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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교육탄압에 맞섰던학생 애국자

금산 출신 이일남 애국지사

2020.08.17(월) 20:28:14도정신문(ktx@korea.kr)

이일남사진 오른쪽 애국지사와 부인 서채영 씨

▲ 이일남<사진 오른쪽> 애국지사와 부인 서채영 씨


서대문형무소에 마련된 이일남 지사 발자국 동판

▲ 서대문형무소에 마련된 이일남 지사 발자국 동판



일본인 교장의 핍박에 항거
비밀결사단체 ‘우리회’ 조직
독립군에게 자금 전달 시도

 
“저는 항일운동에 있어 단지 조력자에 불과했습니다. 여생도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충남도의 유일한 생존 애국지사 이일남(96) 옹은 일제강점기에 펼쳤던 자신의 독립운동을 돌아보며 자신을 낮췄다. 그의 독립운동은 광복 3년 전, 지금으로 따지면 고등학생의 나이인 열여덟 살에 시작됐다.

이일남 애국지사가 1942년 6월 전주사범학교 재학 시 일제의민족말살정책으로 일본인 교사들의 교육 탄압이 자행됐다. 일본인 교장이 한국 학생들에게 걸핏하면 ‘조선놈’이라며 핍박할 때마다 학생들과 단체로 항의했다. 이일남 애국지사는 “일본인 교장이 있었는데 깜빡 졸면 ‘조선놈~ 조선놈’ 해서 거기서 반항심이 났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일본인 교장의 노골적인 민족차별교육에 분개해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단체인 ‘우리회’를 조직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며항일활동을 전개했다.

1943년 12월에는 만주에거점을 확보, 만주독립군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려고 김학길, 박완근 등 동기생들을 규합해 독립군과 접선을 시도하려 했으나 연결되지 못했다. 이에 만주의 실정을 알리기 위해 귀국했다. 귀국 후 국내동지와 연결하는한편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1945년 1월 충남 금산사방관리소 인부로 취업했다가 발각돼 일제 헌병대에 체포됐다.

같은 해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불경 및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이 애국지사는 이 과정에서 일본 헌병들의 잔혹한 고문을 견뎌내야 했다. 그는 “(고문 때문에) 장질부사(장티푸스)를 세 번 앓아 기절했다”며 “감옥에서 누가 데리고 왔는지, 집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1945년 8월 광복을 맞으며 출옥했다.

정부는 그의 업적과 항일 정신 등 공훈을 기리어 1986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주재현 scottju@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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