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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여행, 화순옹주홍문 열녀문과 김한신 합장묘

2020.05.20(수) 12:38:15호미숙(homibike@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예산 여행, 화순옹주홍문 열녀문과 김한신 합장묘 사진

예산 여행, 화순옹주홍문 열녀문과 김한신 합장묘
 
안녕하세요. 호미숙 여행작가입니다.

지난 시간 충남 여행을 다녀오면서 예산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예산은 추사 김정희 고택을 비롯해서 추사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유적지가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추사고택 소개에 이어서 화순옹주 홍문과 김한신 묘소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서울서 출발해서 당일여행으로 다녀오느라 추사고택 인근의 여행지를 찾았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여사울성지성당부터 도착해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예산 여행, 화순옹주홍문 열녀문과 김한신 합장묘 사진
 
예산 화순옹주 홍문 열녀문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조선시대 열녀문으로 1976년 1월 8일 충남유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 추사김정희의 유적지 안에 있습니다. 영조의 딸이자 김정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려 정조가 하사했습니다.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은 1720년(숙종 46) 13세 때 영조의 둘째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지고,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제용감제조(濟用監提調)를 지냈으며, 1758년 사도세자와의 말다툼 끝에 벼루를 맞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화순옹주는 이에 격분,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열흘 동안 식음을 전폐한 뒤 남편의 뒤를 따라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영조는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면서도 부왕의 뜻을 저버린 데 대한 노여움 때문에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습니다만, 나중에 정조가 열녀문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옹주는 조선왕조의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합니다. 

추사고택 가까운 곳에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장묘가 있습니다. 약 200여 평의 대지 위에 낮은 담장을 두르고 출입문의 정면에 홍문을 세웠습니다. 건물은 정면 8탄 측면 1칸으로 중앙의 오른쪽 칸에 문을 내었고, 문의 전면에 홍살을 세우고 문 뒤에는 붉은 칠을 한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예산 여행, 화순옹주홍문 열녀문과 김한신 합장묘 사진
 
추사고택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홍문이 위치해 있습니다. 날씨가 유난히 푸르고 맑은 날 바람을 불었지만 화순옹주의 열녀문 앞에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알고 여행하는 것과 모르고 여행하는 것이 상당히 다른데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니 어딘가를 여행하고자 할 때는 코스도 중요하지만 가고자 하는 곳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숙지하고 가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홍문을 들어서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릴 것 같은 대문은 미리 관람객들을 받기 위해서 문이 열려 있습니다.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변화하는 자연의 빛깔이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예산 여행, 화순옹주홍문 열녀문과 김한신 합장묘 사진
 
예산 여행, 화순옹주홍문 열녀문과 김한신 합장묘 사진
 
화순옹주의 열녀문인 홍문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집터가 있었는지 아직 수많은 돌들이 너른 공간에 흩어져 있습니다. 묘막터는 원래 53칸의 큰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불에 타서 없어지고 주춧돌만 남아 있습니다. 홍문 안에는 집터 자리만 남자 있어서 크게 볼거리가 없습니다. 잘 가꾼 잔디밭과 울타리에 봄꽃을 식재해서 꽃을 피우고 있었지요. 수선화가 한창 피었다 졌는지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산 여행, 화순옹주홍문 열녀문과 김한신 합장묘 사진
 
낮은 담장 앞에 자목련이 곱게 피우고 있었고 담장 너머에는 백송공원이 위치해 있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따라 목숨을 거두었다는 옹주의 삶을 보며 사랑이 깊으면 죽음도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예산 여행, 화순옹주홍문 열녀문과 김한신 합장묘 사진
 
백송공원 쪽에서 담은 화순옹주 홍문입니다.
 
예산 여행, 화순옹주홍문 열녀문과 김한신 합장묘 사진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인 김한신과 부인 화순옹주가 함께 묻힌 합장묘 
 
영의정 김홍경의 아들 김한신은 13세에 영조의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집니다. 인물이 잘생기고 총명하여 영조의 사랑을 받았으며 벼슬은 오위도부층부 도총관을 지냈습니다. 귀한 신분임에도 평소에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몸을 낮추어 생활했다고 해요. 특히 글씨를 잘 써서 시책문을 많이 썼으며 전각에도 뛰어났답니다. 묘소 앞 비문에는 영조의 친밀인 어필이 새겨져 있습니다. 
 
예산 여행, 화순옹주홍문 열녀문과 김한신 합장묘 사진
 
묘소 뒤쪽으로는 곡장이 둘러 있고, 묘소 앞에 상석, 장명등, 망주석 1쌍과 문인석 1쌍이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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