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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추사고택의 여름 풍경

2020.08.17(월) 19:44:51유리향(dried1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하면 누구를 떠올릴까요?
누구는 한석봉이라 할 것이고, 누구는 김정희라고 할 것입니다. 글씨를 가지고 우열을 가린다는 건 옳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추사체라고 하는 독특한 글씨체를 만들어 낸 추사 김정희의 뛰어난 예술세계를 부인할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김정희 선생은 1786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가면 그의 고택과 기념관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꽤 넓은 터에 자리한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과 기념관 그리고 묘소, 그 외에도 너른 정원이 있고 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아주 잘 정돈되어 있어서 쉬어 가기도 참 좋은 곳입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먼저 추사기념관부터 둘러 보았습니다.
 
추사기념관은 김정희 선생의 드높은 서예정신과 위대한 업적을 새롭게 조명하고 후세에 남긴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보존·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2008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추사 김정희 선생은 서예가로서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정치가로도 명망이 높습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그 분의 정치 역정을 보면 파란만장합니다. 당쟁에 휩쓸려서 제주도와 함경도로 유배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외롭고 고통스러운 귀양살이 속에서 추사는 더욱 더 학문에 힘쓰고 서예와 그림에 몰두하여 그 유명한 세한도를 그리는 등 그의 예술세계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추사 김정희 선생의 연보를 살펴 봅니다.
 
1786년 6월 3일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영조의 부마인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손자로 이조판서 김노경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그 후 8세 때 후손이 없는 큰아버지 김노영의 양자로 들어갑니다. 24세에 생원시에 1등으로 급제하고 31세에 북한산 순수비를 찾아 비문을 낱낱이 조사합니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을 얻어 예조참의에 이르지만 45세에 옥사에 연루되어 삭탈관직 당하고 부친 김노경도 유배됩니다. 이후 복권되어 병조참판과 형조참판에 이르지만 55세가 되던 1840년에는 다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제주도로 유배를 떠납니다. 제주도에서 작품 세계에 몰두하여 세한도 등의 명작을 남기고 8년간의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오지만 66세에 또다시 옥사에 연루되어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됩니다. 다음 해 풀려나자 벼슬을 버리고 부친의 묘가 있는 과천에 은거해 후학을 지도하면서 불교에 심취한 가운데 생활을 보내던 추사 김정희 선생은 2856년 71세의 나이로 서거합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추사 김정희 선생은 중국 연경에 가서 명필들과 교류하면서 배우고 스승 옹방강과 완원으로부터 금석문의 감식법과 서도사 및 서법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중국의 여러 명필들의 서체를 익혔습니다. 이들 모든 서체의 장점을 밑바탕으로 하여 보다 나은 독창적인 길을 창출한 것이 추사체입니다. 추사체는 제주도 유배되었을 때 완성하였는데, 타고난 천재적 재질에다가 무한한 단련을 거쳐 이룩한 고도의 이념미를 표출한 것이라고 해요.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일제강점기에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소설 '상록수'의 저자 심훈 선생의 후손이 보관하다 기증한 김정희 선생의 유물 '청연시경' 현판도 추사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추사 김정희 선생은 북학파의 거벽으로서 금석학, 문자학, 지리학, 천문학 등에 능하였으며 북한산 비봉에 있는 비석이 신라 진흥왕순수비임을 고증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추사기념관에는 추사고택의 조감도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추사기념관과 추사고택 사이에는 김정희 선생의 묘소가 있고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맥문동이 활짝 피어 참 아름답군요.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예산의 명물 사과나무가 사과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정원에 심어져 있는 소나무 정말 멋지지 않나요? 김정희 선생이 보았다면 멋진 그림과 글씨를 남겼을 것 같아요.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김정희 선생의 묘소입니다. 아주 잘 관리되고 있어서 보기 좋았답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이제 추사 고택으로 들어갑니다.
 
추사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1700년대 중반에 건립한 53칸 규모의 양반 대갓집이며 추사 김정희 선생이 태어난 곳입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추사고택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반가 주택으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금은 대문채와 사랑채, 안채, 영단 등이 있으며 1977년에 집을 복원할 때 대문채와 사랑채는 다시 세운 것이라 합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안에 들어가 보니 네모 모양의 마당이 있고, 안방과 건넌방에 툇마루가 있군요.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김정희 선생을 모신 영단에서 대문 밖을 내다 보니 상사화가 저녁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네요.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사진
 
담벼락에는 아직도 능소화가 그 가녀린 줄기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곱디고운 연분홍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이며 실학자, 정치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추사고택의 여름은 무르익어 갑니다. 추사고택 주변에는 김정희 선생과 관련된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김정희 선생의 할머니인 화순옹주의 홍문, 천연기념물 백송, 추사 선생이 불교에 심취하게 만든 화암사 요사채도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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