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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당진 합덕읍 내포신리 교우촌 신리성지

2020.09.16(수) 02:30:43메아리(okab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당진 합덕읍 신리성지
▲당진 합덕읍 신리성지
 
가을 바람은 선선하고 햇살이 따스한 9월, 가족과 함께 언택트 여행지로 찾았던 '조선의 카타콤바' 신리성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당진군 합덕읍 넓은 평야 벼가 익어가는 너른 들 한가운데 신리성지를 찾은 때는 해질 무렵 붉은 노을이 뉘엿뉘엿 넘어가는 주말이었다.
 
신리성지는 다섯 순교성인과 이름없는 26명의 순교자들이 순교한 곳으로 한국 천주교 전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로마시대의 비밀교회였던 카타콤바에 비유하여 '조선의 카타콤바'라고 불리는 곳이다.
 
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사진
 
신리는 박해를 겪는 조선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함과 동시에 서해를 통해 들어오는 프랑스 선교사들의 기착지였으며,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머물며 사목활동을 한 곳이다. 
 
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사진
 
버그내순례길은 신리교우촌에서 솔뫼성지까지 이어지며, 내포천주교 순례길 이정표와 길을 안내하는 천주교순례길이다.
 
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사진
 
보기 드문 이국적인 풍경에 서산으로 해는 넘어갔지만, 붉은 노을과 함께 사진을 담으려는 연인들은 여러 포즈를 취하며 인생사진을 담고 있다.
 
여사울성지-신리성지-합덕성당-솔뫼성지에 이르는 내포도보성지순례에 참여한 기억이 떠오른다. 약 6년이 지난 후에 찾은 탓에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다. 처음 보게 돼 궁금한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에 순교기념관이 있었다. 2017년 3월 기념관 지하 1층에 시대적 상황과 천주교 역사, 당시를 나타내는 각종 기록물들을 그림으로 전시한 '순교미술관'을 개관하였다.
 
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사진
 
순교미술관은 2017년 3월 병인순교 15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미술관으로 국내 유일의 순교미술관으로 유명하다. 미술관의 작품들은 신리교우촌에서 활동했던 성직자들의 영정화, 순교기록화들로 총 18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사진
 
궁금하여 탑이 있는 언덕에 올라보니 출입구는 없고 '1층을 이용 바란다'는 안내문만 있어서, 아쉬움에 뒤돌아 보면 신리성지 다블뤼 주교 유적지와 야외 경관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인생사진을 남기려는 젊은 연인들이 사진을 찍기에 바쁜 모습이고, 웨딩 촬영하는 곳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사진
 
성지에는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성 오메트르 베드로 신부, 성 위앵 루카 신부, 성 황석두 루카 성인, 성 손자손 토마스 등 다섯 성인의 경당에는 부조되어 있다.
 
독특한 건물구조와 탁 트인 시야에 보이는 푸른 잔디로 인해 저녁노을과 함께 이국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하느님의 종 다블뤼 주교, 오메르트 신부, 위앵 베드로 신부를 표현한 종탑은 미술관과 함께 아름다운 작품이다.
 
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사진 
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사진
 
신리의 다섯 성인을 기리는 기념성당과 그 외벽에는 예수님과 다섯 성인을 표현한 작품으로 야외미사를 올릴 수 있는 제대도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가 순교하고 신리교우촌이 파괴되면서 이 집도 주인을 잃었으나, 다블뤼 주교 순교 60여 년이 지난 1927년 교우들이 모금을 통하여 집을 매수하고 천주교에 봉헌했다고 한다.
 
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사진
 
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사진
 
1866년 병인박해시 사목활동으로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매트르 신부, 황석두 루카, 손자선 토마스가 체포되어 보령 갈매못과 공주에서 순교한 다섯 분의 성인 시성 30주년을 기리며 다블뤼 주교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옛 신리성지 종, 그 뒤로 성 손자선 토마스 성인의 생가가 있는데. 이곳은 성 다블뤼 주교의 비밀성당이자 주교관이었다고 한다.
 
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사진
 
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사진
 
순교자기념비, 승리의 성모상, 성 다블뤼 주교상과 성지 곳곳에는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성 위앵 루카 신부, 성 오매트르 베드로 신부, 성 황석두 루카 성인, 성 손자선 토마스 성인 등 다섯 성인의 경당이 있다. 그 중 황석두 루카 성인의 경당에는 “나는 이미 천당으로 가는 과거에 급제하였다”라는 말씀이 써 있었다.
 
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사진
 
신리성지는 왜 '조선의 카타콤바'가 되었나 사진
 
신리성지 곳곳의 아름다운 조형물과 인생사진을 찍기 좋은 핫플레이스들이 들어서면서 당진을 찾는 여행객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신리성지는 관광지가 아닌 천주교 신자들의 기도처로 천천히 걸으며 가을을 만끽하시고, 성지 내 금연, 놀이기구 반입 금지, 애완동물 반입 금지, 드론촬영 금지, 음식물 반입 금지, 쓰레기 투기 금지, 애정행위 금지 등을 준수해 주시기 바란다.

신리성지(http://sinri.or.kr/)
-충남 당진시 합덕읍 신리 62-3
제4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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