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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지역 3부 통합 독립운동 과제

청산리전투 100주년·김좌진장군 서거 90주년기획(16)민족유일당운동을 전개해 혁신의회를 조직하다

2020.10.16(금) 16:43:54도정신문(ktx@korea.kr)


만주지역 3부 통합 독립운동 과제 사진



독립운동세력 통합 항일투쟁
1928년 12월 혁신의회 결성
김좌진, 김동삼, 황학수 등 참여

 
김좌진은 신민부에 참여하면서 1920년대 만주지역에서 전개된 민족유일당운동에 참여했다. 민족유일당운동은 독립운동세력을 통합해 하나의 지도정당을 만들고 전 민족이 대동단결해 항일무장투쟁을전개하는 것이었다. 당시 민족유일당운동은 독립운동계의 최대 과제였다. 만주지역도 3부(참의부ㆍ정의부ㆍ신민부)가 성립되었으나 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이 난립해 있었다. 만주지역에서 효과적인 독립운동을전개하기 위해서는 3부의 통합이 절실했다.

만주지역 유일당운동은1927년 4월부터 시작되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독립운동단체마다 활동지역과 이념이 달랐기 때문이다. 1928년 5월에 개최된 ‘민족유일당촉성회’가 결렬되면서 대립했던 세력들은 상대방에게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다. 김좌진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김좌진은 통합노선을같이했던 김동삼(金東三)과 함께 세력규합에 나섰다. 김동삼은 김좌진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던 사이였다. 김좌진은 대한군정서에서 독립군을 양성할 때 서로군정서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당시 김동삼은 이상룡(李相龍)과 함께 서로군정서를 이끌고 있었다. 이들은 김좌진과 함께 1919년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만주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들이었다.

김좌진과 김동삼 등의 노력으로 1928년 12월 길림에서 혁신의회가 결성되었다. 혁신의회에는 김좌진을 비롯해 김동삼ㆍ황학수(黃學秀)ㆍ김상덕(金商悳)ㆍ이청천(李靑天) 등 3부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참여했다. 김좌진은 혁신의회에 참여하면서 신민부 군정파를 해산했다. 기존단체를 해산하고 유일당을 조직한다는 혁신의회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혁신의회는 군정부설립을 목적으로 민족유일당촉진회를 조직했다. 민족유일당촉진회는 혁신의회의 결성목적을 추진하기 위해 조직되었으며 김좌진은 중앙집행위원을 맡았다.

그러나김좌진은 혁신의회를 떠나야 했다. 혁신의회는 군정부를 조직하기 위해 한시적으로조직된 단체였다. 그런데 혁신의회가 활동기간 동안 군정부를 조직하지 못하자 참여했던 지도자들이 각자의 근거지로 돌아가군정부를 세우고자 했다. 김좌진도 활동근거지인 영안현을 오랫동안 비워둘 수 없었다. 김좌진은다시 북만주 영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신민부 군정파를 해산한 상황에서 북만주에서 다시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해야 하는 험난한 길이었다.
/이성우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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