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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선비 최익현과 칠갑산

충청의 산수·유교의 산수관 ⑤ 충남의 알프스 칠갑산

2020.05.24(일) 16:44:56도정신문(ktx@korea.kr)

칠갑산 전경

▲ 칠갑산 전경



도립공원 급의 산 중에서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한 산을 꼽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칠갑산일 것이다. 조운파 작곡의 가요 ‘칠갑산’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목청을 돋우게 한다. 칠갑산(七甲山)의 이름은 불교에서 말하는 천지만물의 생성원리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견(見)·식(識)에서 왔다고도 하고, 지천(芝川)과 잉화달천이 계곡을 싸고돌며 일곱장수가 탄생할 명당이 생겼다는 데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차령산맥에 속하는 칠갑산은 청양군 대치면·정산면·장평면에걸쳐 있다. 높이 559.8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산세가 험해실제보다 높아 보인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후기의 학자 윤기(1741~1826)는 그의 ‘호서기행’이라는시에서 칠갑산 대치(大峙)를 이렇게묘사하고 있다.
‘구름 위로 솟은 재마루 / 그 이름 대치라하네 / 높은 바위 벼랑에 매달려있고 / 긴 폭포 덤불숲으로 떨어지네’

대치는 벚꽃과 진달래가 피는 봄이 가장 아름답다. 고갯마루에는 유학자이자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최익현(崔益鉉)의 동상이 있다. 최익현은 1833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 4세 때 단양으로이주했고, 젊은 시절에는 주로 서울과 호남지방에서 수학했다. 과거에 급제한 후에는 중앙과지방에서 여러 관직을 거쳤고, 68세의 나이에 지금의 청양군인 정산(定山)에 거처를 잡았다.

서양과 일제 세력이 침입하던시기, 병자수호조약 등 불평등 조약에 반대하는 강직한 상소를 올리다가 흑산도에 유배당하기도 했다. 을미사변 이후로는 본격적으로항일운동을 시작했고, 을사늑약 이듬해인 1906년, 74세의 노구로 의병을 일으켰다가 생포돼 대마도에 수감됐다. 그해 11월 옥중에서 단식 자결로 마지막까지 강직한 선비의 면모를보여주며 생을 마감했다. 그의 영구는 이듬해 본가가 있는 청양으로 돌아왔고 노성 무동산에 안장됐다.

높지는 않지만 험준한 자태를뽐내는 칠갑산은 최익현의 기상과 많이 닮아 있다.
/이치억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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