잎과 노는 아이
 
서산향교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있습니다.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의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고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례적 기능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1997년 12월 23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1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소유자는 충남향교재단이고, 관리자는 서산향교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서산 지역의 유림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곳곳에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아이가 신기해서 문을 열어 보려 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은행나무의 색이 서로 다름
▲서로 색이 다른 은행나무
 
아직 한 그루는 물이 다 들지 않아 문을 사이에 두고 다른 색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문을 지키는 듯한 모습에 늠름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인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들어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문헌에 따르면 방화·방풍 기능을 하여 방화목이라고 하며, 공손수(公孫樹)라고 하여 조상들은 은행나무를 귀하게 여겨 불교용품의 재료로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 하여 압각수(鴨脚樹)라고도 합니다. 열매가 살구[肉杏]와 비슷하고 은빛이 난다 하여 은행(銀杏)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서산향교(瑞山鄕校) 은행나무는 암그루로, 높이 33m, 가슴 높이 지름 1.37m입니다. 가지 길이는 남서쪽으로 9.8m, 북동쪽으로 6m, 동쪽으로 9.4m 및 남동쪽으로 8.8m입니다.
  
위에서 본 모습 ▲위에서 본 모습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지키는 서산향교 사진
 
계단을 내려오다 보니 다른 모습이 또 보입니다. 바람에 은행잎들은 춤구고 빛에 일렁입니다. 계단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아름다운 금빛은 이 짧은 가을에만 볼 수 있는데 너무 짧은 듯해서 아쉽기도 합니다.
 
문살과 아름다운 은행나무
▲문살과 아름다운 은행나무
 
적갈색 문살과 은행의 고운 빛은 가을햇살을 받아 더 빛납니다. 조선시대 이곳은 이 일대 학생들이 가득한 곳이었겠지요?!
 
지금은 아무도 없는 곳인데 은행나무만이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도 올해는 학교가 거의 학생을 잃은 듯합니다. 지금은 등교하는 학교가 많아졌지만 언제 또 닫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학교는 학생이 있을 때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네 학교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다시 가득찼으면 좋겠습니다. 
 
서산향교
-서산시 향교1로 26

*이 글은 네이버지식백과 '서산향교'편을 참조하여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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