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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대표브랜드 '박문수’와 동행 10리길

천안 은석산 ‘박문수테마길’ 호젓한 트레킹

2020.05.24(일) 22:21:39장군바라기(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어사 박문수
▲어사 박문수의 사당 충헌사(왼쪽)와 고령박씨 종중재실(오른쪽) 
 
우리 역사에서 ‘암행어사’의 이미지는 탐관오리를 벌하고 고통받는 백성(민중)들에게 희망의 전하는 메신저입니다. 암흑 속 빛줄기이거나 가뭄 속 단비로 암행어사가 자기 고을에 출두하기를 손꼽아 기다렸을 것입니다.

왕의 특명으로 지방을 암행하며 감찰하는 암행어사는 조선시대 독특한 관리체계입니다. 종3품 이하 당하관의 젊은 대간과 언관에서 뽑았는데, 왕이 직접 임명하거나 의정부가 후보를 추천했습니다. 비밀유지는 기본 중 기본, 왕이 직접 부르거나 승지원을 통해 밀지인 ‘봉서’와 신분증 개념으로 ‘마패’를 주었습니다. 조선의 ‘미션 임파서블’이라 해야 할까요?
 
충헌사 인근의 어사 박문수 동상.
▲충헌사 인근 암행어사 박문수의 동상 
 
충헌사 인근의 어사 박문수 .
▲충헌사 인근 암행어사 박문수의 업적을 기리는 비 
 
조선 중종실록(1509년) 이후 많은 암행어사가 등장하지만, 민중들 사이에서는 유달리 ‘어사 박문수’를 첫손에 꼽습니다. 어찌나 인기가 높았던지 그에 얽힌 전설과 민담은 전국에 무수하고, 심지어 출두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활약상이 허구로 각색되어 전해집니다. 일부 지역은 아예 성황당에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 ‘신격화’하는 지역도 있습니다.
 
어사 박문수의 첫 부임은 1731년(영조) 호남의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기 위한 것으로 약 6개월 짧은 기간의 활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일처리가 수령의 부정과 백성의 억울함을 풀기에 너무나 공정하고 과감했기에 여러 차례 암행어사로 출동하게 됐습니다.
 
암행어사로 역사에 명문을 날린 박문수(朴文秀, 1691~1756)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면 은지리가 고향입니다. 어려서 아버지을 잃으며 어려워진 가정환경과 정세적(소론) 영향으로 33살의 늦은 나이에서야 급제해 사관(史官)이 되었고 암행어사·도승지·병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돼 충헌공(忠憲公)이란 시호를 하사받았습니다.
 
충헌사
▲어사 박문수의 충헌사(忠憲祠)
 
그의 묘는 은석산에 있는데,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뒤 공신을 받아 고향의 ‘은석산’과 도화서 화원에게 ‘공신상(보물 1189호)’을 하사받았는데, 그때 그려진 영정을 비롯해 ‘고령박씨 종중재실(문화재자료 제289호)’ 유물들은 현재 천안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이 재실은 그의 후손들이 1932년 ‘ㄱ’자 형태의 7칸 규모 안채와 ‘ㅡ’자 형태의 5칸 사랑채로 만들었습니다. 생가는 아쉽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천안박물관 수장고의 박문수 영정
▲천안박물관 수장고에 보관중인 박문수 영정(보물 1189호) 
 
박문수 영정(보물 1189호). 천안박물관 제공.
▲박문수 영정(보물 1189호) 2, 천안박물관 수장고

고령박씨 종중재실 1. 마주보이는 건물이 충헌사다.
▲고령박씨 종중재실(문화재자료 289호) 1, 마주하는 사당이 충헌사
 
고령박씨 종중재실 2.
▲고령박씨 종중재실 2(문화재자료 289호)
 
고령박씨 종중재실 3.
▲고령박씨 종중재실(문화재자료 289호) 옆 담장
 
고령박씨 종중재실(문화재자료 289호) 뒷마당.
▲고령박씨 종중재실(문화재자료 289호) 뒷마당
 
고령박씨 종중재실(문화재자료 289호) 담장.
▲고령박씨 종중재실(문화재자료 289호) 담장
 
종중재실에서 약 2km 떨어진 은석산(해발 455m) 정상까지의 등산로에는 천안시가 ‘어사박문수 테마길’을 조성했습니다. 은석산은 금북정맥인 업돈재에서 흘러내린 작성지맥의 하나로 남쪽 산자락에 고려초 세워진 은석사가 자리합니다.
 
어사 박문수 테마길 1.
▲어사 박문수테마길 1
 
어사 박문수 테마길 1.
▲어사 박문수테마길 2
 
어사 박문수 테마길 1.
▲어사 박문수테마길 3
 
어사 박문수 테마길 2.
▲ 어사 박문수테마길 4

어사 박문수 테마길 3.
▲ 어사 박문수테마길 5

어사 박문수 테마길 4.
▲어사 박문수 테마길 6 
 
은석산 정상 인근에서야 박문수 묘가 자리하는데, 주변의 소나무에는 송충이가 없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천적인 불개미의 집단서식 때문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박문수가 암행어사로 활약하며 구해준 사람들의 혼령이 그의 묘소를 지켜주기 때문'으로 믿고 있습니다.
 
영남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서는 함경도를 구휼한 일화도 유명합니다. 경상도를 감찰 중 바닷가에 그릇과 집채 등 살림살이가 북쪽에서 떠밀려오는 것을 보고 강원도나 함경도에 큰 홍수를 예감한 어사 박문수는 즉시 경상 제민창 곡식 3000석을 배에 실어보내고 이를 사후 조정에 보고했습니다. 나중에 문책을 걱정한 주변의 만류에도 서슴없이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당시 함경감사는 큰 수해로 조정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불과 며칠 만에 바다를 통해 곡식이 도착하자 백성을 굶주림에서 구했다고 합니다. 이 일로 함흥 ‘만세교’에는 박문수의 송덕비가 세워지고 백성들이 이를 소중히 돌보았다고 합니다.
 
저는 은석산 어사 박문수테마길을 오르다 잠시 지나는 비에 팔각정을 앞두고 산행을 중단하고 묘지와 은석사 관람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비록 높지 않은 산일지라도 봄철 기후변화가 무쌍한 산행에는 반드시 우산이나 비옷을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어사 박문수 테마길 5.
▲어사 박문수테마길 7
 
어사 박문수 테마길 6.
▲어사 박문수테마길 8
 
어사 박문수 테마길 7.
▲어사 박문수테마길 9 
 
박문수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높은 벼슬도 임금의 총애도 아닙니다. 유학자로서 학문이나 문장도 아닙니다. 오직 늘 백성을 사랑하는 민중의 고통을 덜어 주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 같은 그의 마음이 백성들에게 고마움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오늘날 박문수를 암행어사의 대표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그의 묘가 있는 은석산 산행은 ‘암행어사 박문수테마길’로 특별함과 조망이 좋습니다. 중간에 약간 가파른 구간도 있지만 심하게 위험하지 않고 비탈산행을 돕는 계단과 안전줄이 잘 갖춰져 휴식시간을 포함해 3~4시간의 가벼운 트레킹코스로도 좋습니다. 근처 목천의 독립기념관과 병천의 유관순열사기념관도 특별합니다. 순대로 유명한 병천은 식후경에 제격입니다. 코로나19로 생활 속 거리를 유지하며 이 봄이 가기 전 ‘박문수테마길’로 사부작 발길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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