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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산에서 본 아름다운 예당호

조상의 숨결이 느껴지는 봉수산 임존성

2020.10.19(월) 12:38:52계룡산(ccy664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가을의 정취가 듬뿍 느껴지는 예당호를 오늘은 봉수산에서 내려다보기로 했다.
 
봉수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에서 내려 관리사무소 옆으로 산불초소를 경유하는 1코스를 택했다. 어제는 임존성 주차장에서 올랐으나 뿌연 대기 때문에 시야가 선명치 않아 오늘 다시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어제는 예당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두 곳을 알아 놓았기에 오늘은 산불초소와 북서치를 거쳐 묘순이바위, 남문지, 북동치를 거쳐 다시 산불초소에서 내려오게 되는데, 이는 임존성을 한 바퀴 돌아보는 코스이기도 하다.
  봉수산에서 본 예당호
▲봉수산에서 본 예당호
 
대흥면 소재지
▲대흥면 소재지
 
봉수산에서 본 예당호 주변 황금들녘
▲봉수산에서 본 예당호 주변 황금들녘
 
자연휴양림에서 30여분만에 산불초소에 도착했다. 올라오는 내내 울창한 숲길의 신성한 공기는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산불초소 앞 정자에 오르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넓고 넓은 예당호를 가득 채운 물과 주변 황금들판, 점점이 떠 있는 낚시 좌대, 전형적인 시골풍경의 대흥면 소재지, 그리고 맑고 푸른 하늘이 이 모든 것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다.
 
멀리 예당호 출렁다리와 고속도로, 예산시내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긴 장마와 태풍을 이겨내고 황금들녘은 풍년의 색깔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울창한 숲 때문에 조망권이 확보되지 않았으나 예산군의 배려로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북서치를 향해 오르면서 본 예당호
▲북서치를 향해 오르면서 본 예당호
 
북서치 정상에서 본 예당호
▲북서치 정상에서 본 예당호
 
봉수산에서 본 아름다운 예당호 사진
▲북서치 성벽 주변의 노오란 들국화
  
북서치 정상의 안내판과 들국화
▲북서치 정상의 안내판과 들국화
 
여기서부터 20분 동안은 발걸음마다 변하는 예당호의 풍경을 감상하며 북서치까지 오르게 된다.
 
하늘을 덮은 소사나무 군락지에도 가을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한 줄기 바람에 들국화 향기가 콧속을 자극한다. 북서치 주변에 군락을 이루며 만개해 있는 노오란 들국화가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며 진한 향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 향기에 반해서 잠시 마스크를 벗고 향기를 깊히 마셔보기도 했다.
 
이곳은 가장 높은 곳에서 예당호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북서치라 함은 북서쪽 성벽을 밖으로 튀어나오게 설치해 적을 관찰하기 용이하도록 만든 성곽을 말한다. 200m 정도 더 올라가야 만나는 봉수산 정상은 어제 다녀 왔길래 생략하기로 하고 들국화와 억새 사이의 오솔길을 따라 남문 쪽으로 향했다.
 
드디어 복원된 임존성 성곽이 용트림하듯 장엄한 모습으로 봉수산을 지키고 있었다.
  임존성 성곽
▲임존성 성곽
 
봉수산에서 본 아름다운 예당호 사진
 
봉수산에서 본 아름다운 예당호 사진
 
묘순이 바위
▲묘순이 바위
 
성벽 중간에 '묘순이바위의 전설'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가야산 석문봉(문다래미) 전설과 비슷한 내용이다.
 
옛날 대흥현 고을에 힘이 장사인 묘순이 남매가 살았다. 그 시대는 남매장사가 같이 살 수 없던 시대, 둘 중 한 명은 죽어야 하는 운명으로 남매는 목숨을 걸고 시합을 한다. 누이인 묘순이는 성을 쌓고 남동생은 쇠나막신을 신고 한양에 다녀오는 시합이었다. 묘순이는 남동생을 이기기 위해 열심히 성을 쌓았으며 이제 바위 하나만 올려 놓으면 성이 완성될 무렵 묘순이 어머니는 한양에 간 아들이 시합에 지면 죽는다는 걸 알고 시간을 늦추기 위해 묘순이가 좋아하는 종콩밥을 해서 먹인다. 콩밥을 거의 다 먹어갈 무렵 남동생이 성 가까이 온 것을 본 묘순이가 깜짝 놀라 마지막 바위를 옮기다가 그만 바위에 깔려 죽었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돌로 바위를 두드리면 '종콩밥이 웬수다'라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여자보다는 남자를 우선시하던 남존여비사상의 서글픈 전설이다.
  
남문지와 북동치를 거쳐 내려오기 시작했다. 

혼자 오른 산행이지만 결코 쓸쓸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정말로 상쾌한 산행이었다. 산행하기 좋은 계절, 아름다운 풍경과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에서 지치고 힘든 마음을 치유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또 예당호 주변에는 대헌동헌, 의좋은형제공원, 예당호자연생태공원이 있으며 출렁다리라는 새로운 볼거리도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봉수산에서 본 아름다운 예당호 사진
 
예산 임존성(사적 제90호)

임존성은 예산군 광시면. 대흥면과 홍성군 금마면이 만나는 봉수산 (해발438.9m)봉우리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크고 작은 6개의 봉우리를 에워싼 테뫼식 산성이다. 성벽은 외벽만 돌로 쌓고 안족은 돌과 흙을 다져 쌓았다. 임존성은 둘레가 2468.6m이고 면적은 553,697m²이다.
 
성내 시설로는 문지 2곳,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적대 1곳과 치(일정한 거리마다 성곽 밖으로 튀어 나오게 한 시설) 4곳, 배수구 1곳, 우물 3곳과 여러 곳의 건물터 등이 남아 있다. 성안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삼국시대(백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편·자기편·기와편 등이 있는데, 특히 그 중 임존, 또는 임존관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는 이곳이 역사서에 등장하는 임존성임을 뒷받침한다.
 
임존성은 삼국사기와 구당서 등에 따르면 '백제의 장수 흑치상지가 임존산에 울타리를 쌓고 당나라의 유인에 맞서 싸운 곳'이자 '백제의 왕자들이 모두 항복하였으나 장수 지수진만은 끝내 항복하지 않고 지켜낸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 등에도 비슷한 내용이 전하는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후백제의 권훤과 전투를 벌인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임존성은 백제가 도성을 지키기 위하여 군사적 요충지에 쌓은 거점 성으로 조선시대까지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임존성의 가치는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 백제인들이 부흥운동을 시작한 곳이자 마지막까지 항거하였던 곳으로 백제의 부흥정신이 깃들어 있는 유서깊은 성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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