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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쌍북리유적에서 사비백제의 대형건물터 발견 쾌거!

부여 사비백제 왕궁터로 추정되는 핵심유적 발굴현장

2020.10.22(목) 17:29:08충화댁(och0290@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13일 부여에서는 백제시대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유적(사적 제428호) 인근에 위치한 쌍북리유적에서 대형건물터와 대가야 토기, 중국제 자기, 옻칠 토기 등을 발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여 쌍북리유적에서 사비백제의 대형건물터 발견 쾌거! 사진
 
부여는 곳곳이 사적지로 유적 발굴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도시 전체가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물론 우리 같은 원주민들은 그런 느낌을 별로 못 느끼고 살고 있지만 뉴스 보도를 통해 이런 소식을 들으면 자부심이 확 느껴진다. 부여 곳곳에서 유적을 발굴하느라고 땅위에 하얀 선을 그어놓고 낮고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기했었다. 그저 좁은 땅위의 작은 구멍에 불과한 곳이 백제인들이 살았던 흔적이라는 것이. 그래서 백제인의 후예이자 부여사람으로서 발굴의 성과가 발표될 때마다 혼자 만세를 부르게 된다.
 
부여 쌍북리유적에서 사비백제의 대형건물터 발견 쾌거! 사진
 
부여 쌍북리유적에서 사비백제의 대형건물터 발견 쾌거! 사진   
부여 쌍북리유적은 지난 2017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시굴 조사를 시작으로 향후 백제 사비도성의 복원, 정비 사업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부여 쌍북리는 금성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동네이다. 부여 외곽을 감싸고 있으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부여 나성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근처에는 금동대향로가 발굴된 능산리고분군과 능사가 있는 곳이기도 해서 대규모 유물 발굴이 예상되는 곳이었다. 이번 발굴의 성과는 그동안 백제 왕궁터와 관련된 건물로 추정되는 위치를 가늠해낸 것이다.
 
부여 쌍북리유적에서 사비백제의 대형건물터 발견 쾌거! 사진
 
부여 쌍북리유적에서 사비백제의 대형건물터 발견 쾌거! 사진
 
부여 쌍북리유적에서 사비백제의 대형건물터 발견 쾌거! 사진
 
10월 20일 박정현 부여군수는 쌍북리 유적 발굴현장을 찾아 전반적인 상황보고를 듣고 발굴 조사단을 격려했다. “쌍북리유적 대형 건물지 발견은 최근 부여 사비 왕궁터 발굴조사 결과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성과로 기록될 것이며, 백제왕도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을 위한 선행과제이다. 부여의 시급한 지역 현안 중 하나인, 사비백제의 중요 건물터로 추정되는 부여여고를 이전해서 지속적인 발굴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잃어버린 옛 백제 왕도의 영광스런 발자취도 회복해 부여군민과 자랑스러운 백제인으로서의 영광을 함께 누리기를 희망 한다”고 밝혔다.

부여사람들은 백제 사비 왕궁터의 위치를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들이 없어서 고대 도시로서의 자부심보다는 개발 제한이라는 불이익과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금동대향로를 비롯한 이번 사비 백제시대의 건물터 발굴의 쾌거는 부여 사람들의 자존감을 높여준 매우 반가운 일일 수밖에 없다.
 
부여 쌍북리유적에서 사비백제의 대형건물터 발견 쾌거! 사진
 
부여 쌍북리유적에서 사비백제의 대형건물터 발견 쾌거! 사진
  
이 발굴 조사의 성과는 그동안 사비도성에서 출토된 사례가 드물었던 대가야 토기가 발견된 것이다. 대가야 멸망이 562년인 것을 고려하면 부여 쌍북리유적이 사비천도(538년) 초기에 조성된 유적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런 유물과 유적의 발굴은 백제인들의 생활과 국제관계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5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선인들이 살았던 시대를 들여다보는 일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는 필요한 과제이다. 과거를 들여다보지 않는 인간에게 미래 삶의 가치가 있을 수 없다. 

쌍북리유적의 발굴조사는 이제 시작 단계이다. 앞으로 초기 백제 사비도성과 왕궁의 모습을 규명할 수 있는 많은 유구와 유물들이 출토될 것으로 기대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시조 온조왕이 궁궐을 지으며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즉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도록 하라'고 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온조왕의 명령은 백제 예술의 근간이 되었다. 쌍북리유적의 발굴은 '검이불루'하며 '화이불치'한 백제 궁궐의 복원을 기대하게 한다. 그리하여 부여군민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자부심을 휘날리게 되는 날이 멀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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